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시대에 대비한 발 빠른 인사다.
절묘한 균형을 이룰지, 불편한 동거가 될지 지켜봐야 한다.
"
15일 단행한 현대자동차그룹 사장단 인사에 대한 대내외 평가다.
이날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장재훈
현대차 대표이사 사장을 부회장으로 승진시키고, 호세 무뇨스 사장을
현대차 최고경영자(CEO)로 선임했다.
둘 모두 '영전'이라는 표현이 아깝지 않다.
장재훈 부회장의 승진에는 지난 몇 년간
현대차가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을 연이어 기록한 점이 크게 영향을 줬다.
장 부회장의 지휘 아래
현대차는 지난해 연결 기준으로 사상 최대 매출(162조6636억원)과 영업이익(15조1269억원)을 기록했다.
또 그가
현대차 대표이사 사장이 된 2020년 12월 이후
현대차의 글로벌 판매 순위는 4위에서 3위로 한 단계 뛰어올랐다.
최근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현대자동차 인도법인 상장을 진두지휘한 것도 장 부회장이다.
호세 무뇨스 대표 역시 2019년
현대차그룹에 영입된 이후 괄목할 성과를 올렸다.
그는 북미 시장에서 가솔린 세단 중심이던
현대차의 주력 판매 차종을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전기차·
하이브리드 등 고부가가치 상품으로 전환시켰다.
이뿐만 아니라 지난해부터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으로 북미 전기차 시장이 침체되자 재빨리 미국 내
하이브리드 생산을 늘려 전체 판매 볼륨을 오히려 증가시키는 데 성공했다.
미국법인 실적도 2018년 3301억원 적자에서 지난해 2조7782억원의 순이익으로 급증했다.
계열사 관계자는 "코로나19와 전동화, 캐즘을 거치며 급변한 자동차 시장에서
현대차는 다른 브랜드에 비해 굉장히 재빠르게 대응한 게 사실"이라면서 "여기엔 장 부회장과 무뇨스 대표 같은 리더들의 열린 리더십이 큰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다만 두 리더가 맡게 된 역할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린다.
현대차는 "앞으로 장 부회장은
현대차의 상품 기획과 공급망 관리, 제조·품질에 이르는 밸류체인 전반을 관할하며 미래 경쟁력을 확보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고 설명했다.
무뇨스 대표는 글로벌 생산과 판매를 총괄할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도 장 부회장이
현대차 관련 모든 업무를 총괄하고, 무뇨스 대표는 북미 생산·판매·홍보와 다른 해외 판매 전략 등을 담당하는 시스템이었다.
한 계열사 관계자는 "둘 모두 예전 업무와 크게 다르지 않은 범위에서 적절히 조율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어차피 여러 명의 의견을 종합해 최종 결정을 내리는 시스템이라 특정인에게 힘이 쏠릴 수 없다는 것이다.
반면 또 다른 관계자는 "장 부회장이 기존에
현대차 CEO로서 담당하던 업무 상당 부분을 떼어간 셈"이라며 "부회장으로 승진하면서 실권도 상당 부분 챙겼다"고 평가했다.
자칫 무뇨스 대표는 세일즈만 총괄하는 한정된 권한을 갖게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영어·스페인어·프랑스어에 능통하지만 한국어는 서투른 무뇨스 대표와의 의사소통에 대해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다.
한
현대차 직원은 "
현대차가 글로벌화됐다고 하지만 본사 임원 중에는 영어가 편하지 않은 사람이 여전히 많다"며 "자칫
현대차의 장점인 원활하고 수평적인 의사소통 방식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한편 성 김
현대차 고문을 사장으로 영입한 데에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현대차의 위상이 반영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성 김 사장은 대외 협력·정세 분석·PR 등을 관할하며 사실상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와의 소통을 전담하게 될 전망이다.
미국을 비롯한 글로벌 시장의 판매 규모가 한국 내수 시장 대비 2배 이상 커진
현대차 입장에서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주요 수출 대상국들에 대한 대관 업무가 중요해졌다는 것이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사장단 인사에 이어 오는 12월 중순에 있을 정기 임원 인사를 통해 성과 중심의 과감한 인적 쇄신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동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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