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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난이 채소는 없다, 맛있는 식재료만 있을 뿐 … 요리사 차현재 인터뷰
기사입력 2019-12-06 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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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윤의 미식탐구-38] 마트에 가면 빨갛고 반짝이는 사과, 탱탱한 포도알, 빛나는 파프리카와 반듯하고 굵기 좋은 가지와 오이가 가득하다.

아무리 식물이라지만 제각각 다른 생명체일텐데 모양이 다 비슷하다.

이유는 '철저한 외모 선별'에 있다.

국제연합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전 세계 농산물의 30%에 이르는 양이 규격에 맞지 않는다는 등 이유로 유통되지도 못한 채 농가에 버려진다.

그 양은 1년에 272만t에 이른다.

표면이 거칠거나 울퉁불퉁한 모양 채소는 모두 어디로 갔을까?
소비자의 마음으로 돌아가 보자.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말부터, 임신부는 "예쁜 것만 골라서 먹어야 한다"는 이야기처럼 우리는 예쁘고 반듯한 농산물만을 고집한다.

맛과 영양에 아무런 차이가 없다고 하더라도 크기가 표준에서 벗어나거나 껍질 겉면에 상처가 있는 등 일부 작물은 전체 상품 가치를 떨어뜨린다는 편견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짧게는 몇 주에서 여러 달에 걸쳐 자라는 작물이 아무런 흠집 없이 완벽한 상상 속 모습으로 자라는 것에 의문을 가져 볼 필요가 있다.

실제로 40% 정도는 표준에서 동떨어진 형태로 자라, 수확 단계에서 정확히 수량이 집계되지도 않은 채 폐기되는 것으로 추산된다.


수확 단계에서 버려지는 비규격 농산물. 영양과 맛에는 차이가 없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못난이 농산물, 변화하는 소비 트렌드
우리가 흔히 '표준'이라고 판단하는 형태에서 벗어난 과일과 채소 등 작물을 '못난이 농산물'이라 부른다.

외형이 다소 볼품없다는 점 외에는 큰 차이가 없는데도 가격도 정상 제품보다 절반 가량 저렴하기도 하다.


이미 미국, 일본 등 주요 선진국에서는 못난이 농산물이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는 트렌드와 맞물려 소비자들 지지를 얻고 있으며, 장터에서 농산물을 사고파는 것이 일반적인 주요 유럽 도시에서는 크기도 색도 형태도 자유분방한 '못난이' 농산물이 오히려 다양성을 상징하는 척도가 되기도 한다.


식품유통 산업 관점에서도 마찬가지다.

맛과 영양이 훌륭한 못난이 농산물을 저렴한 가격으로 수매한 뒤 가공해 판매하며 성공하는 푸드 스타트업도 주목할 만하다.

까다롭게 당도를 선별한 못난이 사과를 사과즙으로 만들어 판매하는 지구인컴퍼니, 농가와 식품가공업체를 연결해 주는 파머스페이스 등이 있다.


◆ 요리사도 못난이 농산물 사용에 동참
식재료를 맛있는 요리로 탈바꿈해 고객과 만나는 요리사도 이 흐름에 동참하고 있다.

전 세계 40개국에서 70개의 지역모임으로 활동하고 있는 슬로푸드(Slow Food) 지지자 네트워크인 슬로푸드청년네트워크(Slow Food Youth Network Korea)에서 활동하고 있는 차현재 요리사를 만나 인터뷰했다.


슬로푸드청년네트워크 요리가무 행사

Q. 버려지는 농산물을 활용한 '요리가무' 행사 이력이 인상깊다.


◇ 차현재 요리사(이하 차)= 2013년부터 매년 꾸준히 청계천 광장, 킨텍스, 가락시장 등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 도시 가운데에서 음식 축제가 있었는데, 저희는 요리가무(Disco Soup)라는 이름으로 이 축제에 참여했어요. 핵심은 '버려지는 농산물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파티'예요. 먹을 수 있음에도 못생기거나 규격에 맞지 않아 버려지는 재료들을 요리해서 시민들과 나누는 것을 콘셉트로 삼았지요.
요리사만 이 행사에 참여하는 것은 아니에요. 요리를 하는 사람도 있지만 기획자, 디자이너 등 관심 있는 누구나 함께 모여 버려지는 재료들을 직접 손질하고, 요리하고, 나누어 먹는 것이 핵심이죠. 재료를 바로 시민들의 눈앞에서 손질하고 요리해 다 함께 나누어 먹으며 이 농산물이 가치가 있다는 것을 직접 몸으로 느끼게 해 주고 싶었어요.

