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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형 칼럼] 25년전 이건희 "기업 2류, 정치 4류" 지금은 몇 류?
기사입력 2020-10-27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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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이건희 회장이 2012년 7월 오전 홍라희 여사 장녀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등과 함께 김포공항을 통해 영국 런던 올림픽 참관차 출국하며 취재진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 하고 있다.

/사진=이승환 기자

[김세형 칼럼] 한국 재계의 큰 별 이건희 삼성 회장이 생을 마감했다.

삼성을 세계 일류로 키워 국민의 자존심을 살린 그가 생전에 남긴 말이 회자되는데, "기업은 2류, 행정은 3류, 정치는 4류"라는 말이 눈에 띈다.


김영삼 대통령 때인 1995년 4월 13일, 이른바 '베이징 발언'이다.


이 회장이 베이징 주재 한국 특파원들과 95분간 점심을 함께하면서 한 발언 내용을 다시 한 번 들여다보자.
"대통령이 개혁 의지가 높은데도 행정 규제, 권위 의식이 강해 21세기에 한국이 앞서 나가는 것은 상상도 못한다.


장쩌민(江澤民) 중국 주석을 만나보면 '반도체 몇 비트냐' 'R&D 비용은 얼마냐'고 묻는다.


한국에선 반도체 공장 건설을 신청해도 도장이 1000개나 필요하고 허가도 잘 안 해준다.

(중략)솔직히 얘기하면 우리나라는 행정력은 3류급, 정치력은 4류급, 기업 경쟁력은 2류급으로 보면 될 것이다…."
당시 53세 나이로 대통령과 정치권을 정조준했으니 오늘날 시각으로 보면 상당한 배포다.


이 회장이 이 말을 한 게 25년 전인데, 그러면 지금은 더 개선(up)됐다고 보는지 나는 사람들 반응이 무척 궁금했다.


그래서 엘리트층 수십 명에게 문자메시지를 돌려봤다.

그들의 답변은 대중의 지혜가 뭔지를 보여줬다.


"기업은 그대론데, 행정이 정치의 시녀가 돼서 함께 4류로 굴러떨어졌다" "정치가 4류인데 행정이 휘둘려 꼼짝 못하니 5류 행정"이라며 행정의 추락을 가장 많이 걱정했다.


홍남기, 추미애, 김현미, 강경화 등 장관들 얼굴이 주마등처럼 지나가서 그럴 것이다.


"우리나라 기회비용을 정치가 다 소모하고 있다.

한심한 것은 정치는 5류이고 기업은 일류가 됐는데 5류가 일류를 지배하는 현상"에 대한 우려가 매우 컸다.


확실히 기업(경제)에 대한 평가는 그때보다 올라갔다.


이런 정치·행정에 신음하면서도 국민을 먹여살리고 있으니 기업의 저력이 몰라보게 좋아졌다는 것이다.

사실 세계 일류로 올라선 기업은 꽤 많이 있다.


25년 전 이건희 회장은 베이징 발언 여파로 삼성 계열사들이 국세청 세무조사 등으로 두들겨 맞는 등 우여곡절이 있었고 이 회장은 일본에서 3개월 동안 머물렀다.


그러다가 8월 5일 귀국 이틀 후 김영삼 대통령과 단독으로 만났고 9월 30일 청와대에서 총수들과 미팅할 때 대통령 옆자리에 이 회장 좌석을 배치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어땠을까.
사실 현재 이재용 부회장 나이는 52세로 베이징 발언을 했던 당시 이건희 회장과 한 살밖에 차이 나지 않는다.

지금 이재용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정치는 4류라고 말하고 그에 대해 '대깨문'과 국회 내 친문 의원들 반응 등을 상상하면 어떨 것 같은가. 아마 천둥 치는 난리법석이 났을 것이다.

그것이 왜 기업은 일류인데 정치는 5류까지로 밀리는지에 대한 답이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별세한 25일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들어서고 있다.

/사진=김호영 기자


새삼 시대 상황을 살펴보면 이 회장 발언이 나온 1995년은 국민소득이 아직 1만달러가 되기 전이고 2년 후 1997년엔 IMF 외환위기를 맞았던 낙후된 시기였다.


삼성전자는 일본 소니에 꼼짝 못하고, 반도체도 힘을 못 쓰고, 휴대폰(mobile)도 없던 시절이었다.


1인당 국민소득은 1만달러도 안 돼 현재 3만달러 초과와 비교할 수 없는 처지였다.

중국은 WTO에도 가입하기 전이고 한국 경제를 높게 본 호랑이 담배 먹던 옛날이었다.


지금 정치 수준이 후진적인 그 당시만도 못하다니 한탄스럽다.


그러는 동안 이건희의 삼성은 소니를 따라잡고(2002년), 반도체 1위로 올라섰는가 하면 애플 아이폰을 누르고 휴대폰 세계 1위(2012년)라는 쾌거를 이룩했다.


한국 재계를 대표하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25일 서울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78세. 2014년 5월 급성 심근경색증으로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자택에서 쓰러진 뒤 6년 만이다.

사진은 2010년 16라인 반도체 기공식에 참석한 이건희 회장. /사진=삼성 제공. 연합뉴스

평창동계올림픽을 따내는 데도 이건희는 절반의 역할을 했다.


한 국가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정치, 행정, 기업이 따로 갈 수는 없는 법이다.


정치가 3류·4류고 행정도 그모양인데 기업만 초일류로 펄펄 나는 나라가 있을 수 있는가? 역사에 그런 국가는 없다.


