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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 부상’ 극복 못한 윤석민, ‘영광과 추락’ 교차했던 프로 15년
기사입력 2019-12-13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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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닷컴 MK스포츠 안준철 기자
KBO리그를 대표하는 우완 에이스로 우뚝 섰던 윤석민(33·KIA타이거즈)이 전격 은퇴했다.

어깨 부상을 극복하지 못하고, 15년 간의 프로 생활을 마감했다.


KIA는 13일 윤석민의 은퇴를 발표했다.

야탑고를 졸업하고 2005년 신인 2차 드래프트 1라운드 전체 6순위로 KIA 유니폼을 입고, KIA유니폼만 입은 프랜차이즈 스타다.

선발과 마무리를 오가며, 팀을 위해 헌신했다.


프로 첫 해인 2005년부터 84이닝을 소화한 윤석민은 1군에서 자신의 입지를 넓혔다.

2006년에는 마무리투수로 활약하며 5승6패 19세이브 9홀드 평균자책점 2.28을 기록하며 깊은 인상을 남겼다.


KIA 윤석민이 15년 간의 프로 생활을 마쳤다.

사진=MK스포츠 DB

2007년 선발투수로 전향한 윤석민은 극심한 불운과 팀 타선 지원 부재로 18패(7승)를 떠안았지만, 162이닝을 던져 3.78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는 투혼을 발휘했다.

특히 최하위에 그친 KIA를 실질적으로 혼자 이끈 에이스였기에, 소년가장 이미지가 강해졌고, '윤석민 어린이'라는 별명이 유명해졌다.


이후 윤석민의 전성기가 찾아왔다.

2008년 14승5패 평균자책점 2.33으로 KIA의 에이스로 도약했다.

베이징올림픽에 출전해 금메달을 목에 걸기도 했다.

2009년에는 9승4패 7세이브 평균자책점 3.46을 기록하며 KIA의 한국시리즈 우승에 힘을 보탰다.

태극마크를 달고도 2009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준우승을 올렸고, 2010 광저우아시안게임에도 출전해, 금메달 멤버가 됐다.


2011년에는 최고점을 찍었다.

17승5패 1세이브 178탈삼진, 평균자책점 2.45, 승률 0.773를 기록하며 투수 4관왕(다승, 평균자책점, 탈삼진, 승률)에 올랐다.

투수 4관왕을 앞세워 정규시즌 MVP도 차지했다.


이후 2013시즌이 끝난 뒤 메이저리그 진출을 선언했다.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계약했지만, 2014년 마이너리그 노포크 타이즈에만 머물다가, 1년 만에 다시 KIA로 복귀했다.

KIA는 4년 총액 90억원이라는 거액을 윤석민에게 안겼지만, 윤석민의 추락이 시작된 시기였다.

2015시즌에는 마무리 투수로 30세이브를 거두며 ‘역시 윤석민’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이후 어깨 부상이 윤석민을 괴롭혔다.


결국 2016년엔 어깨에 웃자란 뼈를 제거하는 수술을 받고, 2017시즌을 통째로 날렸다.

2018시즌 복귀했지만, 16경기 31이닝을 소화하며 2승2패 1세이브 6홀드 평균자책점 3.19라는 초라한 성적만을 남겼다.

올 시즌을 앞두고는 연봉이 10억5000만원이 삭감되는 굴욕을 겪었고, 1군에서 공 1개도 던지지 못하고 현역 생활을 접게 됐다.

영광과 추락이 교차한 윤석민의 프로생활 15년이었다.

윤석민은 “선수로 뛰면서 팬들의 넘치는 사랑을 받았다.

응원과 사랑에 보답하지 못한 것 같아 죄송한 마음뿐이다”라는 소회를 밝혔다.

jcan1231@mae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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