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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 인터뷰] 美미시간대 초빙교수 김동연 前부총리에 듣는다
기사입력 2019-11-11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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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6일(현지시간) 미국 미시간대학교 한국학센터 사무실에서 퇴임 후 첫 언론 인터뷰를 하고 있다.

그는 12월 초까지 미국에 머물며 `인생 2막`과 더불어 한국 사회 변화를 위한 방법론을 고민할 계획이다.

[신헌철 특파원]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미국 미시간주 앤아버의 미시간대학교에서 만났다.

지난달부터 모교 미시간대에 초빙 석좌교수로 머물고 있는 김 전 부총리는 30년 전 석·박사 과정을 밟던 '청년 김동연'과 조우하고 있다.

깊은 성찰과 사유, 그리고 단련의 시간일 것이다.

물론 그의 시선은 여전히 한국 사회를 향하고 있다.

지난 6일(현지시간) 미시간대 한국학센터는 '유쾌한 반란'이란 제목으로 김 전 부총리 강연회를 열었다.

100여 명의 유학생들이 강연장을 떠난 후 김 전 부총리와 2시간 동안 마주 앉았다.

지난해 12월에 34년간의 공직을 끝내고 '야인(野人)'이 된 뒤 언론 인터뷰는 처음이다.

때마침 문재인정부가 임기 반환점을 돌고 있는 시점이었다.

현 정부에 대한 평가가 궁금했다.

하지만 그는 "부총리를 그만둔 지 1년도 안 됐는데 경제 상황이나 정부 정책을 이야기하는 것은 도리가 아닌 것 같다"고 손사래를 쳤다.


―퇴임 후 여러 제의가 있었지만 모두 사양한 것으로 아는데.
▷공직을 그만두고 정부나 민간의 다른 자리를 맡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해 모두 사양했습니다.

지방을 다니며 조용히 지냈습니다.

현직에 있을 때 미처 보지 못했던 현장과 사람 사는 모습을 직접 보고도 싶었고요. 미시간대 총장이 지난해 방한했을 때 저를 초청했어요. 30년 전 공부했던 모교입니다.

여기서는 특강도 하고 석학들도 만납니다.

개인적으로는 책 쓰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현 정부 경제정책의 성과와 한계는 무엇이라 생각하는지요.
▷직전 부총리로서 경제정책에 대한 평가를 하는 것은 적절치 않습니다.

현재 경제상황에 대한 평가와 정책은 현직에 있는 분들의 몫이지요. 조급하게 성과를 좇기보다 경제 패러다임의 변화를 긴 호흡으로 봐야 합니다.

특히 혁신성장은 단기 재정정책으로 성과를 내는 사업들과 차원이 다릅니다.

기업가정신, 규제혁신, 사회안전망 확보가 혁신성장 성공의 세 가지 요체입니다.

이를 통해 시장과 경제주체에 동기부여가 되고, 행태를 바꾸도록 생태계를 만들어주어야 합니다.

정부의 일관된 정책 메시지와 실천은 기본이고요.
―올해 한국이 경제성장률 2%를 달성하기도 힘들다고 전망하는데.
▷3분기까지 지표를 볼 때 금년 2% 성장은 만만하지 않습니다.

미·중 무역마찰 등으로 인한 세계경기 둔화와 수출 감소, 구조혁신과 혁신성장의 미흡 등 여러 원인을 짚어봐야 합니다.

분기별 성장률보다 추세치를 보며 정책 대안을 만드는 것이 필요합니다.

양적 성장률도 중요하지만 질 높은 성장에 역점을 둬야 합니다.


김동연 전 부총리가 지난 6일(현지시간) 미시간대에서 열린 특별강연에서 `유쾌한 반란`을 주제로 이야기하고 있다.

프레젠테이션 화면에 "털끝 하나라도 병들지 않은 것이 없다.

어찌 팔짱만 끼고 방관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정약용 선생의 글귀가 띄워져 있다.

