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경 포커스 / 선거철마다 부는 역술·무속 논란 ◆
대통령 선거가 다가오면서 청와대 주변과 여의도 일대 역술관·점집에도 정치인과 관료들 발길이 잦아지고 있다.

청와대 인근 내자동에서 6개월 전 개업한 점집 앞을 한 행인이 지나가고 있다.

[김호영 기자]

선거철 주자로 뛰는 정당 후보 외에 '몸값'이 올라가는 사람 있다면 역술가, 점쟁이들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 인공지능(AI)이 아무리 발달했어도 '미래를 예측해 주는 기계'는 없다.

내년 대통령 선거의 정치 판세가 더 혼잡하다 보니 역술가·점집을 찾는 사람이 더 늘었다는 후문도 들린다.

그래서일까. 정치판에서 때아닌 무속신앙 공방이 일어났다.


논란을 촉발시킨 것은 국민의힘 대선 경선후보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다.

야당 주자 TV토론회에 윤 전 총장이 손바닥에 '왕(王)'자를 새기고 나온 것이 그대로 방영되며 경쟁후보들로부터 맹공을 받은 것이다.

천공스승이라는 희한한 기인이 윤 전 총장의 '스승'이라는 논란도 일었다.

윤 전 총장이 "아내 소개로 만난 적은 있지만 몇 번뿐이고 발걸음을 딱 끊었다"고 일축했지만 여당 후보를 비롯해 같은 당 경쟁자들까지 맹공을 퍼붓고 있다.

매일경제신문은 역술·무속신앙이 제1 야당의 대선후보 경선을 뒤덮은 배경을 찾고, 오늘날 한국 정치와 무속의 실제 관계는 어떤지를 알아보기 위해 정치·역술계와 종합인터뷰를 했다.


◆ 불확실한 미래 속 확실한 운명론에 갈증


13대 국회의원 출신의 역술인 이철용 씨는 역술·무속과 정치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 평가했다.

선거가 임박하면 압박감이 심해지는 정치의 특성상 점괘에 대한 의존도가 점점 심해진다는 것이다.

이씨는 2007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나라를 일으킬 큰 지도자는 반드시 경기도 성남에서 나타날 것"이라고 한 기록 때문에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대권주자로 급부상하자 자신을 찾는 이들이 꽤 늘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씨는 "이 지사라는 인물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성남시 풍수지리적 특성에 근거한 분석이었다"고 전했다.

성남은 판자촌 철거민들이 강제 이주해 자리 잡은 역사가 있고, 이런 아픔을 지닌 유권자들로 인해 정치공학적으로도 변화에 대한 열망이 클 수밖에 없었다는 해석이다.

그는 "성남처럼 '버려진 도시'에서 나온 정치인이 큰일을 할 것이란 예측이었다"고 전했다.


이씨는 선거철 벌떼처럼 모여드는 정치인들을 자주 접한 탓에 정치가 무속에 의존하는 것에 오히려 반감을 갖게 됐다고 말한다.

그는 "찾아오는 정치인들에게 '불안하니 점을 보는 것은 이해하지만 역술에 의존하지 말라'는 말을 자주 했다"며 "그러나 정치인 대부분은 '선거 운이 좋을 것이다.

운명이다'처럼 자기가 듣고 싶은 말만 머릿속에 남겨두고 떠났다"고 했다.

결국 옛 사극에서 나올 법한 "왕은 하늘이 내린다"는 '천명' '운명론'에서 대의를 찾고자 하는 갈증이 많다는 얘기다.

이씨는 또 검사·변호사 같은 논리적 법률가 출신 정치인일수록 타인이 전해주는 확신에 의존하고 싶은 경향이 크다고 전했다.

그는 "법률가들은 남의 행위를 재단하고 법리에 따라 판단하는 데 익숙한 사람들인데, 정치에 뛰어드는 순간 자신의 인생이 재단되고 원칙이 없는 미지의 영역 속에서 움직여야 한다"며 그 이유를 설명했다.

