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대남방송 직격지역 강화도 르포
밤 11시부터 새벽 4시 이후까지 방송
女 흐느끼는 소리 등 음산한 소음 위주
휴대폰 음악 소리 덮을 만큼 볼륨 커
주민들, 불면증·불안감 등 고충 토로

경기도 파주시 오두산 통일전망대에서 바라본 북한 황해북도 개풍군 임진강변 일대에서 북한의 대남방송 스피커가 초록색 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2일 밤 11시 3분. 강화도의 한 작은 마을에 ‘귀신 울음 소리’가 골목 골목 퍼졌다.

펜션 마당에서 대화를 나누던 지인들의 눈에 ‘너도 들었냐’는 물음표와 느낌표가 띄워졌다.

‘UFO’ 소리 같은 기괴한 높은 음 아래 음산한 분위기를 내는 낮은 음이 웅얼거리는 기분 나쁜 소리였다.

시간이 지나자 여자가 흐느끼는 소리, 웃는 소리, 중저음 남성의 고함, 짐승의 울음 등이 섞여 흘렀다.


소리는 휴대폰 중간 정도 볼륨으로 틀어둔 음악 소리를 덮고도 남을 만큼 컸다.

이중창이 있는 실내에 들어가도 소리가 들렸다.

거슬리는 소리에 동네 개들이 짖기 시작했고, 주변 펜션 손님들은 하나둘 길가에 나와 휴대폰으로 영상을 촬영했다.

인천 강화도의 한적한 밤이 난데없는 소음에 순식간에 어수선해졌다.


“북한 대남방송이에요. 매일 저럽니다.

얼마 전까지 짐승 소리 쓰더니 오늘 귀곡성으로 바꿨네요”. 소름 끼치는 소리에도 개의치 않고 저수지 밤낚시를 하던 남성의 말이다.

군사분계선(MDL)까지 약 1.5km, 북한까지 3km 떨어진 이곳 강화군 송해면 숭뢰리에서 북한이 송출하는 잡음은 일상이 됐다.


지난달 24일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강화도 주민 안모씨는 대남방송 소음으로 인해 삶이 붕괴되고 있다고 호소했다.

그는 초등생 자녀들이 잠을 못 자 건강이 악화하고 있다며 군 관계자들에게 무릎을 꿇었다.

눈물을 흘리며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숭뢰리에 수십 년째 거주하고 있는 또 다른 남성은 “최근까지 밤낮없이 (방송을) 하더니 이제는 밤 11시부터 다음 날 새벽 4시 정도까지 한다”며 “딱 잘 시간에 방송하는 걸 보면 악의적”이라고 했다.


주민들은 북한의 대남방송이 한국 대북방송과 달리 주민의 짜증을 유발하는 목적뿐이라고 입을 모았다.

숭뢰리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A씨는 “30일 넘게 방송이 계속되고 있다”며 “귀신 웃는 소리, 늑대 울음, 시끄러운 기차 소리, 무전기 잡음 등을 들었다”고 말했다.


이와 달리 한국이 북한에 하는 대북 방송은 북한 정권의 실체를 폭로하는 뉴스나 한국의 체제 우위를 과시하는 콘텐츠들로 구성된다.

북한은 내부 반발을 우려해 러시아 파병 사실을 숨기고 있는데 우리 정부는 대북방송으로 이를 알리고 있다.

케이팝부터 트로트까지 대중음악도 전파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대남방송보다 대북방송의 위력과 효과가 더욱 크다고 보고 있지만, 주민들에게는 의미가 없다.

짧지 않은 기간 소음에 시달린 주민들은 이제 소리에 둔감할 지경이다.

A씨는 “어제 처음에 나온 소음은 들어줄 만하던데요. 그 정도로는 잘 잡니다, 이제”라며 씁쓸하게 미소 지었다.


피로도는 계속 누적되고 있지만 해결 방안은 남북 관계 해빙 외에 없다.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는 “행정적으로든 뭐든 우리 정부가 당장 취할 수 있는 조치가 없다”며 “강 대 강 대치 국면에서 주민들의 고통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한편 소셜미디어(SNS) 등을 통해 대남방송 사실이 알려지면서 강화도에 젊은이들이 ‘대남방송 투어’를 오는 풍경도 펼쳐졌다.

강화도에서 펜션을 하는 B씨는 “얼마 전 청년들이 전화로 대남방송 들리냐고 물은 뒤 실제 투숙했다”며 “소리를 잘 녹음할 수 있는 ‘명당’도 추천해 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수요는 일부에 불과하다.

그는 “북한이 오물풍선 날리고 미사일도 쏘고 분위기가 나쁘니까 전체적으로는 손님이 줄어든 느낌이 있다”며 “여기 강화도 북쪽이 특히 그런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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