[사진 = 신헌철 특파원]

―우리 경제·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저성장, 양극화, 일자리 부족, 저출산·고령화 등을 흔히 문제로 제기합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이 문제들을 왜 풀지 못했을까요. 현상이지 원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근본 원인을 찾아 해결해야 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문제의 본질은 국가과잉과 격차과잉입니다.


―'국가과잉'은 어떤 개념인지요.
▷권력이나 행정, 사법으로 좌지우지하는 영역이 너무 많습니다.

무슨 문제가 생기면 사회 전체가 국가가 나서라고 요구합니다.

아직도 국가 개입과 관 주도주의가 심합니다.

상대적으로 사회공동체와 시장의 영역이 협소합니다.

재정규모나 공기업 수와 같은 양적인 지표도 그렇지만 더 문제는 금지, 제한, 강제, 특정 분야 지원을 포함하는 법령과 규제입니다.

광범위한 행정과 사법행위들입니다.

게다가 정치과잉의 문제도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사적 자치와 시장을 억누르고 경쟁과 혁신을 저해하지요.
―'격차과잉'이란 용어는 생소한데.
▷우리 사회는 격차과잉 사회입니다.

시장경제에서 어느 정도의 격차는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우리의 경우는 '악성(惡性)'입니다.

공정하지 못한 경쟁,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해서 생기는 격차가 큽니다.

기여나 노력보다 큰 보상을 받거나 감수한 위험보다 큰 이익을 얻는 '초과이윤', 즉 렌트(rent)가 발생합니다.

보상의 적정성과 격차의 합리성을 잃게 됩니다.

이런 과정에서 기득권 카르텔이 만들어지고 진입장벽을 만듭니다.

경제만 그럴까요? 정치나 교육도 마찬가지입니다.

소선구제 단순대표제나 중앙집권적인 정당구조는 어떤가요. 명문대 입학생과 부모의 소득 간에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까요.
―공정한 경쟁 속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격차도 문제가 될까요.
▷큰 문제가 되는 격차과잉은 초과이윤 추구 행태에서 나오는 것이지요. 시장에서 생기는 격차는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그 정도가 심한 것 역시 문제입니다.

경제적 불평등 문제를 깊이 다룬 앵거스 디턴은 어느 정도의 불평등은 성장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지나친 격차는 역효과를 낸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해결해 가야 할까요.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국가과잉을 줄여야 합니다.

사적 자치와 시장 영역을 넓혀야 합니다.

자유와 경쟁의 확대입니다.

격차과잉 해소를 위해서는 정부의 적극적 역할이 필요합니다.

공정 경쟁과 기회의 확대를 통해 초과이윤이 나올 요소를 없애야 합니다.

동시에 사회안전망과 사람에 대한 과감한 투자가 필요합니다.

평등과 정의의 확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국가운영 철학은 시대의 산물입니다.

서구의 경우 자유방임적 시장주의, 수정자본주의, 신자본주의 모두 나름의 역사적·시대적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좀 다릅니다.

권위주의적 발전국가주의 위에 이런 철학들이 섞여 짬뽕이 됩니다.

국가와 시장의 역할에 대한 논쟁은 정략적으로 전개될 뿐 사회 의제화되지 못합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 사회에서는 보수의 가치인 자유와 경쟁, 진보의 가치인 평등과 정의가 다 부족합니다.

둘 다 신장시켜야 합니다.

어떤 가치가 맞고 틀리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에게 진정한 보수와 진보의 철학이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격차과잉 해소에는 규제개혁이 중요한 것 같은데요.
▷규제혁신은 기득권과의 싸움입니다.

이해당사자의 갈등이 필연적으로 생기고 정치가 개입하면서 힘들어집니다.

기득권을 깨기 위해서는 정부와 정치권에서 '우군(友軍)'과 싸우는 처절한 노력을 해야 합니다.

동종교배를 철저히 막아야지요. 이것을 극복하지 못하면 한 발짝도 못 나갑니다.


―이념 대립에 따른 갈등이 심각한데.
▷정치와 교육을 바꾸지 못하면 우리 경제는 희망이 없습니다.