공교롭게도 이번 대선에 남은 유력 주자들은 모두 법률가 출신이다.


◆ 역술가가 말하는 정치인 성공 운세는


여의도에서 정치인들을 상대로 전문 컨설팅도 겸하는 남덕역학연구원의 남덕 원장은 정치인에게 가장 기본이 되는 운으로 건강운을 꼽았다.

그는 "정치인은 기본적으로 2~3일씩 잠을 안 자고도 버틸 수 있는 체력을 가져야 하고 대통령 후보라면 두말할 것도 없다.

이 정도의 체력을 갖는 것도 운의 영역"이라고 말했다.

남 원장은 직업 특성에 맞게 주변인과의 상성과 관리능력 운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여러 사람을 이끌어야 하는 만큼 본인의 능력 못지않게 관리능력이 크게 작용하고, 이 역시 참모들과의 상성 등 운의 영역에 달린 부분이 크다는 설명이다.


다만 남씨 역시 역술·무속이 정치에 끼치는 영향은 분명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결국은 정치적 사고와 능력이 밑바탕이 돼야 한다고 전했다.

남 원장은 "정치를 하기 위한 개인 노력과 능력이 따라주지 못하면 기운이 아무리 좋더라도 소용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철용 씨도 "역술의 근원은 농사를 잘 짓기 위해 해와 달을 비롯한 천체의 움직임을 관찰하던 것이다.

정치 활동의 근거로 삼기에는 부족한 측면이 많다"고 했다.


◆ 선거철 후보 이용해 유명세 욕심내는 역술인도


정치와 무속의 관계가 깊어지는 이유를 역술인·무속인들의 '니즈'(Needs)로 설명하기도 한다.

정치인 고객을 두기 위해 역술인·무속인들이 집요하게 공략한다는 설명이다.

의원에게 달라붙는 역술·무속인을 떼어내느라 고생한 경험이 수도 없이 많다고 밝힌 보좌관 A씨는 "정치인 고객이 있다는 것은 단순히 무속인이 신통하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고 전했다.


그는 "정치인을 고객으로 두면 무속인이 해당 정치인에게 로비하는 창구 역할까지 가능해진다.

사업가들은 아예 정치인과 만날 목적으로 무속인을 찾는 경우도 있다"며 "이런 생리를 아는 무속인들은 배우자·보좌진·동료 의원 등 무궁무진한 경로를 통해 집중적으로 공략한다"고 덧붙였다.


정치인 본인이 역술·무속을 싫어하더라도 주변에서 '무속인 말을 안 들어 일이 안 풀리는 것 아니냐'는 말이 돌기 시작하면 조직 내부 관리를 위해서라도 발을 담그게 된다는 것이다.

윤석열 전 총장 역시 스승 논란이 일었던 천공스승을 배우자인 김건희 씨를 통해 알게 됐다.

A씨는 "그만큼 정치인에게 무속인이 엮이는 것은 흔한 일인데, 기성 정치인들은 이런 사실이 알려지지 않도록 극도로 조심한다"며 "이번 대선판에 정치 경험이 길지 않은 인사들이 유독 많아 관리가 덜된 측면이 있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반면, 역술·무속계에서는 야당 경선판의 정치싸움에 생업이 오히려 놀림감이 되고 있는 데에 대한 불만도 있다고 한다.

이성재 대한경신연합회 회장은 "무교는 미신을 믿고 우상을 숭배하는 종교가 아니다.

조상 말씀을 널리 전달해 홍익인간, 재세이화, 광명이세(고조선의 건국이념들) 할 수 있게 하는 민족의 고유 신앙"이라며 "일부 대선 후보들이 한민족의 고유 신앙인 무교를 믿고 살아온 조상을 부정하고 멸시하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문재용 기자 / 박윤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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