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에 발목잡힌 정책
대출규제하고 금리인하를
그래야 서민중소업체 숨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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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김병환 금융위원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참여하는 거시경제금융현안간담회, 일명 ‘F4 회의’ 모습. 사진은 지난 1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F4회의. 이복현 금감원장, 이창용 총재, 최상목 부총리, 김병환 금융위원장. <사진=한국은행> |
끈을 밀 순 없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8년 4월. 조지프 스티글리츠 교수가 영국 가디언지에 글을 하나 실었다.
당시 펼쳐졌던 미국 중앙은행과 정부 정책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정부 대응이 충분치 않고, 너무 늦고, 설계도 잘못됐다는 비판이었다.
특히 “통화정책과 구제책이 경제 붕괴는 막을지 몰라도 경제를 되살릴 순 없다”면서 케인스 표현을 빌려 ‘끈을 미는 것(pushing on a string)’과 같다고 했다.
비대칭적으로 나타나는 통화정책 효과를 말한다.
끈의 끝을 당겨 원하는 방향으로 가져올 순 있지만, 끈을 밀어 어디론가 옮길 순 없다.
경기 진작이 그만큼 어렵다는 얘기다.
경기침체 때 통화정책이 그렇다.
돈을 싸게 빌려줘도 사람들이 투자할 곳이 없다고 안 빌려가면 소용없어서다.
최근 미국 경기침체론이 급부상하자 또다시 중앙은행 실책을 거론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선제 대응하지 않으면 효과도 없는 ‘끈 밀기’를 해야 할 수 있어서다.
시장은 일단 한숨을 돌리는 모양새다.
미국 고용통계에 대해 시장이 과하게 반응했다는 게 중론이다.
경기침체 직전 상황이라며 금리 인하를 촉구했던 폴 크루그먼 교수는 이틀도 안 돼 너무 의미를 부여하진 말라고 진화에 나섰다.
그 자신도 흥분했던 셈이다.
그러나 미국 중앙은행이 2년여 만에 물가 외에 앞으로는 고용시장까지도 균형 있게 들여다보겠다고 공식화한 것은 의미가 깊다.
미국 9월 기준금리 인하는 사실상 확정됐고, 인하 폭만 관심사다.
한국은행은 10월 금리 인하가 유력하다.
미국이 이미 금리를 낮춘 뒤여서 선제 인하 부담은 덜 테고, 물가도 6개월 연속 2%대로 안정되면서 조건을 맞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수도권 집값 불안과 가계부채가 문제다.
이것만 해결되면 사실 8월 조기인하도 가능하다.
이미 유럽연합과 캐나다는 6월에 정책 전환을 통해 금리 인하를 시작했고, 최근엔 영국이 가세했다.
반면 한국은 내수 침체에도 불구하고 부동산 변수에 발목을 잡혔다.
꾹 밟아놓은 금리 브레이크를 더 밟아야 할 정도다.
그사이 고금리 장기화에 따른 서민과 영세 자영업자, 중소업체들 고통은 심해졌다.
금리정책이 꼬여버렸다.
1990년대 빌 클린턴 행정부 때 정책 조합이 해법이 될 수 있다.
당시 미국은 경기 침체와 재정 적자라는 두 가지 수렁에 빠졌다.
재정 확대를 통한 경기 진작이 힘든 상황이었다.
앨런 그린스펀과 클린턴 행정부는 과감한 금리 인하와 재정 긴축이라는 정책 조합 카드를 꺼내 들었다.
팽창과 긴축정책을 동시에 펼친 셈이다.
정책 효과가 상쇄돼버릴 것 같지만, 경제는 이전과 전혀 다른 균형점을 찾아갔다.
물가를 자극하지 않고 유례없는 고성장을 이어갔던 ‘골디락스 경제’가 이때 나왔다.
한국은 부동산은 누르고 내수경제를 살려야 하는 상황이다.
경제부총리와 한국은행 총재, 금융위원장, 금감원장이 매주 개최하는 일명 ‘F4회의’ 안건으로 어떤가. 내수 침체 속 집값 급등이라는 한국 특유의 상황이라면 한국식 정책 조합을 꺼낼 필요가 있다.
주택담보대출비율(LTV),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DSR) 같은 장벽을 높여 대출을 묶고, 금리를 낮추는 정책 조합이 가능하다.
집값 하나 때문에 금리 인하를 못하고 경기 악화에 손 놓고 있는 것도 문제 아닌가. 대출규제에 따른 풍선효과가 있겠지만 충분히 대비 가능하다.
한 가지 전제조건이 있다.
충분한 주택 공급 확대다.
정부가 공급대책을 곧 발표한다고 하지만, 시장 기대는 미지근하다.
공급대책이 단발성이 아니라 앞으로 계속 나온다는 확실한 시그널을 보내줘야 한다.
여기에 정치권 협조가 필수적이다.
경제가 무너지면 정치도 없지 않나. 아무런 소용도 없을 ‘끈 밀기’ 상황으로는 가지 말아야 한다.
송성훈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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