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일본에 25%의 상호관세 부과 방침을 발표한 것과 관련해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진심으로 유감"이라는 반응을 내놓았다.
오는 20일 참의원(상원) 선거를 앞두고 있어 일본 정부가 적극적으로 관세 협상에 임하기 어려운 가운데, 사실상 협상 기일이 다음달 1일로 연장된 것에 안도하는 분위기다.
8일 NHK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이시바 총리는 이날 총리 관저에서 주요 각료들이 참석한 종합대책본부 회의를 열고 미국 관세에 대한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이시바 총리는 "일본 정부로서 안이한 타협을 피할 것"이라며 "요구해야 할 것은 요구하고 지켜야 할 것은 지킬 수 있도록 엄격하게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8월 1일로 사실상 협상 기한이 연장된 것"이라며 "국익을 지키면서도 양국의 이익이 되는 합의를 목표로 협상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4월 트럼프 대통령이 공개한 일본의 상호관세율은 24%였지만, 이번에는 1%포인트 오른 25%로 한국과 같아졌다.
하지만 이달 초 트럼프 대통령이 "일본에 대한 관세가 30~35%가 될 수도 있다"고 엄포를 놓은 상황이라 일본 정부는 다소 안도하는 모습이다.
만약 예상외로 높은 관세가 부과됐다면 선거에서 여당에 커다란 악재가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 진행 중인 참의원 선거에서는 연립 여당이 과반수 의석을 차지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는 등 좋지 않은 상황이다.
표심을 의식해서인지 여당인 자민당에서는 미국에 대해 의외로 강경한 발언을 내놓기도 했다.
오노데라 이쓰노리 자민당 정무조사회장은 이날 열린 당 회의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내용이 아니다"며 "편지 한 장으로 통고하는 것은 동맹국에 매우 예의 없는 행위로 강한 분노를 느낀다"고 말했다.
미국과 일본은 지난 4월 상호관세 발표 이후 최근까지 일곱 차례 각료급 협상을 했다.
지난달에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자리를 빌려 미·일 정상회담도 했지만 합의안 도출에는 실패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농수산물 수입 확대와 방위비 인상을 내심 바라는 분위기다.
자동차 관련 관세의 경우 미국 무역적자의 주범이기 때문에 협상 대상이 아니라는 게 미국 측 입장이다.
반면 일본은 자동차 관세에 대해 강경한 태도다.
일본 내 최대 산업이자 대미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0%에 달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집권 자민당의 핵심 지지기반이 농민이어서 농수산물 수입은 일본에서 금기사항으로 통한다.
양국이 서로 엇박자를 내면서 협상은 장기화되고 있다.
특히 일본은 참의원 선거 전까지 결론을 내리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협상을 타결지으려면 미국에 대폭적인 양보를 해야 하는데, 이는 선거에서 악재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일 협상은 참의원 선거 이후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한편 내각부가 전날 발표한 올 5월 경기 동향 지수에 의한 경기판단이 2020년 7월 이후 4년10개월 만에 '악화'로 돌아섰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20년 코로나19
대유행 사태 등을 보면 경기판단이 '악화'로 돌아선 뒤 경기가 후퇴 국면을 맞았다.
내각부의 경기판단은 '회복' '완만히 회복' '정체' '둔화' '악화' 등 5단계로 나뉘는데 '악화'라는 표현은 매우 신중하게 사용된다.
이번에도 지난 4월에 '둔화', 지난달에 '정체' 등 용어를 사용하다 이번에 '악화'로 돌아선 것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경기판단이 '악화'가 됐다는 것은 경기후퇴 국면에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정책으로 경기 하방 압력이 한층 더 높아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도쿄 이승훈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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