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SIS 본다르 연구원의 정세 분석
트럼프, 젤렌스키 적격성 시비로
우크라에 ‘친러 지도체재’ 위험성
푸틴 ‘
하이브리드 전쟁’과 일맥상통
“종전협상보다 파괴적 결과 만들 것”
‘강제로 권력 교체를 유도하도록 하는 건 러시아의 플레이북에 나오는 익숙한 수법이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최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정통성에 시비를 건 것이 사소한 공격이 아닌, 정전 협정보다 더 파괴적인 결과를 우크라이나에 야기할 수 있다는 외교안보 전문가의 경고가 나와 눈길을 끈다.
캐터리나 본다르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
CSIS) 연구원은 19일(현지시간) 외교 전문 매체 포린폴리시(FP)에 올린 글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젤렌스키 대통령을 향해 ‘선거 없는 대통령’이라고 비판한 배경에 대해 이 같이 향후 파장을 경고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공격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기존 대우크라이나 선전 공세와 동일하며 역내 지정학에 파괴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되자 종전 협상이 본격화할 것에 대비해 자체 평화 협정 구상을 만들에 트럼프 당선인과 소통해왔다.
미국의 군사 지원 또는 잠재적인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 가입 지원을 매개로 자국이 보유한 광대한 희토류와 천연자원 접근권을 교환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을 우크라이나로 보내 전달한 양국 간 거래의 조건은 사실상 우크라이나를 ‘경제 식민지’화하겠다는 것에 다름 없었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의 확실한 안보 보장 약속은 하지도 않고 우크라이나가 보유한 광물과 석유 및 가스 매장지, 전략 인프라스트럭처 등에서 창출되는 수입의 절반을 가져가겠다는 내용이었다.
이와 별개로 지난 18일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에서는 우크라이나가 배제된 채로 미국과 러시아 간 우크라이나 종전 협상을 논의하는 첫 고위급 회담이 열렸다.
전쟁의 이해관계자인 유럽의 패싱 논란은 제외하더라도 교전 당사국인 우크라이나가 강대국 간 밀실협상으로 철저히 배척되고 있는 상황이다.
본다르 연구원은 이 회담 이후 전개될 협상 시나리오로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젤렌스키 대통령의 적격성 문제를 공격한 점을 주목했다.
평화 협정이 체결되기 전에 우크라이나에서 조기 선거를 실시해 현 젤렌스키 대통령을 권좌에서 끌어내리고 친러 정권이 집권할 가능성을 경고한 것이다.
2019년 5월부터 대통령직을 수행하고 있는 젤렌스키 대통령은 전쟁으로 계엄령을 선포했다 2024년 3월 대선이 연기됐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종전과 함께 조기 대선을 치를 것임을 밝혔지만 푸틴 대통령은 그가 계엄령으로 권력을 불법적으로 유지하고 있다며 협상 파트너로 인정할 수 없음을 강조해왔다.
본다르 연구원은 “트럼프는 우크라이나가 전쟁을 일으킨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며 협상의 전제 조건으로 우크라이나가 새 선거를 치러야 한다고 말했다”라며 “젤렌스키를 제거하고 선거를 실시하는 것은 바로 러시아가 기다리고 있는 바”라고 설명했다.
이어 “푸틴 대통령은 2024년 예정됐던 우크라이나 대선이 전쟁으로 연기됐기 때문에 (임기가 만료된) 젤렌스키 대통령은 ‘불법’이라며 그가 향후 평화 협정에 서명할 권리가 없다고 주장해왔다”라며 “젤렌스키를 축출하면 푸틴은 이번 전쟁의 주요 목표 중 하나를 진전시켰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우크라이나 지도부가 친러 성향으로 재편되면서 푸틴 대통령에게 유리한 영향력을 부여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러시아는 허위 정보를 퍼뜨리고 친러시아 내러티브와 정치 후보를 홍보하는 잘 짜여진 플레이북으로 외국 정부에 침투해왔다”라며 “‘
하이브리드 전쟁’으로 불리는 이 전략은 서구의 이상에 부합하는 국가를 상대로 정치적 방향 전환을 유도해 모스크바의 영향력 아래에 두는 데 사용된다”고 경고했다.
하이브리드 전쟁은 물리적 교전과 별개로 교전국에 가짜 뉴스를 퍼뜨리고 정치적 혼란을 유발하는 등 심리·사이버전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집권자를 축출하고 내부 분열과 혼란, 정치적 부패를 틈타 친러시아 지도부를 점진적으로 침투시키는 게 지금까지 러시아가 능수능란하게 전개해온
하이브리드 전쟁 전략이었다는 것이다.
본다르 연구원은 “미국이 우크라이나를 보호해야 할 파트너가 아닌 뽑아내야 할 자원으로 취급한다면 우크라이나는 다시 러시아 궤도에 편입될 것”이라며 “이 시나리오야말로 영토나 (나토 가입 등) 안보 보장을 두고 이뤄지는 어떤 종전 합의보다 훨씬 파괴적인 결과를 맞게 된다”라고 거듭 강조했다.
한편 트럼프의 절친이라고 평가받는 보리스 존슨 전 영국 총리조차 트럼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먼저 시작한 쪽이 러시아가 아닌 우크라이나라고 언급한 것에 대해 “미국이 진주만에서 일본을 공격했다고 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꼬집었다.
우크라이나 대선이 지연된 것에 점에 대해서는 “폭력적인 침략을 당하고 있는 나라는 선거를 치르지 않는 게 당연하다”며 “영국도 (2차 세계대전 중이었던) 1935년부터 1945년까지 총선을 치르지 않았다”고 부연했다.
그는 “젤렌스키 대통령의 지지율이 4%라는 것도 사실이 아니다”라며 “실제로 그의 지지율은 트럼프 대통령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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