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쓰비시 보유국’ 왜 캐나다 잠수함 사업 주저할까···한국도 ‘인재부족’ 사정권 [★★글로벌]

日방산의 꽃 미쓰비시·가와사키
70조 캐나다 잠수함 입찰 소극적
엔지니어직 기피하는 청년들에
대기업도 ‘인재부족’ 상시 노출

입찰포기 땐 한화·HD현대 호기
K방산, 고마진 ‘내부일감’ 심화
중소社와 ‘상생 백년대계’ 필요

우리 해군이 운용하는 3000t급 중형 잠수함인 도산 안창호함 모습. <사진제공=한화오션>
[세계에서 가장 긴 해안선을 가진 북극, 대서양, 태평양 국가인 캐나다는 새로운 잠수함 함대가 필요하다.

최대 12척의 잠수함을 조달하면 해양 위협을 탐지·억제하고, 해상 접근을 통제하며, 해안에서 더 멀리 상대 전력을 투사할 수 있다.

우리는 업계 파트너와 협력해 ‘강하고 자유로운 우리 북부’의 우선순위를 뒷받침하는 이 중요한 프로젝트를 실행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빌 블레어 캐나다 국방장관]
캐나다 국방장관의 발언은 지금 한국에 ‘단군 이래 최대 방산수출 계약’이라는 꿈을 키우고 있습니다.


수 십조원으로 추정되는 현대식 잠수함 12척 획득 사업이 바로 그것입니다.


업계에서 회자되는 추정 사업비는 한국의 체코 원전 수주액(24조원)보다 높습니다.


캐나다 해군을 상대로 러브콜을 보낼 글로벌 플레이어들은 일본(가와사키중공업·미쓰비시중공업), 한국(한화오션·HD현대중공업) 및 기타 스웨덴과 스페인, 독일, 프랑스에 분포해 있습니다.


캐나다 해군이 일본 업체들에 희망하는 사양은 큰 고래를 뜻하는 ‘타이게이급’입니다.

최근 사양은 3000t에 전장 84m, 폭 91m 규모로 리튬이온 배터리가 장착됩니다.


한국 업체들에 희망하는 사양도 이와 유사한 ‘KSS Ill Batch II급’입니다.


일본보다 취역이 늦지만 우리 업체들은 일본과 같은 3000t급 잠수함에 리튬이온 배터리를 탑재한 첨단 사양으로 캐나다의 눈높이를 맞출 예정입니다.


다행일까요. 한국과 일본이 아닌 다른 유럽 방산 플레이어들에 캐나다가 희망하는 유사 사양은 해당 업체들에서 제작 완성이 아닌 ‘설계 중’(in design) 상태입니다.

그만큼 아시아 방산 기업의 기술 수준이나 제작 능력이 유럽 업체보다 한 수 앞서 있다는 방증일 것입니다.


지난달 일본 미쓰비시중공업 고베조선소에서 진행된 일본 해상자위대 타이게이급 5번 잠수함 진수식 모습. 캐나다 해군이 현대화 사업에서 일본 업체들에 요구하는 동일 사양으로 리튬이온 배터리를 장착한 최신형이다.

2022년 4월 건조에 들어갔으며 2026년 3월 일본 해상자위대에 정식 인도될 예정이다.

. <사진제공=미쓰비시중공업>

그런데 최근 캐나다 매체에서 주목되는 뉴스가 나왔습니다.


한국의 라이벌인 일본 업체들이 입찰에 소극적이라는 평가입니다.


캐나다 더힐타임스는 최근 복수의 정부 소식통을 인용해 일본 업체들이 지난 18일이 마감이었던 입찰 관련 정보요청서에 대한 답변서를 제출하지 않았다고 전했습니다.


또 답변서 제출 마감 수일 전 오타와 주재 일본 대사관이 이 매체에 “캐나다 해군의 잠수함 조달 프로젝트에 일본 기업은 참여할 계획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는 입장을 전했다고 합니다.


이제 막 입찰 시작 단계인 만큼 섣부른 예측을 해서는 안 되지만, 해당 보도가 사실이라면 일본 플레이어들은 왜 이 대규모 사업 참여를 주저하는 것일까요.
크게 두 가지 가능성으로 요약됩니다.


첫째는 한국과 캐나다 간 최근 형성된 강력한 결속력입니다.

올해 초 ‘한-캐나다 방산군수공동위원회’가 서울에서 열린 데 이어 최근에는 캐나다 오타와에서 조태열 외교부 장관, 김용현 국방부 장관, 멜라니 졸리 외교부 장관, 빌 블레어 국방부 장관이 참여한 가운데 첫 ‘한-캐나다 외교·국방(2+2) 장관회의’가 열렸습니다.


