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주 = 매일경제TV 프리미엄 콘텐츠 플랫폼 'CEO인사이트' 3호에서는 인터뷰 프로그램<이야기를 담다>의 제작진과 출연진이 직접 나서 촬영 후일담을 공개한 내용이 담겼습니다.
금난새 지휘자는 이 자리에서 본인의 미래 계획을 밝히면서 "2025년에 월드피스페스티벌(World Peace Music Festival)을 계획하고 있다"면서 "평화를 위해 모두가 즐기는 축제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밝혔습니다.
또 "어떻게 하면 나이가 들어도 젊은 생각을 유지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나의 모습을 방송에 담을 수 있어서 기뻤다"며 출연 소감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이야기를 담다> 비하인드는 김원경 PD('김 피디의 비하인드 컷')와 아나운서 이담('이담의 뒷담; 뒷이야기를 담다'), 김수진 작가('김 작가의 크레딧 쿠키') 등 제작진과 출연들이 각자의 시선에서 바라본 촬영장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이야기를 담다>비하인드는 'CEO인사이트'를 통해 격주 단위로 공개됩니다.
<이야기를 담다>는 매주 목요일 저녁 6시 30분에 매일경제TV와 유튜브를 통해 만나볼 수 있습니다.
다음은<이야기를 담다>비하인드 금난새 지휘자 편 전문.
◇ <김 작가의 크레딧 쿠키> - 김수진 작가
#난새의 영웅
한 번 들으면 절대 잊히지 않는 이름이 있다. 금. 난. 새 이 보다 강렬하고 충격적인 이름 석 자가 또 있을까?
김녕 김 씨 족보도 무시한 금 씨 성에 '하늘을 나는 새'라는 순 한글 이름을 가진 1947년 생!
같은 또래, 가장 많은 남성 이름은 '영수와 영호', 여성 이름은 '명자와 춘자'던 시절이었다.
'금난새'라고 명명한 선구자적 네이밍은 범상치 않은 그의 삶의 초석을 다졌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한자로 쓰면 될텐데 아버지가 굳이 한글로 써야 된다고, 성씨도 김(金)씨인데, 금 씨로 정했죠."
특이한 이름만큼 특별했던 지휘자. 그는 음악인이면서 기업인이고, 또 기획자이자 교육자다. 인천시립교향악단 상임지휘, 유라시안 필하모닉의 음악감독 겸 CEO, 뉴월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음악감독, 성남시립예술단 총감독, 창원대학교 석좌교수…모두 열거하자니 입이 아프고 8.9 × 5.1cm 명함 안에 담기엔 공간이 부족하다.
굳이 무엇을 하지 않아도 되는 한국 최고의 지휘자는 사실, 지금 이 순간에도 꽤 바쁘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은 일본 히로시마. 1945년 8월 원폭 투하 당시 무려 74만 명의 피폭자가 발생했던 곳이다.
"희생된 분의 영령 앞에서 우리가 그 상처를 치유하자…전 세계가 전쟁으로 몸살을 앓고 있잖아요. 음악으로 평화의 다리를 놓고 싶어요."
히로시마 평화 음악회를 비롯해 세계 여러 도시를 돌며 전쟁 없는 평화를 염원하는 '월드 피스 뮤직 페스티벌'을 준비하고 있다.
전쟁이나 무질서로 살기 어려운 세상에서 세상을 구원한 이를 우리는 난세의 영웅으로 칭한다.
그는 진정한 난세의 영웅, 금난새다.
# 친절한 난새 씨
검은 연미복과 당당한 걸음걸이, 망설임 없는 확신에 찬 기세, 차가운 침묵과 엄격한 눈빛,관중을 몰입시키는 단호한 몸짓. 그리고. 단번에 오케스트라를 압도하는 손짓. 회초리 같은 지휘봉을 잡은 지휘자에겐 친근감 보다는 위압감이 앞선다.
하지만, 지휘자 금난새는 그 반대다. 지휘봉은 허공에 그림을 그리고 그의 손끝은 늘 춤을 춘다.
박수 타이밍이라도 놓칠까 숨 막히는 공연장에 먼저 관중들에게 말을 거는 금난새.