미국을 보자. 트럼프 이전엔 정치, 행정, 기업이 모두 일류 또는 초일류의 시기였다.

트럼프가 과한 요구를 하면 장관(틸러슨 국무, 에스퍼 국방 등)은 사표를 낼지언정 듣지 않는다.


한국 같으면 탈원전이 무리하다면 경제부총리, 산업장관이 거취를 걸고 대통령에게 따졌을 거란 얘기다.


그 대신 최근 미국 행정부가 구글을 반독점으로 기소한 데서 보듯 기업이 무소불위면 손을 본다.


반대로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는 트럼프 대통령이 KK단체를 두둔하는 행동을 하자 "당신과는 함께 일을 못하겠다"며 백악관 제조업위원회를 탈퇴한 일도 있었다.


이렇듯 정치-행정-기업이 협력하고 때론 견제하면서 나라가 발전하는 것이고 선진국의 모습을 완성하는 것이다.


일본, 독일, 영국, 프랑스 등을 보더라도 정치-행정-기업의 수준이 대체로 함께 간다.


정치가 폭력적 독재를 이어가는 나라들, 즉 북한이나 러시아, 쿠바, 중동 국가들에서 세계를 호령하는 기업이 나타난 걸 본 적이 있는가. 없다.


2011년 7월 6일 남아공 더반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인사하는 이건희 회장. /사진=연합뉴스
결론적으로 정치가 앞에서 행정과 경제(기업)를 리드(lead)하는 게 정상적인 모습이다.


일찍이 큰 정부를 주장했던 J M 케인스도 '기업인의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을 보장하라'고 한 게 그런 연유였던 것이다.


이건희 회장이 삼성을 세계 수준으로 올릴 수 있었던 첫 수(手)는 부친이었던 이병철 회장이 비서실이 90% 이상 권한을 틀어쥐고 있던 것을 각 계열사에 자율권을 주는 데서 시작됐다(이건희 리더십, 김병완著).
'삼성웨이'를 쓴 송재용 서울대 교수는 아버지를 답습하지 않고 '제2의 창업'을 선언하며 프랑크푸르트 선언으로 표현되는 글로벌과 초일류를 지향한 데서 성공 이유를 찾는다.


잭웰치센터(GE)의 밥 코코란은 중장기 계획으로 반도체, LCD, 휴대폰 등 10년마다 세계 1위 제품을 만들어내는 능력을 높이 샀다.


이제 정치가 25년 전 4류에서 왜 더 후퇴했다는 평가를 듣는지 돌아보자.
'문재인 정부=청와대 정부'로 표현되듯 모든 권한이 청와대로 집중하고 장관들은 자율권이 없다.

반대로 국민 여론은 통합하기는커녕 반동강 내는 전략으로 갔다.


국민의 힘이 분산되면 국가 잠재력은 보나마나 후퇴한다.

현재 한국은 10년 혹은 그 이상 중장기 비전(plan)이 전혀 없다.


삼성만 10개년 계획이 있는 게 아니라 미국, 중국, 일본, 독일 등 세계 선두 그룹들은 모두 중장기 비전이 있다.


문재인 정부에선 성장, 경쟁력, 수월성 같은 단어들도 없고 그 대신 미래 세대를 잡는 국가부채만 하늘 끝으로 올라간다.


불후의 병법서(손자병법)을 쓴 손무는 국가가 강성하고 안전을 보장하는 비결은 '좋은 장수'를 육성하는 것이라고 했다.


손자병법에서 말하는 뛰어난 장수는 현대판 버전으로 해석하면 '뛰어난 기업인'이다.

스티브 잡스, 제프 베이조스, 일론 머스크, 마크 저커버그, 래리 페이지 같은 이들이다.


천재 1명이 좋은 기업을 만들어 10만명을 먹여살리는 세상임을 그들은 증명하고 있다.

이건희 본인도 그런 반열에 올라섰다.


이건희 회장이 정치를 조롱하려고 4류라고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정치가 일류가 돼야 행정, 기업도 일류가 되는 걸 방해하지 않고 그러면 국민 삶이 편해질 거라는 염원을 담아 그런 말을 했을 거라 생각한다.


현재 정부가 삼성 그리고 경제 3법 어쩌고 하면서 재벌에 하려는 일은 국민이 알고 있다
과거 정부들이 이뤄놓은 금자탑에 얹혀 한국은 선진국 운운하지만 정치-행정이 4~5류로 계속 처져 내리면 베네수엘라나 그리스처럼 나뒹굴 것이다.


이건희 어록의 경종은 그것이다.


그도 자동차나 안드로이드 인수 등에선 실패를 하기도 했다.

덩샤오핑이 마오쩌둥 사후 "한 인간은 공(功) 7, 과(過) 3이면 성공"이라고 후하게 평가했다.


더민주 정치인들이 이건희 인생을 평가하며 공과가 다 있었다면서 공(功)은 나열하지 않고 과(過)만 여러 개 늘어 놓았다.


왜 5류인지 심성을 말해준다.


격렬한 경쟁의 삶을 산 기업인들의 수명은 길지 못하다.


이병철 회장 77세, 이건희 회장 78세, 그리고 정주영 회장 86세, 김우중 회장 83세, 박태준 회장 84세, 구본무 회장 72세의 삶은 예술가 피카소 93세보다 짧았다.


이건희의 생은 한국 사람도 하면 일본을 꺾고 세계 1등이 된다는 걸 증명하면서 한국인 가슴에 자부심의 불을 지폈다.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를 좋아했던 그에게 감사하며 명복을 빈다.


[김세형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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