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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포럼] 나고야에 헌납할 뻔했던 서울올림픽
기사입력 2019-09-19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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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일본의 무역마찰이 평행선이다.

우리 정부는 18일부터 수출심사 우대국인 '화이트리스트'에서 일본을 제외했다.

일본의 수출규제에 맞선 상응 조치다.

우리 국민 중 56~68%는 정부의 강경 대응에 '잘하고 있다'는 반응을 보인다.

일본 국민 64%도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한 일본 정부 조치를 지지하고 있다.

탈출구를 찾기 힘든 싸움이다.


이 싸움이 쌍방 모두에 손해라는 건 한국도 일본도 안다.

굳이 누가 더 손해인지 따지자면 한국을 꼽는 시각이 우세하다.

신용평가회사 무디스가 '세계 거시경제 전망보고서'에서 "한국에 더 부정적"이라고 진단했고 블룸버그, 파이낸셜타임스 등도 비슷하게 분석했다.

이제 시작일 뿐인데 주눅부터 들게 될 판이다.


불현듯 서울올림픽 유치를 도중에 포기하고 일본에 헌납하려 했던 흑역사가 떠오른다.

한국이 올림픽 유치 경쟁에 뛰어들기로 공식 선언한 것은 1979년 10월 8일이다.

그 보름 뒤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했다.

혼돈의 세월을 지나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유치신청서를 제출한 것이 1981년 2월이다.

일본 나고야와 경쟁하게 됐는데 곧바로 회의론이 고개를 들었다.

올림픽을 유치할 가능성이 희박하고 설혹 유치한다 해도 우리 경제력으로는 감당하기가 무리라는 시각이었다.


1981년 4월 열린 올림픽관계장관회의에서는 사실상 유치를 포기하기로 의견이 모아졌다.

명분 없이 올림픽 유치 신청을 포기하자니 국위 손상과 국민 사기 저하가 걱정됐다.

그래서 일본과 비밀 교섭을 해보자는 의견이 나왔다.

"일본이 우리에게 양보를 요청하게 하고 우리는 그 요청을 받아들이는 형식으로 퇴로를 찾자"는 제안이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회고록에 소개한 이 사연은 아이디어 차원으로 끝나지 않았다.

대한올림픽위원회 위원이 특사로 가서 일본올림픽위원회 요인에게 제안했는데 일언지하에 거절당하고 말았다.


그 후 이야기는 알고 있는 대로다.

퇴로가 막힌 한국은 정부·기업이 똘똘 뭉쳐 유치전에 온 힘을 쏟았고 그해 9월 30일 기적을 만들어냈다.

서울은 나고야를 52대27이라는 압도적 표차로 눌렀다.

이처럼 기적같이 유치한 서울올림픽은 한국을 정보통신 강국으로 발돋움시켰다.

올림픽 중계를 위해 전국에 광통신망을 깔고 해저에 통신 케이블을 구축한 결과다.

서울올림픽은 세계 역사를 바꾼 기폭제로도 거론된다.

소련, 동독, 중국 등 공산권 국민은 서울올림픽을 지켜보며 "미국 제국주의 착취를 받는 한국이 어떻게 저런 발전을 할 수 있나" 하는 의문을 품게 됐다.

그 의문과 충격은 몇 년 뒤 소련을 붕괴시키는 원인 중 하나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98년 일본 대중문화 개방에 나섰을 때도 회의적 시각은 팽배했다.

노무현정부에 이르기까지 4차에 걸쳐 단계적으로 일본 대중문화 수입을 확대했는데 그때마다 문화적 식민지가 될 것이라는 걱정이 넘쳤다.

20년이 흐른 지금 현실은 정반대다.

일본에 수출하는 한국의 음악 게임 드라마가 일본에서 수입하는 콘텐츠의 10배에 육박한다.

우리는 2012년 문화산업 흑자 국가로 변모했고, 지금은 세계 7위 콘텐츠 강국으로 우뚝 섰다.


정치 경제 외교 안보 등 어디를 둘러봐도 우울하고 짜증 나는 뉴스다.

국가 장래에 대한 걱정이 어깨를 짓누른다.

어느 경제단체장에게 "이러다가 우리 경제가 폭삭 주저앉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다행히 그의 입에서 "그러지는 않을 것"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지난 50~60년 동안 축적한 성공의 경험과 기억이 많은 덕"이라고 했다.

앞날이 어두워 보이기에 지난날의 성공 경험에서 더 많은 위로와 용기를 찾게 되는 요즈음이다.

올림픽을 포기하려던 그 문턱에서 "다시 한번 해보자"며 손을 맞잡았을 그 시절 정부·기업의 표정을 떠올려 본다.


[최경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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