그의 서글서글한 눈매와 조근조근한 말투는 어려운 클래식으로부터 사람들을 무장 해제시킨다. 품격을 해치지 않는 재치 있는 해설은 저 멀리 미국의 대통령마저 홀린다.
"Mr. President! Would you mind listening to my explanation?"
지휘봉을 휘두르는 자가 아닌 클래식을 아우르는 자! 그래서 나는 그를 친절한 난새 씨라고 부른다.
◇ <이담의 뒷담; 뒷이야기를 담다> - 이담 아나운서
최초 ㅇㅇㅇ, 최고의 ㅇㅇㅇ. 클래식. 상임지휘자.
그런 그는 "음악은 서비스업"이라 말했다. 흔히 '짜고 치는' 앵콜을, 짜고 치지 않는다고 한다.
그는 어떤 사람일까? 궁금해졌다.
# 독수리 금난새
금.난.새. 이름에서부터 느껴지는 포스가 있다.
그의 아버지는 김 씨 성을 금 씨로 바꿨다.
1945년 광복 때, 쇠 금(金)을 한글 그대로 '금'이라 읽겠다고 하고 자녀들의 이름도 금 씨로 지었다고 한다.
아들들은 대부분 돌림 자를 사용하던 그 시절, 돌림 자를 무시하고 아들 이름을 '난새' 라는 순 우리말 이름으로 지었다.
이것만 들어도 아버지도 보통이 아니시고, 그 이름으로 평생을 살아온 아들도 보통이 아닐 터.
어떤 의미에서든 보통 아닌 삶을 살았을 금난새라는 사람을 공부하기 전, 나는 그가 하늘을 호령하며 날고 있는 큰 독수리처럼 느껴졌었다.
게다가 '클래식'이다.
내 친구 중에는 이른바 '샤이 클래식파'가 있다. 클래식을 좋아한다고 하면 허세 소리를 들을까봐 그런 말을 못한단다. 좋아한다고 말하기도 눈치 보이는 그런 장르다. 괜히 어려운 장르다.
금난새는 어릴 적 AFKN(주한미군방송)에서 접했던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의 '청소년을 위한 연주회'에서 큰 감명을 받았다고 했다.
그 연주회 영상을 찾아봤다. 거기서 레너드 번스타인은 이런 말을 한다.
"Music is never about anything. Music is just it." 그 말이 나를 클래식으로부터 무장해제 시켰다. 금난새도 그렇지 않았을까?
# 친절한 클래식
그래서일까? 그의 음악회는 어렵지 않다. 해설이 있다. 얼마나 친절한가.
그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사랑받는 지휘자다. 그 위치를 갖게 된 큰 계기 중 하나가 바로 '해설이 있는 청소년 음악회'였다.
예술의 전당 기획 프로그램으로, 6년 동안 전회, 전석 매진이었다고 한다.
그의 연주를 유튜브에서 찾아봤다. 흔히 클래식 공연이라고 하면 뻣뻣하고, 웅장하고, 조용한 분위기가 떠오른다.
그의 연주는 좀 달랐다. 곡을 조각 조각 나누고, 일일이 설명하며 연주를 잘랐다. 관객이 소리 내어 웃기도 한다. 지휘자가 춤도 춘다.
"음악은 서비스업이다.", "위대한 음악을 한다고 해서 자기가 위대한
사람인 줄 알면 착각이다.", "할아버지 합창단이나 베를린 필하모닉이나 모두 똑같은 음악이기 때문에 중요하다."
아! 금난새는 이런 사람이다.
# 수다 떠는 금난새라니
가끔 '이야기를 담다' 인터뷰가 끝나고 제작진들도 모여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더 하고 가시는 인터뷰이들이 있다.
금난새 선생님께서는 가장 신나게, 가장 오래 우리와 '수다'를 떨고 가셨다. 감히 선생님에게 수다를 떤.다.라니 싶지만 우리는 정말 수다를 떨었다.
지휘했던 음악회 영상, 사진들을 보여주시며 아이처럼 신나하시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그의 눈에선 빛이 났다. 입가의 미소는 멈출 줄을 몰랐다.
아직도 이렇게 사랑과 열정이 있으시다니! 여전히 이렇게 설레신다니!
수다가 길어진 김에 여쭤봤다.
