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주 = 중동의 '앙숙' 이스라엘과 이란의 충돌은 단순한 지역분쟁이 아니었습니다. 중동의 작은 도화선 하나가 글로벌 공급망 전체를 위협할 수 있다는 현실은 다시 한 번 확인됐습니다. 글로벌 금융시장은 진정 국면에 접어들었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단기 반등에 안도할 때가 아닙니다. 매일경제TV는 프리미엄 콘텐츠 플랫폼 《CEO인사이트》 제 17호 '냉전2.0: 안보가 공급망을 지배한다'에서 기업과 경영인의 대응 전략을 알아봅니다.
◇ 방패 뒤의 전략가…휴전 속 질서 재편
이스라엘과 이란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중재로 단계적 휴전에 돌입했습니다.
'전면전 확산'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가까스로 피한 모양새입니다.
그러나 총성은 멎었지만, 그보다 더 복잡하고 깊은 설계가 조용히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골든돔(Golden Dome)', 트럼프식 세계 전략입니다.
재집권에 성공한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초인 올해 1월 27일 차세대 미사일방어체계를 구축했습니다.
미 국방부는 이 프로젝트를 이스라엘의 첨단 방공 시스템인 '아이언돔(Iron Dome)'에서 착안해 '골든돔'으로 명명했습니다.
중국과 러시아, 북한 등의 미사일 역량이 고도화되면서 미 본토에 대한 위협을 막기 위해 골든돔을 개발하겠다는 구상입니다.
골든돔은 적 미사일을 발사 직전에 작동 불능 상태로 만들거나 발사 직후 로켓 상승 단계에서 요격하도록 개발될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이스라엘의 아이언돔이 이란에게 뚫리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골든돔에 대한 열망은 커졌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옵니다.
물론, '트럼프의 방패'로 일컬어지는 골든돔은 단지 군사 전략만은 아닙니다.
넓은 의미에서는 외교, 에너지, 공급망, 기술동맹까지 포함된 '글로벌 전략적 방어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즉, 골든돔은 미국 주도의 '전략적 질서 설계'를 상징합니다.
이스라엘과 이란의 휴전 역시 "트럼프가 중동에 다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입니다.
그는 무력을 쓰되 전면전은 피하고, 경제와 안보를 연결해 글로벌 블록을 재편해왔습니다.
◇ 여전한 지정학적 리스크…기업 체크리스트는?
휴전이 선언됐다고 해서 리스크가 끝난 것은 아닙니다.
미국이 이란을 직접 공격함으로써 글로벌 금융시장이 최악의 시나리오로 간주해 온 '호르무즈 해협 봉쇄'의 현실화 가능성은 급부상하고 있습니다.
미국이 다시 직접 공격해온다면 이란은 그 공격에 대응해야하는 상황이며, 그들이 쓸 수 있는 카드 중 하나로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사용할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최예찬 상상인증권 연구원은 "미국까지 이란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을 단행했기에 이란은 향후 결정에 고심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며 "직접적인 공격 대상의 선택지가 이스라엘에 더해 미국 등 서방으로 확장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전문가들은 기업들이 이같은 흐름 속에서 다음 세 가지를 재점검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첫째, 공급망과 원자재 계약 구조입니다.
호르무즈 해협이 일시적으로라도 봉쇄된다면 유가 급등은 물론, 해상 물류비, 보험료, 원자재 가격이 연쇄적으로 상승합니다.
이는 제조업뿐 아니라 유통, 물류, 건설, 식품, 바이오 등 모든 업종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특히,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산업군일수록 단가 인상이나 납기 지연 리스크에 사전 대비해야 합니다.
둘째, 글로벌 파트너십과 블록 전략을 재점검해야 합니다.
미국은 안보와 통상, 기술을 연계해 '신동맹 구조'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반도체, 배터리, 인공지능 같은 핵심 산업에서 '우방 중심 공급망'이 현실화되고 있으며, 여기에 적극적으로 편입되지 못하는 기업은 차등적인 대우를 받을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지금 소속된 글로벌 블록이 어디인지, 그 안에서 어떤 역할과 위치를 확보하고 있는지를 냉정하게 분석해야 합니다.
셋째, 위기 판단 체계와 시나리오 플래닝입니다.
지정학 리스크는 이제 특정 지역의 외부 변수에서 그치지 않고 있습니다.
그것은 실적, 사업계획, 인사조직, 심지어 기업의 ESG 전략에도 직접 영향을 미치는 '내부 변수'가 됐습니다.
전문가들은 "위기 상황일수록 조직 내 전략 리더십의 속도와 일관성이 핵심"이라고 말합니다.
전략 수립의 초점은 '정보'가 아닌 '판단'으로, 기업들이 확인해야 할 것은 뉴스가 아니라 의사결정의 프레임입니다.
위기 때마다 매번 의사결정 체계를 새로 짜야 한다면 기업은 속도에서 지게 됩니다.
불확실한 세상에서 가장 확실한 리스크는 결정을 늦추는 조직과 프로세스입니다.
예측보다 중요한 것은 '발 빠른 전환'이며, 정보보다 중요한 것은 '시나리오'입니다.
◇ 지정학의 틈에서 경영 전략을 묻다
물론, 이번 중동 사태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처럼 장기화될 가능성은 낮습니다.
하지만 지정학적 충격파가 반복되고 있으며, 그 주기는 점점 짧아지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라 경영 전략에 영향을 주는 상시 리스크 환경이라는 점에서 근본적 전환이 필요합니다.
트럼프의 방패는 단지 무기를 뜻하지 않습니다.
미국이 앞으로 어떻게 세계 질서를 재구성하고, 그 안에 어떤 기업과 국가를 포함시킬지를 보여주는 상징입니다.
"한국 기업은 그 틀 안에서 능동적으로 선택할 것인가, 수동적으로 끌려갈 것인가."
이는 결국 단기적인 주가보다 더 큰, 기업의 미래 지속 가능성에 직결된 질문입니다.
휴전은 평화가 아니라, 방패 뒤에서 설계되는 또 다른 질서의 시작입니다.
지금 우리는 어떤 방향으로 방어선을 구축하고 있을까요?
위기는 늘 누군가에게 기회였고, 그것은 판단의 속도에서 갈렸습니다.
[ 이나연 기자 / nayeon@mk.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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