뒤이어 앵거스 탑시 캐나다 해군총장이 지난 10~12일 한국을 찾아 한화오션 거제사업장과 HD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를 둘러보고 갔습니다.


지난 10일 앵거스 탑시 캐나다 해군총장이 한화오션 거제사업장을 찾아 캐나다 잠수함 획득 사업 관련 한화오션 측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제공=한화오션>

이런 가운데 다른 무기 계약 사업에서 충돌해 소송전을 벌였던 한화오션HD현대중공업이 최근 소송을 취하하고 ‘원팀’으로 분위기를 다잡고 있습니다.


모두 캐나다 잠수함 현대화 수주 사업을 따내려는 한국 정부와 기업의 열의를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이런 분위기가 다른 경쟁사 관점에서 한국에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비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가능성은 캐나다가 요구하는 납기 마감 시한에 대한 일본 업체들의 부담입니다.
잠수함 현대화가 시급한 캐나다 해군은 첫 납기 시점과 관련해 2028년까지 계약을 체결한 뒤 2035년까지 첫 잠수함을 인도하는 조건을 걸었습니다.


지난 10월 25일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 아시아판 보도에서 일본 조선업체들이 이 사업을 주저할 수 있다고 전했습니다.


닛케이는 “일본의 경우 잠수함 생산 허브인 고베에서 미쓰비시중공업과 가와사키중공업이라는 두 거대 제조 업체 중 한 곳에서 매년 한 척씩 생산되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두 회사의 제한된 생산 능력을 고려할 때 자위대에 납품할 물량 제작도 빠듯한 상황에서 12척의 캐나다 잠수함 사업은 그림의 떡이 될 수 있는 것이죠.
매일경제 확인 결과 일본 방위성은 2025 회계연도(2025년 4월~2026년 3월) 방위비 예산으로 역대 최대인 8조5400억엔(약 78조원)을 요청했는데 여기에는 해상자위대가 쓸 타이게이급 잠수함 9척 획득 사업이 포함돼 있습니다.


지난해 3월 가와사키중공업이 일본 해상자위대에 3000t급 잠수함을 전달하고 있다.

이 잠수함 제작에 4년이 소요됐다.

<사진제공=가와사키중공업>

특히 닛케이 보도에서 주목할만한 내용은 일본 잠수함 제조 공급망에 관여하고 있는 소규모 업체인 마츠바라제철이 전하는 열악한 공급망 현실입니다.


1919년 설립된 이 기업은 잠수함용 엔진과 클러치, 체인블록 등을 제작했습니다.


현 마츠바라 경영자는 창업주인 할아버지로부터 이 회사를 물려받았죠.
그는 과거 번성했던 회사가 현재는 직원 30여명밖에 없다고 전하며 “요즘 젊은이들이 더럽고 위험하고 까다로운 일을 하려 하지 않는다”고 호소합니다.


“잠수함 부품 제작에 필요한 금속 공작기계 가격은 20년 전과 비교해 대당 9억원으로 두 배 가까이 오른 반면 회사가 납품하는 금속 튜브 공급가격은 그대로”라고 토로했습니다.


일본이 12척 사업을 수주할 경우 상당한 인력 확보가 필요한데 새로운 일감이 오더라도 공급망 피라미드의 꼭지인 대기업은 물론 밑단 중소기업들은 더욱 신규 직원 확보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또 자본력이 미약한 중소기업들은 신규 일감을 위해 상당한 설비 투자 부담을 감수해야 합니다.

사업 완료 후에도 가벼운 유지보수 부담부터 매 3년마다 광범위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합니다.

납품한 제품에 문제가 발생하면 수리 비용도 발생합니다.


기술력은 뛰어나지만 영세한 규모의 공급망 밑단 기업은 12척분을 위해 감내해야 할 투자 부담이 너무 크다는 것이죠.
젊은 인력 부족은 비단 방산 뿐 아니라 가정과 기업을 움직이는 전력망에서도 일본의 위기를 부르고 있습니다.

지난해 일본 내 원자력 에너지 관련 전공 대학 및 대학원 진학자 수는 179명에 불과합니다.

1992년의 27% 수준으로, 일본 원전 기업들은 발전소를 더 돌리고 싶어도 현장에 투입할 인재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항공 분야에서 일본을 대표하는 일본항공(JAL)의 경우 정비 엔지니어 부족에 급기야 이종 업체인 미쓰비시증공업과 인력을 함께 쓰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한국 역시 세계에서 가장 빠른 인구 소멸 속도를 자랑합니다.

