조중석식 한끼당 1만원 1만원내
여의도브라이튼·성수 트리마제 등
고급 아파트 속속 도입하며 인기
참치해체쇼 등 특식날은 인산인해
생각보다 비싸 사용률 높진 않아
일부 아파트 관리비에 비용포함
갈등 끝에 서비스 중단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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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포디에이치자이 [사진=위지혜 기자] |
지난 9일 찾은 여의도 브라이튼 식당, 미쉐린 맛집으로 인기를 끈 ‘능동미나리’를 똑닮은 미나리곰탕과 국내 일식집에서도 찾기 힘든 카모소바(오리고기 소바)가 점심 메뉴로 나왔다.
양은 미나리곰탕 속 고기만 건져 먹어도 배가 부를 정도로 푸짐한데, 조리원이 직접 서빙까지 해준다.
한 끼당 가격은 9000원 정도. 아파트 식당에서는 평일 175식, 주말 220식 이 같은 식단이 제공된다.
이날 아버지와 함께 식당을 찾은 대학생 노모씨(25)는 “어머니가 해외여행을 가셔서 방문했다”며 “여의도는 물가가 비싸 배달을 시켜도 비싼데, 상대적으로 저렴한 금액에 식사를 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우리 가족은 이사할 때 식사 서비스에 비중을 30% 뒀다”며 “성수동 트리마제, 용산 해링턴스퀘어 등을 비교해봤는데 여기가 제일 괜찮더라”고 자랑스레 말했다.
조식, 중식, 석식 서비스를 제공하는 아파트, 이른바 ‘밥주는 아파트’가 주목을 받고 있다.
2018년 성수동 트리마제를 시작으로 강남, 강북, 수도권 신도시, 지방 아파트까지 보급되며 식사 서비스는 이제 4세대 아파트의 필수 조건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한 인기 예능에도 시리즈로 방영되며 인기를 끌자, 조리시설을 안 갖춘 단지들에서도 케이터링, 배달 서비스를 도입하며 ‘밥주는 아파트’ 대열에 합류하는 상황이다.
신시장이 열리며 급식업계에도 춘추전국시대가 도래했다.
업계 1위인
신세계푸드를 비롯해 삼성웰스토리, CJ프레시웨어,
풀무원, 아워홈 등 국내 거대 식음료 업체들이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아파트 단지당 월 매출은 1억2000만원에서 1억5000만원 사이로, 시설이용료가 들지 않아 시장이 안정화되면 높은 영업이익을 남길 수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업체들은 식사 퀄리티를 국내 4대 그룹(삼성·현대·SK·LG) 사내식당 수준으로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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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포디에이치자이 커뮤니티 식당 |
아파트 식당의 단골고객은 조리에 품이 많이 드는 4인 가족이나 은퇴한 부부들이다.
가사노동에 지친 386세대들이 자식들이 독립하면 부부끼리 아파트 식당에서 끼니를 해결하거나 야근이 잦은 40대 맞벌이 가정에서 하교한 자녀나 퇴근한 남편의 끼니를 해결하는 경우다.
한 아파트 주민은 “자주 먹는 집은 대개 엄마가 밥하기 귀찮아해서인 경우가 많다”며 속사정을 털어놓았다.
공인중개사들은 이들이 아파트 계약 단계부터 ‘식사 서비스’ 수준을 중요하게 따진다고 한다.
이외에도 노년층 부부들이 자식 부부와 손자, 손녀들이 찾아왔을 때 아파트 식당을 함께 찾아 편리하게 대접하려는 수요가 있다.
지난 15일 저녁과 지난 17일 점심 찾은 청량리 롯데캐슬 SKY-L65와 디에이치자이개포에서는 이 같은 단골고객들을 직접 만나볼 수 있었다.
식당에는 나홀로 식당을 찾은 어린이부터 모자를 푹 눌러쓴 채 편한 차림으로 온 모녀, 식당 구석에 앉아 스마트폰으로 저녁 뉴스를 시청하며 밥을 먹는 40대 남성, 겨울방학을 맞은 유치원생 손자와 손을 잡고 찾아온 70대 할아버지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
김동수(80)씨는 “아파트 식당은 거의 매일 이용한다”며 “날씨도 추운데 아파트 단지 밖을 나갈 필요도 없고 카드 하나로 이용할 수 있으니 편리하다.
방학이니까 손주도 오는데 키즈식도 있어 감사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나홀로 저녁을 먹으러 온 중학생 이모씨(13)씨는 “일주일에 2~3번, 주말에는 부모님과도 자주 온다”며 “배달음식만큼 자극적이지 않아 아쉽지만 메뉴가 매일 달라 그럭저럭 괜찮게 먹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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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포디에이치자이 커뮤니티 식당 서빙로봇 |
아파트 조리현장에서만 3년을 근무했던 업계 관계자 A씨는 “평일 조식과 중식은 40대~60대 비중이 60%를 차지한다”며 “저녁이 되면 퇴근한 직장인들이나 어린이, 청소년들도 식당을 찾는다.
주말에는 2030세대 비중도 절반은 되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이처럼 식사 서비스를 활발히 이용하는 입주민이 전체 입주민의 30~40% 수준이라는 점이다.
업계에 따르면 ‘밥주는아파트’의 입주민 60%는 한달에 4회 이하 수준으로 서비스를 이용하고, 입주민의 10% 가량은 한달에 한번도 식사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살펴본 브라이튼 여의도의 경우에도 식사 서비스 실 이용가구 비율은 39%로 추계된다.
개포동 ‘밥주는아파트’ 주민 김옥수(70)씨도 “아파트 식사는 5점 만점에 5점 수준이지만, 집에서 먹는 것이 저렴해 우리 형편에서는 잘 안 이용하고 있다”고 이유를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식사 서비스를 둘러싼 입주민 간 내부 갈등도 생겨나고 있다.
