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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문학 감상]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헌신…`누나`라는 이름
기사입력 2020-11-25 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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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이야기 속 '누나'들을 살펴보면 '누나'가 지닌 그 특유의 따뜻함과 푸근함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누나'는 맘 편히 비빌 수 있는 편안한 언덕이 되어주는 것이 사실이다.

이는 오빠나 형은 절대 갖지 못하는 누나만의 것이다.

하지만 기대고 싶은 푸근함의 이면에는 누나들의 숨겨진 희생과 헌신이 있다.

이제는 누나에게서 따뜻함과 푸근함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 미안함과 안쓰러움도 조금은 느껴야 할 것 같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 같이 생긴 꽃이여
서정주 작가의 현대시 '국화 옆에서' 일부이다.

시 속 화자는 국화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 화자는 국화에게 새로운 이름을 붙여 준다.

'내 누님 같이 생긴 꽃'이라고.
'누님 같이 생긴 꽃'은 대체 어떻게 생긴 꽃일까. '누님'은 남동생이 손위 여자 형제를 부르는 말이다.

그런데 남동생을 둔 누님은 전국 곳곳에 셀 수 없이 많으니, 그 수많은 누님들의 생김새가 비슷할 리 없다.

그렇다면 '누님 같이 생긴 꽃'이 묘사하는 바는, 너무 큰 범위를 지칭하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우리는 신기하게도 '누님같이 생겼다'는 구절이 내뿜는 의미를 왠지 알 것만 같다.

'누님'이라는 단어가 풍기는 특별한 분위기 때문이다.

'누님'을 떠올리면 생각나는 이미지는 조금 푸근하고 그리고 따뜻하다.

날카롭고 냉철한 이미지는 누님과 어울리지 않는다.

누님들은 아마도 남동생을 살뜰히 보살펴 줄 것만 같은 느낌이다.

우리는 다양한 문학 작품에 드러난 '누나'의 모습을 통해 '누나'가 갖는 특별함이 무엇인지 살펴볼 수 있다.


김소월의 시 '접동새'는 고전 설화를 바탕으로 한다.

고전 설화 속 누나는 계모의 괴롭힘에 목숨을 잃고 새가 되어 밤마다 동생들을 찾아온다.

시 속 '오랩동생'은 '남동생'을 이르는 말이다.

그러니 이 누나는 남동생을 아홉이나 두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많은 동생들을 돌보는 일이 누나의 몫인 모양이다.

그래서 이 누나는 죽어서도 늦은 밤 동생들을 찾아간다.

동생들을 살뜰히 돌보지 못해 눈에 밟히는 것이다.

이 '누나'는 따뜻함과 푸근함을 넘어 '배려와 희생'의 상징처럼 보인다.

이 누나는 남동생을 보살펴야 한다는 책임에 휩싸여 있다.

아홉 동생들에게는 다행한 일이지만, 누나에게는 안타까운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김소월의 시 '접동새'는 우리를 반성하게 한다.

우리는 이 시 속 누나에게 마음 편하게 푸근함을 느끼기 어렵다.

이 누나에게는 미안함과 죄책감을 갖는 것이 자연스럽다.

누나는 왜 죽어서까지 편히 쉬지 못하고 남동생을 챙겨야 했을까. 왜 우리는 부모의 자리가 비어 있는 '누나와 남동생'을 보면, 자연스럽게 누나에게 엄마의 역할을 기대하곤 했을까. 누나도 누군가의 보살핌이 필요한 어린 아이인데도 말이다.

우리가 어린 소녀들에게 너무 쉽게 누나라는 이름의 무거운 멍에를 씌운 것만 같아 미안해진다.


조선시대 연암 박지원이 쓴 누님의 묘지명 중 일부이다.

연암은 어린 시절 누님이 시집가던 날을 떠올리고 있다.

결혼식 날 신부가 얼마나 긴장되는지 알 리 없는 남동생은 누나 옆에 누워 장난을 친다.

동생이 얄미웠던 누나는 동생의 머리에 빗을 떨군다.

그런데 이 짓궂은 남동생은 빗을 맞은 게 분해 더 성질을 부리며 못되게 군다.

그러자 누나는 동생을 달래느라 정신이 없다.

이 남동생은 누나 결혼식 날, 누나의 심기를 건드렸다.

어린아이지만 꽤 괘씸하다.

하지만 누나는 동생을 어르고 달랜다.

누나는 잘 한 것 하나 없이 적반하장으로 골을 내는 동생을 달랜다.

남동생을 아끼는 누나의 마음이 예사롭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도 남동생을 품 안으로 들이는 것을 보니 동생에게 무조건적으로 사랑의 퍼주는 것 같다.

마치 부모가 자식에게 주는 사랑과도 비슷해 보인다.

아니, 사실 부모는 상황에 따라 자식에게 엄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누나는 때때로 남동생에게 엄마보다 더 편한 울타리가 된다.

동생에게 여러모로 치이고 당하면서도, 누나는 늘 동생에게 희생하고 헌신한다.

이렇듯 옛 글에 등장하는 누나는 남동생에게 무한한 사랑을 베푸는 경우가 흔하다.


우리는 늘 누군가에게 배려와 사랑을 받는다.

참 고마운 일이다.

그런데 우리가 누군가의 사랑을 받을 때, 그 사랑이 누군가의 양보와 희생의 결과라는 것도 꼭 기억해야 한다.

다양한 이야기 속 누나들의 사랑 속에는 누나의 희생과 헌신이 숨어 있었다는 것을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전현선 양주고 국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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