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 몰아치는데…식당 문열고 택시·기차 정상운영한 비결은 [대만 지진르포]

[김진호 매경 명예기자 대만 화롄 현장통신]

60도 기울어진 톈왕싱(天王星) 빌딩 등
3일 지진으로 무너진 빌딩 철거작업 한창
식당 정상영업…주민들 평온하고 차분한 일상

매경 명예기자인 김진호 단국대 교수가 4일 화롄현 현지취재중 60도로 기울어진 톈왕싱 빌딩 앞에서 복구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4일(현지시간) 오후, 25년만의 강진이 휩쓸고 간 대만 화롄(花蓮)시를 찾았다.

지난 3일 오전 7.2 규모 지진이 강타한 지 하루 만에 철로가 복구되어 운행중이었다.

기차가 달릴 수 있을 만큼 큰 피해가 없고, 전력공급도 이상이 없다는 의미다.

다만 가는 길은 평소보다 감속운행해 20분 정도가 더 걸렸고, 돌아오는 기차는 연착과 두 번 운행이 멈추는 등 완전한 정상운행은 아니었다.


화롄은 대만 동부해안에 있다.

수도인 타이베이에서 출발해 2시간 반 남짓 달렸으니, 한국으로 치면 서울에서 강릉을 거쳐 동해안 태백으로 간 셈이다.

화롄으로 가는 교통로는 도로와 철도, 항공이 있는데 도로는 대부분 산비탈에 위치해 통제구역이 많다고 했다.

실제로 기차를 타고 가는 동안 곳곳에 토사가 무너져내려 도로가 막힌 흔적을 볼 수 있었다.


3일 대만 강진의 상징으로 전세계 언론을 장식한 톈왕싱(天王星) 빌딩. 60도로 기울어져 붕괴위험이 있기 때문에 5일 완전 철거된다.

<화롄/김진호 명예기자>

렌트한 차량을 타고 전세계 언론에 등장한 붉은 벽돌 빌딩이 있는 사고 현장을 찾았다.

지진 발생 1분만에 1층이 무너지면서 9층 건물 전체가 60도로 기울어진 톈왕싱(天王星) 빌딩이다.

이곳에 살던 사람들은 모두 대피했고, 대만 당국은 5일 이 빌딩을 철거할 예정이다.

이외에도 인근 베이빈(北濱) 거리의 주택, 화롄병원 인근의 퉁솨이(統帥) 건물, 지안(吉安)향 샨하이관(山海關) 등 파손된 빌딩들의 철거작업이 한창 진행중이었다.


현장에서 지휘하는 공무원이나 잔해 철거반 등은 모두 친절했고, 근처 마을의 식당들도 평소처럼 영업하고 있었다.

이 동네에 살고 있는 린이전 씨는 “정부의 방재정책으로 건물의 지진안정성에 대한 사전 조사와 관리가 철저히 이루어졌고, 시민들이 사전에 대피 매뉴얼을 숙지한 덕분에 피해가 적었다”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웃 장주야 씨도 “이런 큰 흔들림은 처음이었는데 25년전 대지진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피해가 적었고, 지금은 비교적 평화로운 분위기”라고 말했다.

다만 일부 식당 주인과 택시 기사들은 “5일 청명절(淸明節) 연휴 직전 지진이 나는 바람에 성수기 수입이 끊기게 생겼다”며 울상을 지었다.


전날 강진에도 불구하고 식당들은 대부분 정상영업중이었고, 시민들도 평온한 모습이었다.

전세계 기자들이 취재경쟁을 벌였는데, 현장 관계자와 시민들은 모두 따뜻하게 맞아줬다.

<화롄/김진호 명예기자>

25년전 9.21대지진과 규모 비슷한데
인명피해 2400여 명 vs 12명 극과극
붉은 위치 표시가 25년전 921대지진이 강타한 난터우현 지지(集集). 오른쪽 파란 점이 3일 지진이 난 화롄시다.

이번 지진은 기자가 직접 경험한 1999년 9월 21일(921대지진)과는 상당히 다르다.

규모는 비슷했지만 이번 지진 사망자가 12명으로 적은 것이 대표적이다.

25년전 강진은 ‘대만의 배꼽’이라 할 수 있는 대만 한복판 난터우현 지지(集集)에서 일어나 2400명이 넘게 사망하고 1만여 명이 다쳤다.

완전히 무너지거나 반파된 주택도 10만채가 넘었다.


당시 사람들은 극도로 혼란스러워했고 치안불안까지 겹쳐 사회 전체가 혼란스러웠고, 구급차가 수시로 드나들었으며 곳곳에 임시 주택(수용소)이 지어졌었다.


대만에서 여러 지진을 경험했지만 이번 지진은 그 강도에 비해 피해가 적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더욱 발전한 것 같은 시민의식이다.

