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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가면 길바닥에 돈이 보인다"…年280일 해외출장 강행군
기사입력 2019-12-10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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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우중 1936~2019 ◆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1998년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에서 자전거를 타며 현장 경영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 제공 = 대우세계경영연구회]
지난 9일 밤 별세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은 한국 기업사에 한 획을 그은 풍운아였다.

명석한 두뇌와 열정만으로 무에서 유를 창조한 기적의 사나이이자, 포천 500대 기업 중 18위에 올랐던 그룹을 하루아침에 공중분해시킨 역대 최대 규모 부도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샐러리맨 출신으로 창업에 나서 15년 만에 재계 4위 그룹을 일구며 젊은이들의 꿈과 희망이 됐지만, 어마어마한 부실과 분식회계로 8년6월의 징역형과 18조원의 추징금을 선고받기도 했다.


김 전 회장은 생전에 "개발도상국 한국의 마지막 세대가 돼 '선진 한국'을 물려주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해 미안하고 부끄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선진 한국을 이끌겠다는 바람을 끝내 이루지 못하고 영면에 들어갔다.

재계 관계자는 "김 전 회장은 결과적으로 실패했지만, 그 실패로 국가 경제에 기여했다"며 "그의 실패는 한국 경제가 튼튼하고 경쟁력 있는 체질로 바뀌는 데 큰 교훈을 줬다"고 말했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1999년 4월 한국을 방문한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과 함께 자동차 모형 제작 과정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 제공 = 대우세계경영연구회]

김 전 회장이 이끈 대우의 성장 스토리는 한 편의 영화와도 같았다.

1967년 대우실업을 설립한 뒤 타고난 영업 능력으로 수출을 늘려 1년 만에 대통령표창을 받을 만큼 성장했다.


'세계 경영'을 강조했던 김 전 회장은 외국으로 나가라는 유명한 어록들을 남겼다.

"외국에 나가면 길바닥에 돈이 쫙 깔려 있다는 것이 눈에 보인다"며 "그 돈을 언제 어떻게 거둬들이느냐는 것이 문제이지, 돈이 안 보여서 못 버는 것은 아니다"란 발언이 대표적이다.

그는 1989년 에세이집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를 펴내 6개월 만에 판매량이 100만부를 돌파하며 최단기 밀리언셀러 기네스 기록을 달성하기도 했다.

김 전 회장은 자신의 책에서 강조한 대로 세계 경영에 매진했다.

특히 1990년대 폴란드 헝가리 루마니아 우즈베키스탄 등지에서 자동차공장 등을 인수하거나 설립하며 세계 경영에 박차를 가했다.

1999년 그룹 해체 직전 대우의 직원 규모는 국내 10만명, 해외 25만명에 달했다.


김 전 회장은 1년 중 280일을 외국에서 체류할 정도로 지독한 일벌레였다.

자정에 공장을 둘러보고 나서야 퇴근했다거나 결혼한 날도 여행이라고 가서 하룻밤 자고 바로 다음날 오후에 돌아왔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일화다.

김 전 회장은 당시 "이제 좀 즐겨도 되지 않느냐"는 질문에 "다 같이 잘살게 되기 전까지 우리 세대는 희생할 수밖에 없다.

게을러지는 것을 경계해야 하며 상위 10%가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말했다.


대우그룹 몰락의 계기는 1997년 11월 닥친 외환위기였다.

1998년 3월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을 맡은 김 전 회장은 '수출론'을 집중 부각했다.

구조조정보다 수출을 확대해 외화를 벌어들여 외환위기를 극복해야 한다며 '500억달러 무역 흑자론'을 내걸었다.

하지만 경제 관료들은 이 같은 주장에 동의하지 않았다.

대표적인 인물이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였다.

이 전 부총리는 김 전 회장의 경기고 후배이자 대우에서 4년을 보낸 '대우맨'이기도 했다.

1979년 특혜 금융 시비에 휘말려 관직을 그만둔 이 전 부총리는 보스턴대에서 경제학 석사 학위를 받고 하버드대 최고경영자 과정을 수료했다.

이 전 총리는 이때 김 전 회장을 만났고, 김 전 회장 도움으로 (주)대우 상무, 대우반도체 대표이사 전무로 재직했다.


이처럼 선연(善緣)으로 시작됐던 두 사람의 인연은 대우그룹 해체 과정에서 결국 악연(惡緣)으로 변했다.

당시 금융감독위원장이었던 이 전 부총리는 대우그룹 해체안을 기획·집행하는 정책 라인의 중심에 서 있었다.

이 전 부총리는 당시 "대우가 해외에서 차입한 현지 금융은 현지에서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도덕적 해이나 불법 사례가 있었다면 방관하지 않겠다" 등 강경 발언을 쏟아내며 김 전 회장과 날 선 대립각을 세웠다.

대우그룹은 1999년 8월 모든 계열사가 워크아웃 대상이 되면서 끝내 해체됐다.

이와 관련해 김 전 회장은 2014년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교수가 집필한 대화록 '김우중과의 대화-아직도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를 통해 대우그룹의 해체는 경제 관료들의 정치적 판단 오류 때문이라는 '기획 해체론'을 주장하며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세계 경영을 활발하게 펼쳐온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해외출장길에 비행기 내에서 사업 계획을 논의하고 있다.

[사진 제공 = 대우세계경영연구회]

김 전 회장은 1990년 당시 23세였던 장남 김선재 씨가 미국 보스턴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비극을 겪기도 했다.

채 피지 못하고 스러진 아들에 대한 기억 때문이었을까. 김 전 회장은 청년들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

2008년 사면 이후 주력한 일도 청년 양성 사업이었다.

주로 베트남 하노이에 머물며 글로벌 청년 사업가(Global Young Business Manager·GYBM) 육성 사업을 시작했다.

김응한 미시간대 교수는 "직원 교육에 관심이 무척 많았다.

과장·부장급 직원들을 교육시켜야 한다며 미시간대에 요청해 글로벌 MBA 과정을 만들었다"면서 "젊은 인재들이 역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상사들도 훈련시켜 달라며 상무·전무·부사장급 임원들을 미국으로 보내 여름에 두 달씩 교육시켰던 게 기억에 남는다"고 김 전 부회장에 대해 회고했다.


김 전 회장은 이 전 부총리 외에도 많은 사람과 여러 일화를 남겼다.

1998년 대우건설이 맨해튼 유엔본부 근처 용지에 세계 최고층 주거 빌딩인 트럼프월드타워를 건설하면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도 다양한 인연을 맺고 있다.

김 전 회장의 아버지인 고(故) 김용하 씨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대구사범학교 은사였다.

박근혜 전 대통령 동생인 박지만 EG그룹 회장과의 인연도 남다르다.

EG그룹의 전신인 삼양산업을 인수하는 데 김 전 회장의 도움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노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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