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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WTO 사무총장 당선이 어려운 진짜 이유
기사입력 2020-11-16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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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꺼풀 벗긴 글로벌 이슈-331] 유명희 통상교섭본부장의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 도전이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다.


세계 최대 경제블록인 유럽연합(EU) 회원국들이 유 본부장의 라이벌인 나이지리아의 응고지 오콘조이웨알라 후보를 지지하기로 합의하면서 현실적으로 164개 회원국 중 과반 이상이 오콘조이웨알라 후보 쪽으로 기울었다는 평가다.


매일경제는 최근 외교부 대사 출신 전직 고위 관료들을 다수 접촉해 유 본부장의 담대한 도전과 노력이 무색하게 국제사회에 드리워진 구조적 어려움을 짚어봤다.

유 본부장이 한국 외교부에서 최고 여성 통상관료로 성장했고 WTO를 성공적으로 이끌 리더라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한국인 후보를 쉽게 용인할 수 없는 국제사회의 이해관계가 거미줄처럼 얽혀 있다는 게 이들 고위 관료들 전언이다.



■"올해는 아프리카 출신으로" 숨은 컨센서스
2006년 반기문 외교부 장관이 제8대 유엔 사무총장직에 도전했을 때 국제사회에서 보이지 않는 컨센서스가 하나 있었다고 한다.


아프리카 가나 외교관 출신인 코피 아난이 1996년 아프리카계 흑인 최초로 제7대 사무총장직에 당선됐다.


뒤이어 2002년 만장일치로 연임에 성공했는데 이 과정에서 국제사회에서는 "연임 조건으로 차기 사무총장은 아시아계 후보를 밀어준다"는 컨센서스가 형성됐다는 것. 그리고 반 장관은 제8대 2006년 유엔 사무총장직에 도전장을 내밀었고 다른 아시아계 후보들을 물리치며 최종 당선됐다.

아난 연임의 조건으로 아프리카 국가들이 국제사회에 약속한 "아시아계 지지" 약속이 지켜지면서 최초의 한국인 유엔 사무총장 탄생에 상당한 힘이 됐다는 게 당시 현장에 있었던 외교 인사 전언이다.


그런데 올해 WTO 사무총장 선출에서는 정반대로 "아프리카 출신 후보가 당선돼야 한다"는 컨센서스가 아프리카와 유럽 국가들에 만연했다고 한다.

이미 WTO 사무총장에 아시아인 최초로 태국 부총리 출신인 수파차이 파닛차팍이 지명돼 2002년부터 2005년까지 WTO를 이끌었던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2000년 이후 이미 아시아계 WTO 사무총장이 한 차례 배출된 상황에서 이번엔 최초로 아프리카계 사무총장이 WTO를 이끌며 개발도상국가들 목소리에 힘을 실어줄 필요가 있다는 컨센서스였다.


전직 고위 외교 관료는 "아프리카는 53개국이 뭉친 아프리카연합(AU)을 중심으로 매우 강력한 결속력을 자랑한다"며 "아프리카 국가들에서 유 본부장이 아닌, 오콘조이웨알라 후보를 지지한다는 만장일치의 컨센서스가 형성되면 이는 과거 식민지배 시절 종주국이었던 유럽 국가들에 그대로 전달된다"고 전했다.

역사적 종속 관계가 지금까지 아프리카와 유럽 국가들 간 경제협력과 지원으로 이어지는 상황에서 유럽 국가들이 아프리카 국가들의 일치된 컨센서스를 무시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노무현 때와 너무 다른 '드러내기' 전략
도광양회(韜光養晦).
'칼날의 빛을 감추고 그믐 달빛 아래에서 실력을 기른다'는 이 말은 삼국지에서 유비가 조조의 식객 노릇을 할 때 일부러 몸을 낮춘 상황을 일컫는다.


한때 중국의 핵심 외교 전략이기도 했던 도광양회는 2006년 당시 노무현정부가 유엔 사무총장에 도전한 반기문을 지원하는 전략이기도 했다.


국제사회에서 노골적인 지원 요청으로 역효과를 유발하지 않도록 조용하되 치밀한 접촉으로 유엔 회원국들을 각개격파한다는 기조였다.


더구나 유엔 사무총장은 미국 등 5개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P-5)이 당선 여부를 좌지우지하는 구조이다 보니 요란하게 캠페인을 벌일 경우 이들 상임이사국을 자극할 수 있었다.

당시 정부와 국회, 외교부 고위 인사들이 2005년 9월부터 1년여간 세계 각지를 돌며 지지를 요청했고 반기문 당시 외교부 장관도 아프리카 대륙만 8회 방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올해 WTO 사무총장 경쟁 구도에서 청와대는 2006년 상황과 달리 문재인 대통령이 각국 정상과 통화에서 유 본부장에 대한 지지를 요청했다는 사실을 중계보도식으로 노출했다.


물론 올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청와대와 정부 관료들의 적극적인 해외 접촉이 어려웠다는 점에서 응당 이해가 가는 대목이지만 일각에서는 "국가 정상의 해외 지지요청 활동을 스스로 공개하는 것은 유 본부장의 지지 확산이나 외교 에티켓에서 바람직하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직 고위 외교 관료는 "열흘 전부터 WTO 의장단이 개별 국가들과 접촉해 어느 후보를 지지하는지 조사하고 있는 상황에서 나이지리아 후보 측은 조용한 행보를 취했는데 유독 한국에서만 대통령의 지지 활동이 공개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문 대통령을 상대로 해당국 정상들이 전한 메시지를 빠짐없이 언론에 노출시키는 방식의 (청와대) 홍보는 여태껏 본 적이 없다"고 전했다.


또 다른 전직 외교 관료는 "WTO는 선거가 아닌 컨센서스로 사무총장을 선출한다고 하지만 의장단이 개별 국가를 접촉해 지지 후보 여부를 기록하는 것 자체가 사실상 선거"라며 "이는 선거 방식으로 대륙별 후보가 박빙을 기록해 WTO가 분열되는 듯한 양상을 보이는 것을 피하려는 조치"라고 말했다.


또한 "정부와 청와대가 막판 컨센서스를 바꿀 수 있다고 하지만 개별국이 이미 의장단에 전달한 지지 후보 선택 문제를 번복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관측했다.


[이재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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