"클래식 공연에 가면 부담이 돼요. 박수도 아무 때나 치면 안되고… 좋아도 너무 좋아하면 안되고…."
그러자 그가 말했다. "내 공연에 오면 돼요." 이보다 멋진 대답이 있을까?
# 파랑새 금난새
그는 독수리가 아니었다. 파랑새처럼 경쾌하게 날고 있었다.
세계 곳곳을 다니며 연주한 그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을 물으니 그는 울릉도라 이야기했다. 섬마을 아이들에게 교향악을 들려주고 싶어 무리하게 진행했단다.
또 그는 전쟁으로 시름하는 지구촌에서 전쟁의 상처를 치유하는 음악회를 열고 싶다고 했다.
금난새의 '피스 뮤직 페스티벌'. 이미 아픔이 있는 일본의 히로시마도 다녀왔다.
그는 정말 파랑새다.
그의 연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치유됐으면 좋겠다. 행복을 전하는 금난새 지휘자가 이 세상을 더 훨훨 날았으면 좋겠다.
◇ <김 피디의 비하인드컷> - 김원경 피디
녹화장 너머로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린다.
며칠 동안 유튜브에서 들었던 목소리라 그런지 내적 친밀감이 올라온다. 부드러우면서도 배려 깊은 목소리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연둣빛 와이셔츠에 녹색 넥타이, 양말까지 녹색빛으로 단장하셨다.
지누션의<멋쟁이 신사>노래가 떠오른다. 멋쟁이 신사 나가신다 길을 길을 비켜라.
멋쟁이 신사 금난새!!
#귀공자풍 #우아 #세상멜로 #열린마인드 #부드러운#에티튜드 #돈키호테
열정 가득 했던 금난새 선생님의 비하인드 컷을 들여다보자.
# 음악은 삶 속에 있어야…"가난했지만 금수저였다"
항상 그렇듯이 녹화는 뒤로 갈수록 입담이 터진다. 그래서 추가 인터뷰엔 생각지도 못한 에피소드들이 나오기도 한다.
방송엔 편집해달라고 하셨던 정치인 출신 아버지 때문에 집에 빨간딱지 붙은 사연까지.
성악가, 지휘자, 작사 및 작곡가에 음악 교육학자셨던 아버지, 피아노를 배운 적 없는 어머니는 어딘가에서 들은 음의 조성을 재연해냈다고 한다.
음악을 사랑하셨던 아버지와 어머니, 가난했지만 '음악 금수저'였던 그의 어린 시절을 추억한다.
금난새 : 저희는 진짜 어릴 때부터 순탄하고 행복한 가족이었어요. 부자라는 것보다 행복했어요. 부모님께서 음악을 다 하셨고 음악을 또 좋아하시고 사랑하시니까 가족들이 만나면 노래하고 피아노치고 가족 음악회가 있었어요. 어머니가 피아노를 잘 치시고 누가 노래하면 그냥 악보 없이 치는 그런 어머니였어요. 그러니 뭐 아무래도 음악이 흐르니까 저의 어릴 때는 행복한 가족이었어요.
이담 : '음악 금수저'라는 게 사실이네요.
금난새 : 음악적으로 같이 나눌 수 있는 대화의 장이 중요해요. 서양 음악가들 보면 집에서 피아노 치면서 심포니도 치고 집에서 음악회를 하잖아요. 그런 점에서는 제가 서울예고 교장 할 때도 아이들한테 콩쿠르 나가고 시험 치는 것만이 음악이 아니죠. 가족들한테 '오늘 이런 곡을 하는데 좀 들어봐 줄래요'라고 집에서 작은 음악회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렇게 '음악은 삶 속에 있어야 한다.' 어릴 때 제가 몸소 느꼈죠.
그는 독일 유학 중 맥줏집에서 친구들이 편하게, 사위와 장인이 함께 합창하던 모습들을 복기했다.
음악은 콘서트홀에서만 있는 게 아니라 어디나 있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음악은 삶 속에 녹아 있어야 한다.'
음악 DNA를 갖고 태어난 금난새. 그가 세계적 거장이 될 수 있었던 건 음악 DNA보다 음악을 편하게 즐기고 사랑했던 그의 가정환경 때문이 아닐까?