도시 안에 같이 주둔하고 있는 대만의 국방력과 경찰 및 관공서 공무원의 행정력도 한몫 했지만, 주민들의 안전의식과 자발적 지원은 놀라울 정도다.

정부의 방재 능력도 과학적으로 진화했고, 자유로운 언론을 통해 시민들에게 충분한 정보가 전해지면서 정치의 민주화와 행정 효율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강진 하루만에 붕괴위험이 있는 건물들은 줄줄이 철거되고 있었다.

이번 지진 국면에서 대만 정부의 행정력과 선진적인 시민의식이 돋보인다는 평가다.

<화롄/김진호 명예기자>

다만 3일 강진 이후 500회 이상의 여진이 이어지고 있고, 당국은 이런 여진이 길게는 2∼3일 더 이어질 수 있다고 본다.

정비된 안전 지역이 아닌 열악한 주거환경지역이나 산악지역 마을과 도로는 여전히 위험한 상황이다.

곳곳에 고립되어 있는 사람들을 구조하는 데에도 꽤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여 추가 인명피해 우려도 남아 있다.


대만 중앙기상서(기상청)에 따르면 5일 오전 10시 10분까지 진앙 인근 화롄현을 중심으로 500차례 여진이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진동을 현저하게 느낄 수 있는 여진은 119회에 달했다.


앞서 대만 중앙재해대응센터도 전날 오후 8시 기준 총 400여 차례의 여진이 있었다면서 대다수가 규모 4∼5였지만 규모 5∼6(16회)이나 6∼7(2회)의 강한 여진도 있었다고 밝혔다.


TSMC 공장 방진설비 ‘세계최고’ 수준
첨단 공정상 잠깐 멈춰도 타격 불가피
대만 타이난 남부 타이완 과학 공원에 위치한 TSMC공장. TSMC는 90%를 대만 현지에서 생산하고 있는데 북부의 신주와 중부의 타이중, 남부의 타이난 공장을 가동하고 있다.

가오슝에서는 첨단공정의 반도체 공장을 짓고 있다.

[로이터연합]

세계의 관심은 TSMC 등 대만 반도체기업에 쏠린다.

전략적으로 반도체 산업에 올인하고 있는 대만 정부는 25년 전 921 대지진과 이후 반복된 지진에 대비해 관련 방진 설비와 지진대비 매뉴얼을 세계최고 수준으로 만들어 놓았다.

정부는 물론 산업계에서도 “피해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하는 이유다.


그러나 이미 반나절에서 하루의 중단 기간이 있었고, 섬세하고 복잡한 첨단장비 등을 복구하는 시간을 고려하면 대만 반도체의 생산과 공급에 일정 정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장기적으로 삼성전자 등 경쟁기업들이 수혜를 볼 수 있고, 당분간 반도체 가격이 들썩일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것도 타당할 것이다.


TSMC 전 엔지니어 린본지엔(林本堅)은 TSMC는 물과 전력 등 관련 FAB 시설을 연구할 뿐 아니라 지진에 관해 많은 연구를 해왔다고 했다.

그는 창업자 모리스 장도 지진을 걱정했지만 상대적으로 싼 전문 고급인력과 정부의 지원 및 관련 업종의 산업직접화가 TSMC가 대만에 안착하는 주원인이 되었다고 했다.


대만 지진과 반도체 산업에 대한 일은 전세계 공급망과 관련 업계 및 기업의 전략과 관련된 일로 대만에서도 경제와 주가에 민감함 반응을 하기에 누구도 실명으로 정확한 예측이나 분석을 하지 않고 TSMC 자체와 관방 보도에 의존한다.


익명으로 대만 연합보와 인터뷰한 반도체 전문가의 말에 의하면, 지진이 가장 위험한 지역은 웨이퍼 공장 내 ‘옐로우(황색) 라인 구역’이라고 한다.

이번 강진으로 TSMC 웨이퍼 공장 내 옐로우 라인 구역 전체가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보이며, 설비 내 용광로 튜브와 장비들도 충격을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지진 당시 생산라인에 있던 웨이퍼도 영향을 받아 모두 폐기하고 다시 작업해야 하며, 첨단 공정에 사용되는 극자외선(EUV)도 정밀 설계돼 있기에 유지보수를 위해 생산라인을 중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진은 생산라인 복구뿐만 아니라 웨이퍼 공장의 생산 및 생산량에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업계에서는 3일 여러 공장의 발언으로 볼 때 각 공장에서 웨이퍼 파운드리 영향을 파악하는 데 4~5일 정도 소요될 것이며, 각 주요 공장에서도 긴급히 교대 엔지니어를 추가 파견해 생산라인 복구에 매진할 것으로 본다.

업계의 월간 매출 추산을 따져보면 대만 7개 주요 웨이퍼 공장은 어제 발생한 강력한 지진 이후 생산 라인에서 웨이퍼 가치가 대만 달러 100억 위안(약 4200억원) 이상 손실됐다고 볼 수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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