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 고용 시장 위축 신호가 잇따르는 가운데 주요 기업들이 선제적으로 감원 조치에 들어가고 있다.

뛰어난 노동 시장 유연성을 자랑하는 미국에서는 기업들이 선제적인 인력 구조조정으로 다가오는 경기 상황에 대응해왔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현지 매체들은 고용 시장 주도권이 근로자에서 고용주로 전환되는 최근 흐름과 맞물려 팬데믹 이후 두둑했던 '고임금 시대'가 저물고 있다고 평가했다.


9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미국 네트워크 장비업체 시스코시스템스가 올해 두 번째 인력 구조조정을 추진한다.

지난 2월 4000여 명을 줄인 데 이어 이번에도 수천 명대 감원이 예상된다.

시스코는 지난 2~4월 매출이 1년 전 대비 12.8% 줄어드는 등 실적 부진에 시달리고 있다.


다국적 자동차 기업인 스텔란티스는 이날 최대 2450여 명의 미 공장 근로자를 감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는 올해 말 미시간주 공장에서 구형 픽업트럭 생산이 중단되는 데 따른 것이다.

지난해 빅테크 기업들이 대규모 감원에 나선 데 이어 올해 들어서는 기업들이 전반적으로 고용을 줄이는 분위기다.

미국 노동부에 따르면 올 들어 실업률이 꾸준히 상승하면서 지난달 4.3%를 기록했다.

이는 올해 1월(3.7%) 대비 0.6%포인트 오른 수준이다.


고용 시장이 전반적으로 둔화하면서 임금 인상폭도 크게 줄었다.

고용주 자문 업체 WTW가 올해 2분기 1900개 미국 회사를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올해 임금 인상폭 중간값은 4.1%로 나타났다.

이는 전년(4.5%) 대비 0.4%포인트 줄어든 수치다.

설문 결과에 따르면 기업들이 계획하고 있는 내년도 임금 인상폭 중간값은 3.9%로 나타났다.

기업들은 내년에도 임금 인상폭을 줄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팬데믹 이후 최근 수년간 경제활동 재개(리오프닝) 효과로 과열됐던 고용 시장이 냉각되고 있다는 또 다른 신호라고 WSJ는 최근 분석했다.


WSJ는 고용 시장 둔화세와 관련해 "두둑한 급여 상승 시대(The era of hefty pay increases)가 종말을 고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위축된 채용 시장에서 고용주들이 보너스를 삭감하거나 동결하고 성과급 인상폭을 점점 줄이는 방식으로 급여 지출을 통제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실제 고용 정보 업체인 오토매틱데이터프로세싱(ADP) 발표를 보면 지난 7월 미국 민간 기업 임금 상승률은 전년 동기 대비 4.8%로 2021년 7월 이후 3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미국에서는 팬데믹 발발 직후 대량 해고 등 급격한 실업률 증가가 나타났지만 리오프닝 국면에서 고용 시장이 활력을 되찾았다.

이 과정에서 기업들이 다시 고용을 늘리면서 임금 인상률이 크게 뛰었다.

근로자들이 더 나은 임금이나 근로 조건을 찾아 떠나면서 '대사직의 시대(Great Resignation)'라는 말이 유행하기도 했다.


미국 고용지표는 최근 지나친 우려 심리로 인해 글로벌 주식 시장에 대폭락 충격을 안겼지만 역으로 경기 침체 신호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미국 기업들이 뛰어난 노동 유연성을 토대로 선제적인 위기 대응에 나서왔다는 점에서 지나친 비관론으로 해석할 필요가 없다는 지적도 많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는 지난해 뉴욕타임스(NYT)에 게재한 '미국 경제 성장의 비결'이란 칼럼에서 코로나19 대유행 당시 유럽과 미국의 근로자 보호 정책을 비교했다.

노동 시장 유연성이 떨어지는 유럽 정부들이 기업에 보조금을 지급하며 해고 최소화를 주문한 것과 달리 미국은 해고된 근로자를 상대로 실업수당을 늘리는 방식을 취했다.

크루그먼 교수는 이 같은 대응이 비록 일시적으로 실업률을 높였지만, 신속하게 고용 시장의 회복을 되돌리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문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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