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증금 반환채권 소멸 늦출수 있어 전세금 못받았어도 포기하지 마세요

매경DB

"전세금 못 받은 지 한 7~8년 됐는데 포기해야겠죠?" 지나가던 동네 주민이 고개를 빼꼼 내밀고 말했다.

"네? 7~8년이나 지났는데도 전세금을 못 받았다고요? 일단 보증금 줄 때까지 버티며 사셔야죠." "이사는 이미 나왔는데요?"
7~8년 전 지인의 집에 전세금 1억원으로 입주했는데 지방으로 근무지를 옮기게 돼 임대인에게 이야기했더니 새로운 계약자와 전세 계약이 체결됐다.

전세보증금 반환받을 날짜가 정해졌으니 편한 마음으로 먼저 이사를 나오게 되었단다.

그런데 전세 잔금일에 새로운 임차인이 이사를 못 들어오겠다며 계약 해제를 통보했다.


당황했지만 나름대로 친분 있던 임대인이 새로운 임차인을 곧 맞춰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해서 믿고 기다린 것이 문제였다.

차일피일 미뤄지는가 싶더니 사업을 확장했던 임대인은 그 집을 담보로 대출을 풀(full)로 받았다가 결국 경매에 넘기고 말았다.


간혹 세상사 흐름에 지나치게 관대한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좋은 마음이 반드시 좋은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다.

임대인에게 쫓아갔더니 걱정 마라 돈 나올 데가 있으니 곧 해결해주겠다, 본인이 사는 집을 팔아서라도 해결해주겠다고 했다.

다시 기다리다 보니 그사이 임대인 소유 자택도 다른 사람 명의로 넘어갔다.


"5년이 훌쩍 넘었으니 이제 완전히 끝난 거죠?" "5년은 일반적인 상법의 소멸시효예요. 이거랑 상관없어요." 그녀는 누군가가 전세보증금을 못 받은 지 5년이 지나면 이젠 받을 수 없다고 해서 이미 포기했다고 한다.

전세사기 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된 요즘 역전세난이나 임대인의 경제 상황 등으로 전세보증금을 제때 반환 못 받고 퇴거하는 사례들이 종종 있다.

물론 전세보증금을 전액 반환받지 않은 경우 목적물을 명도해서는 안 되지만 만약 부득이한 사유로 퇴거해야 한다면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임차인 A씨는 2년의 계약 기간이 끝난 후 보증금을 돌려받으려 했지만 임대인 B씨는 제때 보증금을 내주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임대인 B씨가 사망하자 임차인 A씨는 어쩔 수 없이 9개월간 더 거주하며 버티다가 임차권 등기명령을 신청한 후 이사 나왔다.


10년이 지난 후 임차인 A씨는 임대인 B씨의 자녀들에게 보증금을 돌려달라는 소송을 냈지만 이미 보증금을 돌려받을 근거인 임대보증금 반환채권 시효가 계약 기간으로부터 10년이 지나 소멸한 상태였다.


주택임대차보호법에서는 임차인이 계속 집에 머물러 있을 경우 임대차계약이 끝나지 않은 걸로 간주하지만 이미 이사를 떠난 A씨로선 불리한 상황이었다.

A씨는 이사 가기 전 주택임차권 등기를 신청해 놨다는 점을 들며 '소멸시효 중단'을 주장했지만 1심은 임차인 A씨의 손을, 2심은 임대인 측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도 임대인 측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은 임차권 등기는 임차인이 주택임대차보호법에 따른 대항력이나 우선변제권을 취득하는 등 담보적 기능을 주목적으로 해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는 권리를 주긴 하지만 소멸시효까지 중단시킬 정도의 효력은 없다"고 본 것이다.


결국 임대인이 임대차 보증금을 반환하지 않는다고 줄 때까지 무작정 기다리기만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10년이 지나 임대보증금 반환채권이 소멸하지 않도록 시효 중단과 연장을 위한 노력해야 한다.


소송을 통해 확정받아 집행권원을 획득하거나 압류 및 강제집행, 강제경매 실행, 지불각서나 차용증 다시 받기 등을 하면 그 확정일로부터 다시 10년의 소멸시효가 시작된다.

시효는 한번 완성되고 나면 어떠한 방법과 절차로도 채권자가 구제받을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아직 2년 정도 남아 있잖아요. 그러니까 포기하지 말고 지금이라도 보증금 반환 소를 제기해 보세요." 그녀는 뜻밖의 횡재라도 한 듯한 표정으로 서둘러 돌아갔다.



[양정아 공인중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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