정치가 본연의 기능인 갈등을 해결하기는커녕 오히려 조장하는 현실입니다.

혁신성장 관련법들은 정쟁으로 국회에 묶여 있고 매년 예산안은 볼모로 잡힙니다.

혁신과 사회안전망과 같은 내용은 개별 처리가 어렵습니다.

이해당사자가 있고 이념논쟁이 벌어지기 때문입니다.

경제만큼은 차라리 '경제연정'과 같은 접근을 해서 패키지로 처리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도대체 어떤 이념과 진영논리가 민생과 지속가능한 국가 발전보다 앞서겠습니까.

30년 전 석박사 과정을 밟았던 미시간대 포드 정책대학원 앞에서 김동연 전 부총리가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 = 신헌철 특파원]

우리사회 엘리트, 진정한 자기희생·실천 보여줘야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퇴임한 뒤 정치권의 러브콜은 계속 이어졌다.

경제정책에 대한 전문성과 공직에서 보여준 소신, 지독한 가난을 이겨낸 개인적 스토리까지 지닌 그에게 정치권이 눈독을 들이는 것을 탓할 수는 없다.

김 전 부총리는 현실정치 참여 가능성을 돌려 묻는 기자에게 '우문현답'을 내놨다.

대신에 공동체를 복원하기 위한 구멍뒤주 프로젝트로 '유쾌한 반란' 2막을 이어 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한국 정치에 희망의 목소리를 내는 것조차 버겁습니다만.
▷지금 같은 정치 구도에서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요. 주제넘은 말씀입니다만 사람을 바꾸는 정도가 아니라 판이 뒤집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이 썩었는데 물고기를 바꾼다고 무슨 변화가 있겠습니까. 정치판의 승자독식 구조를 바꾸고 책임정치 제도를 정착시키는 것들이 판을 바꾸는 예가 될 수 있습니다.

소선구제·단순대표제 등 선거제도부터 정당 구조 개편, 국민소환제 등입니다.

문제는 정치판의 변화는 승자들의 동의와 행동에 달려 있다는 데 있습니다.

서글픈 우리의 자화상입니다.


―구조적인 문제를 말씀하셨는데 앞으로 하시려는 일들과 관련 있는지요.
▷사회 문제를 지적하고 개혁을 이야기했습니다만, 오랜 공직생활을 한 저부터 깊은 책임감을 느낍니다.

성찰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오늘 강연 제목처럼 개인적으로 '유쾌한 반란'을 일으키는 일을 해보려 합니다.

우리 사회에 좋은 말은 넘치지만 지금 필요한 것은 작은 실천입니다.

아직 구상 중이긴 합니다만 '구멍뒤주' 사업 같은 것입니다.

퇴임 후 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우리 사회 엘리트들의 진정성 있는 자기희생과 솔선이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이게 전제되지 않으면 사회적 타협은 한 발짝도 못 나갈 겁니다.


―구멍뒤주 사업은 얼마 전 페이스북에서 말씀하셨는데 어떤 것인가요.
▷구멍뒤주는 누구든 돕고 싶은 사람은 쌀을 붓고, 누구든 필요로 하는 사람은 손을 넣어 집히는 만큼 쌀을 가져갈 수 있도록 구멍을 뚫어놓은 뒤주입니다.

누가 도움을 주고 누가 도움을 받는지 알 수도, 알 필요도 없지요. 뒤주에는 쌀이나 돈, 재능기부, 온라인 멘토링 등이 다양하게 들어갈 수 있습니다.

말이 아니라 작은 실천을 통해 더불어 사는 공동체를 회복시키는 것입니다.


■ he is…
△1957년 충북 음성 출생 △1982년 국제대 △1993년 미국 미시간대 정책학 석·박사 △1982년 행정고시 26회·입법고시 6회 △2010년 기획재정부 예산실장 △2012년 기재부 제2차관 △2013년 국무조정실장 △2015년 아주대 총장 △2017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앤아버(미국) = 신헌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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