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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z Prism] 재난때 은전 베풀던 조선, 지원 아닌 수탈이었다
기사입력 2021-03-04 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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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는 폭정으로 유명하다.

삼정의 문란으로 백성은 관리들에게 엄청난 수탈을 당했다.

이런 폭정 때문에 조선 말기에는 많은 민란이 발생했다.

전국 곳곳에서 백성이 들고일어나 관아를 습격하고 관리들을 공격했다.

동학혁명도 민란에서 시작했다.

고부 군수가 지나치게 백성을 수탈한 것이 동학혁명의 발단이다.


그런데 조선왕조실록을 읽다 보면 이상한 것이 있다.

조선 말기, 조선 왕들은 국민에게 계속해서 은전을 베풀었다.

어느 지방에서 홍수 피해가 크다고 하면, 그 피해 주민들에게 은전을 주었다.

가뭄으로 피해가 발생하면, 그에 대한 은전을 주었다.

조선 8도 어디에선가 재해가 발생하면 조선 정부에서는 그에 대한 지원과 보상을 했다.

이렇게 백성을 위하는 착한 왕인데, 왜 조선 정부를 폭정이라 하는 것일까. 조선 왕들은 정말로 백성을 위한 훌륭한 왕이 아닌가. 이렇게 백성이 어려울 때마다 조선 왕실은 백성을 도우려 노력하고 또 실제 은전도 베풀고 있는데, 왜 백성은 민란을 일으키는 것일까. 조선 왕들은 계속해서 민란을 일으키는 백성에게 오히려 섭섭해하지 않았을까.
문제는 왕들이 백성에게 주는 그 은전이 어디서 났느냐는 점이다.

왕실에 충분히 돈이 있어 그 돈을 나누어준 것이라면 백성은 정말로 고마워했을 것이다.

왕과 관리들이 자기가 지출하는 돈을 절약하고 모아서, 그 돈을 백성에게 나누어준 것이라면 감격하면서 고마워했을 것이다.

그런데 백성에게 주는 은전은 그런 식으로 만들어진 돈이 아니었다.

은전을 주다가 돈이 부족하면 세금을 더 거두었다.

결국 백성에게서 세금을 더 거둬 은전을 베풀었다.

백성에게서 10을 거두어 10을 나누어주면 그래도 괜찮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일에는 항상 행정 비용이 들어간다.

10을 거두면 많아야 8 정도밖에 나누어주지 못한다.

중간에 부패한 관리가 떼어먹으면 10을 거두어 5만 나누어준다.

처음에 백성은 5를 얻은 것에 감격했을 것이다.

훌륭한 나라님이라고 칭찬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이후 조선은 백성에게서 10을 가져갔다.

왕실이 전국 많은 백성에게 은전을 베풀수록 백성의 생활은 점점 더 어렵게 되어간다.


백성에게 세금을 걷는 것만으로는 어려워지자, 조선 왕실은 돈을 찍어냈다.

엄청나게 돈을 찍어내서 돈 가치는 추락했다.

조선 말기 2~3일이라도 여행을 하려면 당나귀 등에 엽전 꾸러미들을 가득 싣고 가야 했다.

이렇게 돈 가치가 떨어지니 백성의 생활도 더 어려워진다.


조선 왕들은 백성에게 정말 잘하려 했던 것 같다.

백성이 어렵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뭔가 도와주려 했고, 자연재해를 당할 때마다 은전을 베풀었다.

그런데 은전을 베푸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었다.

은전을 베풀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그 조건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냥 어렵다는 백성에게 돈을 나눠주기만 할 뿐이었다.


고려 시대도 마찬가지다.

고려도 백성에게 참 잘했다.

나이가 많은 노인에게 잔치를 베풀었고,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구휼 제도가 참 많았다.

그렇게 백성을 잘 돕는 국가였는데, 막상 많은 백성이 높은 세금 부담을 피해 유랑민이 되었고, 스스로 권문세가의 노비가 되었다.


지금 많은 대한민국 국민이 코로나19 때문에 어렵다.

국민에게 지원금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고, 이럴 때 국가가 국민을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것이 정부 역할이기도 하다.

하지만 고려해야 할 것은 고려해야 한다.

그 돈을 어디에서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는 미리 준비되어야 한다.

어떻게 해야 어려운 사람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고, 부작용이 최소화될지에 대해서도 고려해야 한다.

그러지 않고 단순히 국민에게 돈을 나누어주는 것 그 자체가 목적이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분명히 백성을 위해서 많은 은전을 베풀었는데 막상 백성의 삶은 점점 어렵게 되어가는 조선처럼 되고 만다.


착한 사람은 재난지원금에 찬성하고, 나쁜 사람은 재난지원금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기본소득도 마찬가지다.

국민을 위하는 사람들은 기본소득에 찬성하고, 국민 삶에 관심 없는 사람들이 기본소득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재난지원금, 기본소득이 좋은 정책이냐 나쁜 정책이냐는 그 자금을 어디서 어떻게 마련하고 누구에게 얼마를 지원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아무 생각 없이 나누어주기만 하면, 의도는 좋았지만 결과는 비극이었던 조선의 은전 시책과 다를 것이 없어진다.


[최성락 동양미래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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