비규격 농산물로 버려질 채소를 이용해 만든 음식

Q. 버려진 농산물로 음식을 만들어 먹는 콘셉트에 대해 더 설명해달라.
◇ 차= 이 재료들을 왜 버려? 이런 생각이 사람들 마음속에 생겨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저희 의도였고요. 정말 많은 청년이 함께 요리하며 이야기를 나누었고, 시민들에게 음식을 나눠드렸어요. 지금껏 요리가무로 500㎏이 넘는 농산물을 사용했는데, 무료로 2500인분 이상을 만든 셈이죠. 그만큼 저희는 음식이 직접 말을 하게 하고 싶었어요. 겉모습이 못생겼다고 버려져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고요.
다소 규격에 맞지 않는 외형 때문에 혹은 작황의 이유로 유통조차 되지 않거나 못하는 채소를 전시해두면 많은 시민이 오셔서 음식을 맛보고, 이런 농산물을 시각적으로 접하지요. 저는 그중 한 분이라도 이러한 문제점들에 대해 인지하셨다면 그것만으로도 큰 성과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해요. '요리가무'라는 이름으로 이 행사를 여러 해 진행해 왔지만요. 제가 이런 캠페인 형식의 '음식 운동'을 하는 이유는 정답을 모두에게 강요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마주한 식탁의 모습을 알자는 것이거든요. 우리가 어떤 환경에 처해 있는지 제대로 알아야 다음 세대에 어떻게 더 나은 모습으로 전달해줄 수 있을지 고민할 수 있으니까요. 못난이 채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Q. '못난이 채소'의 못생김도 어쩌면 상대적인 기준일 것 같다.


◇ 차= 네, 맞아요. 당대 사람들이 처한 상황에서 '낯섦'과 '당연함'은 의외로 경계가 모호하거든요. 대형마트가 보편화되기 전에는 구부정한 가지도 평소에 먹던 가지였고, 크기가 들쭉날쭉한 뿌리채소도 그저 소쿠리에 담겨 함께 팔리는 뿌리채소였어요. 그때는 못생겼다는 생각조차 안 한 거예요. 일반적인 가지 중 하나였을 것이고, 사람들은 스스럼없이 그런 다양한 농산물을 구매했다고 봐요.
하지만 농업기술 발전과 유통 구조 개선은 소품종 대량생산 농장 발전을 촉진시켰고 규격화되고 보기 좋은, 그러면서도 가격 경쟁력을 갖춘 상품들을 시장에 쏟아냈어요. 이제는 아주 작거나 구부러진, 혹은 색이 보랏빛으로 균일하게 착색되지 않은 가지를 구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졌지요. 이 자체만으로 소비자가 처한 상황이 안 좋아졌다고는 할 수 없는 것이 모양이 표준적인 상품을 더 쉽게 생산하게 되었다는 것은 발전된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비규격 상품을 애초에 소외시키는 구조가 만들어진거죠.
Q. 요리사로서 이런 활동을 하는 이유는?
◇ 차= 전 세계 인구가 먹고도 남을 만큼의 식량이 생산되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여전히 음식의 3분의 1이 버려지고 있어요. 그런데 한쪽에서는 하루에 10만명이, 5초에 한 명의 어린이가 굶주림으로 사망하고 있고요.
못생겼다고 재료가 버려지고, 때론 농사가 잘되어 작황이 너무 좋아 출하 가격이 낮다고 수확도 하지 않은 채 밭이 버려지죠. 수확하는 비용도 나오지 않아 차라리 안 팔겠다고 애써 기른 작물을 눈물 머금고 갈아 엎는데 지구 한쪽에선 굶주림에 시달리는 것이 아이러니해요.
요리사는 1차 생산자에게 소비자이지만, 식당 손님에겐 생산자가 되기도 해요. 때문에 양면을 지닌 직업인으로서 이러한 세계적 사회 문제와 빈부 격차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토론하는 자리엔 반드시 요리사가 함께해야 한다는 생각이에요.
Q. 식재료와 농업에도 관심이 많다.

