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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 연장할때도, 집 팔려고해도…`뒷돈` 오고가는 세상
기사입력 2020-10-29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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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지는 전월세 암시장 ◆
서울의 전세매물이 자취를 감춘 가운데 29일 잠실의 한 부동산 중개업소가 오랜만에 전월세 물건이 나왔다고 홍보하고 있다.

[이충우 기자]

#1 서울 삼성동에 집 한 채를 갖고 있는 B씨는 집을 팔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사업이 잘 되지 않아 지난 8월 집을 내놓았지만 거래를 할 수 없다.

동네가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되는 바람에 실입주자에게만 집을 팔 수 있는데 기존 세입자가 나갈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다.

B씨는 "8월에 집을 빼는 비용으로 2000만원을 요구하던 세입자가 9월엔 4000만원을 요구하더니 요즘은 아예 전화도 받지 않는다"고 말했다.


#2 서울 강남권의 한 대단지 아파트는 세입자들에게 '임대차 3법도 비켜가는 단지'로 인식된다.

세입자 A씨는 "3억원을 올려줄 생각이 있었지만 집주인으로부터 5억원 인상을 요구받았다"며 "5억원 인상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자기 아들을 입주시키겠다고 하더라"고 털어놨다.

단지 내 전세 매물은 씨가 말랐고, 설사 매물이 있더라도 집주인이 제시한 가격보다 높아 거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2020년 한국 부동산 시장이 암시장화하고 있다.

임대차 3법을 소급 적용하면서 기존 계약 관계가 깨지고, 정상적인 수요·공급 메커니즘을 교란하자 생긴 암시장이다.


전쟁이나 천재지변이 일어난 것도 아니라 정책 실패로 발생한 것이다.

이곳에선 임대인과 임차인이 일방적인 갑을 관계로 묶여 있지 않다.

전세 수요가 몰리는 곳엔 임대인이 갑이고, 거래허가제로 묶인 곳에선 임대인이 임차인에게 사정하며 뒷돈을 쥐여주기 때문이다.

암시장은 통상적으로 어떤 재화 가격의 상한을 정부가 인위적으로 통제할 때 나타난다.

시장 균형 가격보다 정부가 정한 가격이 낮으니 이 가격에 공급하려는 사람보다 수요자가 훨씬 많아지고, 이 초과 수요를 노린 게 바로 암시장이다.


실제로 서울의 한 아파트는 작년 초 입주할 때 5억~6억원(전용 84㎡ 기준) 수준이던 전세가가 새로운 임대차법 시행 이후 10억~11억원으로 급등했다.

임대인 입장에서는 계약갱신청구권을 수용할 때(5% 인상)와 시세대로 받을 때 차이가 5억원 이상 벌어지니 직계 존비속 실거주를 핑계로 세입자를 내보낼 유인이 강하다.

인근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집주인과 세입자가 합의해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하지 않고 주변 시세대로 재계약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임대인의 협상력이 강하다 보니 임차인에게 계약갱신청구권을 쓰게 하고, 계약서상으로는 전세보증금을 5%만 올린 뒤 이면계약으로 계약 만기 시 보증금의 일부를 임대인이 가져가는 사례도 나온다.


즉 직전 5억원에 전세를 살고 있었다면 전세금은 2500만원만 올리되 새 계약 종결 시 임대인이 임차인에게 보증금을 돌려줄 때 수천만 원을 떼가는 식이다.

보증금을 얼마나 뗄지는 인근 월세 시세를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 반전세로 돌린 것과 마찬가지다.

또 임차인에게 갱신권을 쓰게 했으므로 2년 뒤에는 확실하게 임차인을 내보낼 수 있게 된다.


이처럼 정부가 임대료 상한을 막으면 임대인들이 임대주택 공급을 줄인다.

예를 들어 계약갱신을 거부하거나 임대주택을 매각하기도 하고 유지보수를 안 해 주택 질을 낮출 수도 있다.

임대주택 물량이 감소하면 집이 꼭 필요한 임차인은 임대인에게 비공식적인 목돈(key money)을 건네야 한다.

정상적인 시장에서는 필요한 물건을 구할 수 없어 '암시장'에서 뒷돈을 주고 비싸게 사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 현상이다.


손재영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수요자와 공급자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 정부 규제의 힘이 미치지 않는 영역에서 거래가 이뤄진다"며 "정부가 강제로 임대료를 낮춰도 스스로 이전의 시장 균형 가격을 찾아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웃돈을 줘야 하는 정반대 암시장도 있다.

지난 6월 토지거래허가제로 지정된 서울 삼성동·대치동·잠실동·청담동 내 전세 낀 매물이 대표적이다.

해당 지역은 '자기 거주용' 목적 거래만 허가하기 때문에 임대차 계약기간이 남아 있는 집을 팔려는 집주인은 철저히 '을' 입장에 서게 된다.

그 결과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각종 명목으로 웃돈을 쥐여줘야 퇴거가 가능한 실정이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세입자에게 위로금을 주고서야 경기도 의왕집을 처분할 수 있었다.


이런 경우가 발생하는 이유는 '세입자를 끼지 않은 집'의 공급이 줄었기 때문이다.

송인호 한국개발연구원 경제전략연구부장은 "이는 제도 시행 전부터 예견됐던 사항"이라며 "정부 규제가 추가될 때마다 임대인에게 비용으로 전가되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암시장의 특징은 어떤 경우라도 사회 전체 이익을 감소시킨다는 것이다.

정부가 가격을 통제하는 경우 상황에 따라 임대인과 임차인 각각의 이익은 늘거나 줄 수 있다.

하지만 두 명의 이익을 합한 총량은 가격 통제 이전보다 떨어지게 된다.


경제 전문가들은 정책적 보완을 아무리 많이 하더라도 임대료 규제는 경제적 손실을 가져온다고 일찌감치 경고한 바 있다.

1992년 미국 경제학회 설문에 따르면 회원 93%가 '임대료 상한은 주택의 질과 양을 저하시킨다'는 명제에 동의했다.

또 정부 규제가 강해질수록 암시장은 더욱 은밀해지고 교묘해지며 사회 전체의 이익을 더 떨어뜨리는 특징이 있다.


[김동은 기자 / 김태준 기자 / 이축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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