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동작구 상도동에 방치된 한 미착공 필지 모습. 연규욱 기자

노후 연립·다세대 주택이 밀집돼 있는 서울 동작구 상도동. 대로변에서 국사봉으로 이어지는 언덕길을 올라가다 보면 골목 한 모퉁이에 나대지가 눈에 띈다.

건설자재가 아무렇게나 방치돼 있는 이 땅은 원래 신축 빌라가 들어설 곳이었다.

2021년 11월 건축 허가를 받았지만 지금까지도 착공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해당 필지가 2022년 서울시 역점 사업인 신속통합기획(신통기획) 재개발 2차 후보지에 포함되면서 준공을 해봤자 분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주변에 산재해 있는 신축 빌라 8곳도 사정은 비슷하다.

준공은 했지만 단 한 가구도 분양을 못한 지 오래다.

이 중 한 곳을 지은 A건설사 대표는 "이젠 대출 이자를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상황"이라고 호소했다.


A건설사는 신축 빌라 30여 가구를 지어 분양할 목적으로 이곳의 땅을 2021년 5월 수십억 원에 사들였다.

그해 하반기 건축 허가를 받고 착공해 일부 동을 2022년 10월에 완공했다.

부랴부랴 분양을 준비하던 중에 일대가 신통기획 2차 후보지로 선정됐다.


문제는 권리산정 기준일이었다.

서울시는 재개발 투기를 방지하기 위해 신통기획 2차 후보지의 권리산정 기준일을 2022년 1월 28일로 일원화했다.

후보지 선정일(2022년 12월 30일)은 물론 후보지 공모일(2022년 8월 29일)보다도 한참 앞선 시점이었다.

신통기획 구역에선 권리산정 기준일 이전에 취득한 주택에 대해서만 새 아파트 입주권을 받을 수 있다.

기준일 이후에 얻은 주택은 현금청산 대상이다.


A건설사처럼 신통기획 후보지 공모가 이뤄지기도 전에 토지를 매입해 사업을 진행한 곳은 파악된 것만 16곳이다.

이 중 11곳은 2022~2023년에 준공했고 현재 전혀 분양을 하지 못하고 있다.

시세보다 낮은 금액으로 현금청산될 것을 알면서도 빌라를 분양받을 소비자는 없었기 때문이다.

나머지 5곳은 착공을 한없이 미뤘다.


해당 건설사들은 심각한 자금난에 허덕이고 있다.

A건설사는 토지 매입과 건축비로 이미 100억원을 투입했다.

3년여간 대출 이자만 한 달에 3000만원 가까이 내고 있다.

중랑구 면목동에 10가구 규모 다세대 주택을 짓다가 같은 위기에 처한 B건설사 대표는 "나와 직원들의 개인 신용·담보 대출로 월 2000만원에 달하는 사업자 대출 이자를 겨우 충당하고 있다"며 "이젠 정말 한계에 이르렀다"고 토로했다.

건축주들은 정상적인 분양을 할 수 있도록 권리산정 기준일 이전에 착공 신고가 이뤄진 주택에만 예외적으로 현금청산 대상에서 제외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서울시 관계자는 "신통기획 구역의 권리산정 기준일을 앞당겨 잡은 것은 지분 쪼개기 등 투기를 원천적으로 배제하기 위한 것"이라며 "예외를 적용해 조합원 수가 늘면 그만큼 원주민들의 분담금이 불어나는 피해가 발생하기 때문에 (예외 적용을) 검토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건축주들은 22일 서울시청 앞에서 시위를 벌일 예정이다.


[연규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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