이 운동과 연관이 있나.
◇ 차= 버려지는 식재료와 못난이 채소들에 관심을 가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 농산물이 어디서 자라는지, 그 땅은 어떤 땅인지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졌어요. 사실 도시농업을 시작하게 된 것은 의도적인 계획보다는 우연에 가까웠지만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해요. 거의 10년 전 조리학도로 수업을 듣던 시절, 실무 경험을 쌓고 싶어 레스토랑으로 출근했을 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음식점에 가면 냉동 새우를 정말 많이 쓰잖아요?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 주방에서 이 많은 냉동새우가 쓰일 텐데 대부분 태국산이더라고요. 그 모든 수요를 맞추는 공급이 어떻게 가능할까 호기심에 공부하다 보니 음식학, 즉 'Food Studies'라는 분야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공부를 할수록 혼자보다는 여럿이 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아 'All about Food'라는 음식 포럼 모임을 개설해 다양한 분야 분들과 소통하기 시작했어요. 여기서 자연스럽게 '도시농업' '도시양봉' 신청하는 곳을 접하게 되었고 그게 시작이었어요. 생태계란 무엇일까에 대한 고민이 작게나마 시작된 거죠.
Q. 직접 농작물도 재배해 본 경험이 있다고 했는데.
◇ 차= 네, 처음 심었던 작물은 한 달이면 수확 가능한 래디시와 허브였어요. 당근도 심었고요. 주방에서 칼을 잡고 요리하는 것과는 또 다른 마음으로, 삽을 쥐고 흙을 헤쳐 첫 당근을 수확해 맛보았을 때 충격을 잊을 수 없어요. 아마 직접 재배해서 더 소중하게 여겨져서 그런지도 모르지만, 파는 당근보다 훨씬 볼품없게 자랐는데도 정말 맛있었거든요. 달큼하고 부드러운 느낌과 생강처럼 매운 향, 은근한 흙냄새 같은 평소에 느끼지 못했던 복합적인 맛과 향이 풍부하게 느껴졌어요.
이 시기를 보내고 나면서 제 모토 중 하나가 '흙에서 식탁으로'가 되었어요. 그 과정에서 흔히 우리가 마트에 가면 살 수 있는 농산물, 그리고 실제로 이것을 재배했을 때 쉽게 접하게 되는 못난이 농산물 같은 것에 대해 저만의 시각도 가지게 되었죠. 형태가 조금 다른 것은 상품 가치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어요. 오히려 농부가 잘 기른 정성이 맛과 영양에 더 중요한 것이죠. 이 모든 경험은 실제 농사를 통해 배운 것이기도 해요.
저는 요리사가 농사를 꼭 해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음, 농사는 당연히 농부가 해야 하지 않을까요? 하지만 농사를 직접 경험해보면 못난이 농산물이던, 음식의 가치이던, 모든 것을 근본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 준다고 봐요. 농부는 요리사에게 좋은 스승이 될 수 있지요. 작물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어 좋은 요리를 만들 수 있게 해주니까요.
Q. 못난이 농산물에 대해, 소비자와 요리사들이 어떤 생각을 가져야 한다고 보나.
◇ 차= 못생기지 않았다는 생각요(웃음)? 사실 정말 너무 예쁘죠. 다양한 색, 다양한 크기, 다양한 모양이 자연 그대로 모습이라고 봐요. 저는 요즘도 때때로 논산에 꽃비원이라는 농장에 방문해요. 2014년 서울 혜화에서 열리는 장터 마르쉐@에 방문했다가 '꽃비원' 부스에서 정광하·오남도 농부님을 만나서 완전히 반했거든요. 개성이 있는 멋진 작물을 보면 요리사는 흥분될 수밖에 없어요.
논산으로 버스를 타고 둘러 가서 처음으로 '진짜 농사일'을 경험해 보기도 했어요. 고구마 캐고, 깨 털고, 땅콩도 수확하고…. 그러면, 정말 모든 작물이 다 예뻐요. 못난이 농산물이라고 말이 안 나오는 거예요. 그렇게 땀을 흘리며 일하던 중 농부님께서 쉬면서 하라고 하셨는데 허리를 펴는 순간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고 저 멀리 지평선으로 노을이 지던 모습은 평생 잊지 못할 거예요.
논산에는 시간이 날 때마다 자주 방문하려고 해요. 땅에서 작물이 자라는 것을 알게 되면 각각의 작물이 지니는 맛과 향이 무엇인지 원론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어서 맛있는 상태에 대해 기준이 생겨나요. 그리고 그 특징들을 강조하거나 요리에 적절하게 활용하기도 좋고요. 거기에 마트에서 볼 법한 '표준 형태'는 필수 요소가 아니게 된 것이죠. 나아가 B급 혹은 못난이 농산물이 아니라 같은 농산물로 인지되었으면 해요. B급, 못난이라는 단어를 쓸 필요가 없는, 이미 충분히 완벽한 작물들이니까요.
[이정윤 다이닝미디어아시아 대표 julialee@diningmediaasi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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