현재 인구를 10명이라고 치면 50년 뒤인 2070년 한국 인구는 7명으로 줄게 됩니다.


캐나다 잠수함 사업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가진 일본 플레이어들의 입찰 포기가 실제 현실화한다면 당장은 라이벌인 한국 기업들에 호기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중장기적으로 보면 한국의 경쟁력 있는 산업 역시 기술이 아닌 사람 부족으로 일본처럼 낭패를 볼 가능성이 큽니다.


한화오션HD현대중공업은 고임금으로 인재를 확보할 여력이 있겠지만 공급망의 밑단에 있는 중소기업들은 닛케이와 인터뷰한 마츠바라제철 창업주 손자의 한숨처럼 궤멸적 상황에 처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마츠바라제철 창업주 손자가 최근 잠수함 사업 공급망에서 고(高)마진 사업이 리튬이온 배터리에 쏠려 있다고 아쉬워하는 부분을 소개합니다.


기존 잠수함에 투입되던 납축전지를 리튬이온 배터리로 바꾸면 수중 지속 항해 및 고속 기동 시간이 크게 늘어나게 됩니다.

그런데 이 특수 리튬이온 배터리 가격이 워낙 비싸 잠수함 제조 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막대하다는 것입니다.


전기차 가격의 상당 부분을 리튬이온 배터리가 차지하는 것과 비슷한 구조입니다.


이로 인해 자신과 같은 전통 기계공작 업체들은 사업에 참여해도 큰 돈을 벌기 어렵다는 것이죠.

최신형 잠수함 기술의 요체로 등장한 리튬이온배터리 장착 이미지. 캐나다 잠수함 입찰에 도전하는 한국 업체들은 캐나다 해군에 리튬이온배터리 장착 사양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잠수함 공급망 업체의 닛케이 인터뷰에 따르면 리튬이온배터리 공급은 전체 잠수함 사업에서 가장 수익이 높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한국의 경우 한화오션이 이를 외주화하지 않고 그룹 내 수직계열화 방식으로 한화에어로스페이스로부터 공급받을 계획이다.

이를 위해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관련 배터리 생산 공장을 짓고 있다.

<사진제공=합동방위조달청(OCCAR)>

한국의 경우 한화오션은 계열사인 한화에어로스페이스를 통해 관련 제품을 공급받을 것으로 보입니다.

수익성이 가장 높은 파트를 수직계열화해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죠.
기업의 욕심을 뭐라 할 것은 아니지만 아직 완성품 공급 이력도, 전문 생산 공장도 없는 업체가 단박에 잠수함용 특수 리튬이온 배터리 기술력을 확보하고 품질 및 안전성 기준을 충족할 수 있을지 캐나다 해군은 한화 계열사를 상대로 현미경 검증을 할 것입니다.


참고로 미쓰비시중공업은 내부 계열사가 아닌 2004년 설립돼 우주항공·심해 특수 배터리 관련 기술력을 쌓아온 GS유아사로부터 관련 제품을 조달받고 있습니다.

미쓰비시중공업이 입찰에 참여한다면 한화오션과 미쓰비시 간 본연의 건조 능력 평가와 더불어 GS유아사와 한화에어로스페이스 간 배터리 경쟁력까지 심사 대상이 될 것입니다.


정리하면, 언론은 방산 기사에서 수 조원 수주 잭팟이라고 대문짝만하게 소개하지만 일본처럼 공급망 밑단 기업들은 기계를 돌릴 돈도, 이 기계를 다룰 엔지니어도 구하지 못해 공급망 전체에 마비를 몰고 올 수 있습니다.


미쓰비시중공업 보유국인 일본이 실제 캐나다 잠수함 12척 수주 사업을 포기할지는 좀더 지켜봐야겠지만 이 가능성이 현실화할 경우 한국 경쟁 기업들은 쾌재를 부르기에 앞서 자신들 앞에 드리워진 ‘유사 위험‘을 직시해야 할 것입니다.


이미 한국에서도 시작된 인구절벽에 따른 인재확보 위기부터 공급망 하류 기업과 백년대계를 약속하는 상생의 비전까지 치밀하게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


특히 K방산이 세계로 뻗어나가려면 알짜 부문을 대기업이 챙기고 밑단 기업은 대기업이 쳐놓은 가두리 양식장에서 최소한의 생존만 하도록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일본 잠수함 공급망의 밑단 기업인 마츠바라제철의 한숨은 전도유망한 K방산에도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빨리 가려면 혼자서, 멀리 가려면 함께 가야 합니다.


<이미지=매경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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