# "독일 유학, 나는 불법체류자였다" 스승이자 또 하나의 아버지, 라벤슈타인
1994년 세계연맹 청소년연맹의 참관인 조건으로 한 달 여권이 나왔다.
무작정 독일 학교를 찾아가 여기 선생이 있냐 묻고 두 사람을 소개받는다. 그중 한 분이 라벤슈타인 교수.
금난새의 스토리를 듣고 음악적 기질을 테스트한 후 충격적인 제안을 한다.
"난 너라면 한국에 안 간다. 27살 이미 늦었는데 한국에 가면 더 늦다.남는다면 내가 가르치겠다."
그는 그렇게 불법체류자가 됐다.
금난새 : 한국도 모르는데 어떻게 저렇게 친절할 수 있을까? '자기가 교수고 가리키는 직업이니까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가르친다.' 음악을 배우는 것도 있지만 그 사람의 태도를 배웠어요. 모든 수업을 공짜로 받으면서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손 내미는 방법을 배웠죠. 한국에 돌아와서 소외된 지역을 찾아 오케스트라를 함께 즐겼어요. 라벤슈타인 교수, 그는 스승이자 또 한 명의 아버지였어요.
이는 그가 귀국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재능있는 후배들을 어떻게 도울 것인지, 소외된 지역에 오케스트라를 어떻게 전파할 것인지 고민하게 된 배경이다.
녹화가 끝난 후, 20여 분의 시간 동안 녹화 때 보다 더 큰 목소리로 흥에 겨워 이야기를 나눈다.
여기저기 야외 공연 영상을 보여주시면서 뜨거운 박수를 전해주신다. 엘리트 클래식 현장이 아니라 그냥 공터에서, 잔디밭에서 청중들은 그에게 기립 박수를 보내고 있다.
77세, 희수의 나이에 어떻게 이런 열정이 있을까. 녹화 후에도 열기가 가라앉지 않은 열정!!
선생님 오래 오래 건강하세요. 저도 또 하나의 스승을 마음 속에 담아봅니다.
◇ <이야기를 담다,그 후> - 금난새 지휘자
# 마음속 여운을 남긴 특별한 인터뷰
인터뷰는 정말 즐거운 시간이었어요. 아나운서와 인터뷰를 진행한 후 작가님과 추가 인터뷰를 이어갔는데, 색다른 구성 덕분에 새로운 느낌이 들어서 인상 깊었죠.
사실 녹화 당일에 컨디션이 좋지 않아 몸이 불편했음에도 불구하고 재미있게 잘 마칠 수 있어 기뻤어요.
인터뷰를 위해 GREEN 계열로 의상을 맞춰 입었는데요, 초록색이 제 성향을 가장 잘 드러내 주는 색이라 생각해요.
그런데 그날 방송 배경이 핑크색이라서 어울릴지 걱정했는데, 색이 상충되면서 오히려 세련되고 특별한 느낌이 나더라고요.
특히, 미래 계획에 대한 질문이 가장 기억에 남았어요. 월드피스페스티벌(World Peace Music Festival)을 계획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방송에 전할 수 있어 기뻤습니다.
'나의 아이디어'라고 표현했지만, 평화를 향한 이 아이디어가 모두의 것이 되어 함께 평화를 향해 즐길 수 있는 축제가 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방송에서도 이야기했듯이, 2025년에 꼭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보려 해요.
독일 유학 시절에 대해 이야기한 부분은 저에게도 큰 의미가 있었어요. 금전적 여유는 없었지만, 마음의 부유함과 정신적 행복감을 통해 진정한 '부자'의 의미를 배웠던 순간들을 떠올리며, 저 스스로도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방송으로 다시 보면서 그 시절의 기억들이 새삼스럽게 떠올랐죠.
방송을 통해 저의 새로운 모습을 보신 지인분들이 연락을 주셔서 반가웠고, '금난새의 색다른 모습을 보게 되어 좋았다'는 말을 들었을 때 참 기뻤습니다.
인터뷰 중에 자연스럽게 제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저 역시 제 자신을 돌아보고 감동을 느낄 수 있었던 경험이었어요.
어떻게 하면 나이가 들어도 젊은 생각을 유지할 수 있을지, 권위에 얽매이지 않고 늘 새로운 생각을 유지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저의 모습이 방송에 담기게 되어 기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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