보통 아파트 식사는 공용관리비에서 한 세대당 1만원 정도 운영비를 걷어가고, 대신 한끼당 식사 비용을 저렴하게 청구해 운영하는 ‘관리비제’로 운영된다.
하지만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는 입주민들이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고 나선 것이다.
때문에 한끼당 전체 운영비용을 청구하는 ‘식단가제’를 도입하는 아파트 단지들이 늘어나고 있다.
밥주는 아파트는 관리비 사업장 기준 한 끼당 7000~9000원에 식단가가 책정된다.
식단가 사업장은 10000원 이상이다.
하지만 식단가제는 안정적인 식수 예측이 어려워 급식업체가 적자를 겪기도 하고, 비용절감을 위해 품질이 낮아지는 경우가 있어 이에 따른 주민들의 불만이 또 나오고 있다.
서울 동대문구의 한 아파트에서는 가구당 부담금을 주제로 주민들이 싸우다 식사 서비스가 중단되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밥주는 아파트’가 프리미엄 아파트의 조건으로 떠오르면서 공용 관리비를 내더라고 품질을 유지하자는 주장이 부상하고 있다고 한다.
이용하지 않더라도 아파트 가치를 위해 공동 부담을 해야 한다는 논리다.
한 공인중개사는 “시세가 비슷하면 밥주는 옆단지를 선택하는 것이 요즘 트렌드”라며 “관리비 문제로 식사를 중단했던 단지들도 서비스를 속속들이 재개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관리비제로 운영하는 아파트의 입주민 대표단은 입주민들의 민원에 민첩하게 대응하며 품질을 유지하고 있다고 전한다.
일례로 관리비제로 식당을 운영하는 롯데캐슬 SKY-L65는 식당에 주민의견서 노트를 설치해두고 ‘식당을 이용하며 느낀 칭찬할점, 개선할점, 다양한 아이디어’를 매일 취합해 급식업체에 전달한다.
황인규 입주자회 대표는 “매월 평가를 진행하고 입주민들에게 개선사항을 전달받으면서 주민들이 원하는 퀄리티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최근 밥주는아파트 주민들의 최대 관심사는 ‘아파트 특식’이라고 한다.
최근 래미안 원베일리에서 진행한 ‘참치해체쇼’ 특식처럼 입주민들의 이목을 끌고, 식사 이용률도 높일 수 있는 특식의 수준과 빈도를 늘려달라는 요구다.
업계 관계자 B씨는 “입주민들이 크리스마스나 기념일에 특식을 제공하는 것을 되게 선호한다”며 “그러면서 자기네 아파트에 이런 특별한 커뮤니티 식음 서비스가 있다는 것이 입소문 나기를 바란다.
알려지면 아무래도 자산가치를 높이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하지만 특식은 ‘특별한 음식’인만큼 조리에 비용이 많이 들 수밖에 없는 상황. 급식업체는 특식에 한해 더 높은 식단가를 줄 것을 요구하고 입주민들은 기존 금액을 유지하면서 특식을 늘릴 것을 요구해 이들간의 ‘단가 줄다리기’도 빈번하게 벌어진다.
입주민회가 입주민들의 민원을 반영한다는 명목 하에 당초 입찰공고와 달리 비용청구 방식을 관리비제에서 식단가제로 바꾸고, 식단가나 지원 비용을 조정하면서 업체와의 갈등이 커지는 경우도 부지기수라고 한다.
업계에서는 아파트 식사 시장에 뛰어드는 업체들이 많아지며 입찰 시 출혈경쟁도 일어나는 것 또한 애로사항이다.
아파트 식사 서비스 제공 이력이 있는 업체를 입찰 참여 조건으로 내걸다보니 후발 주자들은 출혈을 감수하더라도 포트폴리오를 쌓으려고 하는 것이다.
한 단지에서 특식이 나와 입소문을 타면 ‘왜 우리 단지도 같은 업체를 이용하는데 안 해주냐’며 항의가 들어오고, 짧게는 1년마다 돌아오는 재계약 기간에 업체 교체를 위한 비방전이 펼쳐지기도 한다.
업계 관계자 C씨는 “아파트 시공사 수주전에 버금가는 열기”라며 푸념을 늘어놓았다.
아파트 식사 업계는 이 같은 상황에서 ‘서비스 표준화’를 문제의 해결방안으로 보고 있다.
급식업체에서 ‘호텔급 프리미엄 식사 서비스’, ‘관리비 절감을 고려한 가성비 식사 서비스’ ‘시니어 아파트 전용 식사 서비스’ 등 아파트별 사정에 맞는 식사 서비스 상품을 개발하고, 아파트들은 이 식사 서비스를 구독해 같은 비용에 동일한 메뉴를 제공받는 방식으로 발전시키자는 것이다.
이 경우, 급식업체는 안정적인 수급이 가능하고, 보다 투명한 운영이 가능해 입주자 대표단 민원을 상대적으로 덜 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입주자 측에서도 옆단지와 식사서비스를 일일이 비교하고, 급식업체와 불필요한 협상을 하는 빈도가 적어진다.
업계 관계자는 “직장, 학교 등은 식수 예측이 가능해 수익, 식재료 발주 등이 용이하지만 아파트는 가정마다 구성원 수, 라이프스타일이 다르기 때문에 식수 예측이 쉽지 않다”며 “시장이 현재는 초기 단계이기 때문에 다양한 점포를 운영하며 사업성을 테스트하는 단계로, 향후 데이터가 쌓이면 상세 운영에 따른 애로사항이 파악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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