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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대체하는 선전 키운다…흡수통합 속도내는 중국
기사입력 2019-08-19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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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기의 홍콩 ◆
18일 홍콩에서 열린 대규모 집회에서 한 시민이 "중국은 새로운 나치"라고 적힌 종이를 들고 행진하고 있다.

이날 민간인권전선 주도로 열린 송환법 반대 및 경찰의 강경 진압 규탄 집회에는 170만명이 운집했다.

[AFP = 연합뉴스]

170만명이 참여한 반중 시위로 홍콩이 혼란 정국에 빠졌던 18일 중국 국무원은 선전을 중국 특색 사회주의 선행 시범구로 지정하며 2050년까지 세계적인 혁신도시로 만들겠다고 전격 발표했다.

또 시위가 한창이던 지난 6일 국무원은 상하이 자유무역구 면적을 두 배로 늘려 관세 면제 등 다양한 혜택을 부여하면서 상하이를 홍콩과 같은 선진 개방형 창구로 키우겠다고 선언했다.

중국이 홍콩의 글로벌 허브 지위를 본토 도시인 선전과 상하이로 이양하면서 홍콩을 중국화하는 작업에 속도를 내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분석된다.

글로벌타임스 등은 "극단적인 시위로 홍콩의 허브 지위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선전과 상하이가 기회를 잡았다"고 보도했다.


2014년 홍콩 행정장관 직선제 요구로 촉발된 '우산혁명'과 최근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 개정 반대로 불거진 대규모 홍콩 시위는 일국양제(한 나라 두 체제)의 태생적 한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시위 형태로 발현된 홍콩의 저항에는 고도의 자치권을 보장할 것이란 중국의 약속을 더 이상 믿지 못하겠다는 불신과 궁극적으로 중국식 체제로 편입되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자리 잡고 있다.

나아가 여기에는 정치·경제적으로 중국 그늘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짙어지는 '중국화'의 현실에 대한 좌절감과 서방세계에 실태를 호소하면서 '중국화'를 지연시키고자 하는 대중국 저항 심리가 담겨 있다.


일국양제는 '하나의 국가에 서로 다른 두 체제를 인정한다'는 의미로, 덩샤오핑이 고안해낸 역사적 묘안이었다.

1982년 1월 11일 덩샤오핑은 처음으로 '하나의 국가, 두 가지 제도(一個國家 兩種制度)' 개념을 주창하면서 중국 통일의 대원칙인 '하나의 중국'과 과도기적 통일 방식인 '일국양제'를 제시했다.

1949년 신중국 성립 이후 중국은 전 왕조인 청나라 통치권 내에 있던 홍콩, 마카오, 대만 등 지역에 대한 영토 회복 구상을 하고 있었다.

통일 프로젝트의 첫 타깃은 홍콩이었다.

1984년 영국과 홍콩 반환협정을 체결할 당시 덩샤오핑은 '하나의 중국'이라는 대전제하에 홍콩이 중국식 사회주의가 아닌 자본주의 시스템을 따르더라도 무방하다는 주장을 펼치며 영국을 비롯한 서방세계와 홍콩 시민들을 안심시켰다.

또 홍콩 반환 50주년이 되는 2047년까지 홍콩에 행정·입법·사법 자치권을 부여하는 일국양제를 보장한다고 약속했다.

결국 1997년 7월 1일 중국은 홍콩을 자국 품으로 끌어안았고, 1999년에는 포르투갈 측에서 마카오를 반환받았다.

하지만 홍콩 반환 당시 둥젠화 초대 홍콩 행정수반이 장쩌민 주석에게 90도 가까운 허리 인사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홍콩 시민들은 '중국 속 홍콩' 시대가 열리는 것을 감지하며 경계심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사실 중국과 홍콩은 일국양제에 대한 상이한 시각을 가지고 있다.

중국 당국은 '일국'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반면 홍콩 시민은 '양제'에 중점을 두고 있다.

중국 당국 시각은 2017년 7월 1일 홍콩 반환 20주년 행사 당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발언에 명확히 드러나 있다.

시 주석은 당시 "일국(하나의 국가)이 근본이기 때문에 한 국가의 관점에서 양제(두 체제) 관계를 생각해야 한다"며 "홍콩은 (반환 이후) 전에 없던 자유를 누리고 있어 중앙정부 권력에 도전하는 레드라인을 넘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는 중국 테두리 안에서 홍콩에 자치와 자유를 보장한다는 의미다.

반면 홍콩은 중국과 다른 민주 가치를 지닌 체제이기 때문에 '홍콩은 홍콩인이 통치한다(港人治港)'는 인식이 강하다.

중국이 자국 공산당 이념과 통제 가치를 홍콩에 이식하려 할 때마다 홍콩에서 강한 반발이 나오는 이유다.


중국은 '하나의 중국' 원칙을 견지하면서 홍콩이 지닌 금융 혁신 허브의 장점을 본토에 이식하는 동시에 홍콩을 중국화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 작업은 저항 심리가 상대적으로 낮은 경제적 융합을 통해 서서히 홍콩 경제의 중국 의존도를 높이는 전략을 우선적으로 펼치고 있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실제 홍콩의 중국 의존도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홍콩 통계처에 따르면 홍콩의 대중국 수출입 비중은 1980년 13%에서 2017년 50%로 높아졌다.

2013년 시진핑 정권이 들어선 이후 중국은 홍콩을 본토 경제권으로 더욱 빠르게 편입하면서 홍콩의 금융 혁신 허브 지위를 상하이와 선전으로 이양하고 있다.

대표적인 전략이 광둥성 9개 도시와 홍콩·마카오를 합친 메가 경제권인 '웨강아오다완취' 개발 계획이다.

그다음 스텝으로는 대만까지 묶는 초메가 경제권 프로젝트인 '민웨타이강아오(푸젠성-광둥성-대만-홍콩-마카오)' 구상을 준비하고 있다.

이는 현재 독립 성향을 띠면서 미국 편을 들고 있는 대만마저 본토 경제권으로 끌어들이겠다는 의미다.

홍콩 반환 전후로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들은 '차이나머니'가 홍콩 경제에 침투하면서 부동산 가격이 천정부지로 뛰고 일자리가 줄어드는 부작용을 목도했다.

그 와중에 중국 당국이 일국양제라는 틀 속에서 보장한 홍콩 자치권을 넘보는 정치적 간섭을 시도하자 그동안 쌓여 있던 반중 정서가 폭발하며 대규모 시위로 발현된 것이다.


[베이징 = 김대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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