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최근 출간된 이른바 '혐한 도서'의 내용과 구조가 19세기 후반 서적과 유사하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습니다.

오늘(13일) 학계에 따르면 이원우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학술지 '일본문화연구' 최신호에 낸 논문에서 2010년 이후 일본에서 나온 혐한 도서들이 메이지(明治) 시대 초기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1835∼1901) 저서의 논지와 상당히 비슷하다고 밝혔습니다.

이 위원이 분석한 혐한 도서는 '일본인은 한중과 절교할 각오를 해라', '한국인으로 태어나지 않아서 다행이다', '유교에 지배된 중국인과 한국인의 비극', '통일 조선은 일본의 재난' 등입니다.

그는 후쿠자와가 1885년 발표한 '탈아론'(脫亞論)을 비롯해 '조선 인민을 위해 조선의 멸망을 축하한다', '조선의 멸망은 대세에 있어 벗어날 수 없다'가 혐한 도서와 일맥상통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 위원은 "19세기 일본은 메이지 유신을 거쳐 동아시아에서 유일하게 근대화에 성공하면서 이웃 국가에 대한 우월과 멸시를 고착해 갔다"며 "일본 지식인의 세계상에서 주축이 중국에서 서양으로 명백히 전환됐다"고 설명했습니다.

후쿠자와는 '탈아론'에서 일본이 서양 문명을 적극적으로 수용해 아시아를 벗어났으나, 중국과 한국은 유교주의 폐해에 빠져 서구 문명을 받아들이지 못했다고 비판했습니다.

또 다른 글에서는 조선 지배계층의 가렴주구와 부패가 심해 나라가 망하는 편이 낫고, 훗날 조선이 서구 열강의 분할 점령을 겪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 위원은 최근에 간행된 혐한 도서에서도 한국인은 거짓말쟁이이며, 한국에 여전히 유교 폐해와 사대주의가 남아 있다는 주장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고 짚었습니다.

2017년 출판된 혐한 도서 '한국·한국인의 품성' 저자는 "이조에서 유교가 어떻게 정착돼 갔는지 사료를 읽으면 읽을수록 초기의 폭력적 교화를 알게 됐다"며 "한국의 유교는 민족의 치욕 그 자체"라고 했습니다.

후쿠자와가 '탈아론'에서 조선에 퍼진 유교를 비난하며 "하나에서 열까지 겉모습의 허식만을 중요시하고 실제에 있어서는 진리 원칙과 같은 식견이 없을 뿐만 아니라 도덕조차도 찾아볼 수 없다"고 한 것과 비슷한 맥락입니다.

이에 대해 이 위원은 "역대 중국 왕조에 저항하면서 지금까지 민족적 실체와 정체성을 유지한 나라는 한국과 베트남 정도"라며 "유교적 영향이 많이 사라진 현대 한국을 평가하면서 유교와 소국 근성을 운운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고 반박했습니다.

아울러 조선시대 주자학 이념이 한국인의 일본에 대한 열등의식과 결합해 '반일'이 생겨났다고 보는 견해나 한국을 중국과 묶어 공격하는 행태도 혐한 도서에서 두루 확인되며, 후쿠자와 저서에서도 일부 나타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이 같은 분석을 바탕으로 혐한 도서 내용을 '한국인에 대한 비난·폄하→유교와 속국주의 비난→한국과 결별'로 요약했습니다.

이 위원은 "일본에서 쏟아지는 혐한론은 현대판 '탈아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며 "혐한 도서는 일본의 국력이 상대적으로 약해져 한국을 의도하는 대로 유도하지 못하는 초조함과 조바심에서 유래한 자기통제 상실의 고백"이라고 진단했습니다.

이어 "혐한 도서 내용에는 동의할 수 없는 것이 많지만, 혐일론으로 대응할 필요는 없다"며 한일 관계 개선의 실마리는 양국 언론과 출판계가 상대방의 긍정적인 면을 보는 데서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 현연수 기자 / ephalon@mk.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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