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패권에서 한미일 추월한 중국
비결은 대학에서 배출되는 두뇌들
쇠락한 美 제조업과 인재 시스템
아이비리그 영입 최선의 선택일까
‘하버드·스탠퍼드·MIT·캘텍·카네기멜런·조지아텍’
매 분기 공시되는 한국 유명 기업의 사업보고서를 보면 화려함에 놀라게 됩니다.
고위급 임원에서 절반 가까이 미국 명문대 스펙으로 화려하게 채워지고 있습니다.
국내 대표 글로벌 기업의 주요 임원 공시에서 포착되는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중국 대학에서 석사, 박사를 밟은 임원이 없거나 한두 명에 불과하다는 점이죠.
무슨 대수냐고 반문하겠지만 요즘 중국의 기술 혁신 성과를 보면 한국 주요 기업의 임원 스펙 구성에 왜 중국 석박사 출신이 없는지를 묻는 건 주주로서 온당한 질문이 될 것 같습니다.
어쩌면 이미 때를 놓친 우문이 될 수 있습니다.
지난 수십 년간 한국 기업들의 성장 공식이었던 빠른 추격자 전략은 더 이상 먹히지 않고 있습니다.
중국은 이미 주요 첨단 산업에서 슈퍼 패스트 팔로워로 한국을 제쳤고, 이제는 한국이 중국을 상대로 빠른 추격자 전략을 써야 할 판입니다.
그간 경외했던 미국 경제의 혁신은 트럼프 관세전쟁을 계기로 초라한 민낯이 드러났습니다.
쇠락한 제조업입니다.
미국을 대표하는 애플은 중국과 인도에서 아이폰을 만들고 있습니다.
트럼프가 관세율을 높여도 애플은 미국에서 아이폰을 만들 인력도, 지도할 고숙련 인재풀도 마땅치 않습니다.
전후방 부품 생태계가 뒷받침되어야 하는 우주산업에서 아웃라이어가 된 스페이스X의 성공 이면에는 주요 부품을 자급자족는 3D 프린팅 기술이 터 잡고 있습니다.
쇠락한 미국 고부가 제조업 생태계에서 스페이스X는 일론 머스크의 캐릭터처럼 ‘고립된 섬’과 같습니다.
미국이 압도적 기술 우위를 자랑하는 방위산업도 격변을 맞고 있습니다.
포린폴리시 등 미 외교 전문 매체에 최근 게재되는 분석글을 보면 “군함과 쇄빙선 본체 제조는 한국, 일본, 핀란드 같은 나라에 미련 없이 맡기고 미국은 그 본체에 붙이는 레이더와 미사일 등 고부가 사양에서 공급망 역량을 키우자”는 자조 섞인 제언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딥시크 쇼크’에서 세계가 목격한 것처럼 최근 세계적 기술 돌파구 사례는 중국 현지에서, 그리고 미국 유학을 하지 않은 토종 연구진에 의해 달성되고 있습니다.
기초연구는 물론 시장에서도 이미 전기차와 스마트폰 하드웨어를 중국 기업인 BYD와 화웨이가 장악했습니다.
중국 기업의 놀라운 혁신 속도는 그저 대륙의 실수가 아니라 중국 대학에서 길러지는 최고 수준의 인재들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습니다.
이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섬뜩한 사례가 있어 소개합니다.
최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보도를 보면 중국 차세대 전투기인 J-20 스텔스 전투기를 강력한 무기로 만든 비결이 탁월한 ‘레이더 탐지 능력’이고 그 이면에 ‘실리콘 카바이드(SiC) 반도체’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SCMP는 지난 20년 간 산둥대에서 SiC 연구에 천착한 쉬샹강 교수(Xiangang Xu·59) 덕분에 J-20이 최고의 눈을 갖게 됐다고 조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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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J-20 스텔스 전투기. <신화통신 연합뉴스> |
이 SiC 반도체 혁신 덕분에 레이더 탐지 범위가 종전의 3배로 올랐는데 산둥대가 이 같은 성과를 이례적으로 공개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됐습니다.
눈치 빠른 독자는 왜 갑자기 이 시점에서 중국 차세대 전투기가 거론되는지 짐작할 것입니다.
얼마 전 파키스탄과 인도 공군 간 제공권 다툼에서 중국산 전투기를 쓴 파키스탄 공군이 라팔 전투기 기반의 인도 공군을 제압했기 때문입니다.
중국 공군의 탁월한 전투 역량이 파키스탄-인도 공군 충돌에서 입증되자 딥시크 쇼크로 저장대(딥시크 CEO 량원펑의 모교)가 부상한 것처럼 산둥대도 쉬샹강 교수와 연구자들이 이바지한 레이더 향상의 게임체인저 기술을 홍보한 것으로 보입니다.
1965년생으로 산둥성 출신인 쉬샹강 교수는 1992년 반도체 재료 관련 응축 물질 연구로 이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2005년 산둥성 10대 우수 청년상, 2014년 산둥성 기술 발명 1등 상 등을 수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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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둥대 쉬샹강 교수 <이미지=잔기전자공학자협회·IEEE> |
산둥대는 지난 5월 30일 게시한 글에서“중국 레이더의 탐지 범위를 향상하고 미사일의 정확도를 높이며 레이저 무기의 위력을 높여 방위 기술에 없어서는 안 될 ‘하드코어 방패’가 될 것”이라고 썼습니다.
실리콘과 탄소의 화합물인 실리콘 카바이드는 고온을 견디며 고전력 장치에 최적화한 반도체 소재입니다.
쉬샹강 교수 연구팀의 특허가 중국 기업들에 이전돼 첨단 전투기와 유도 미사일, 대형 군함 등에 적용되는 레이더 시스템의 현저한 도약이 가능했다는 게 산둥대 발표 내용이자 SCMP 보도의 골자입니다.
SiC를 포함한 화합물 반도체 사업은 최근 2~3년 사이 한국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미래 먹거리 사업으로 도전하는 분야입니다.
삼성전자 사업보고서를 보면 이 사업을 이끄는
CSS사업팀장(부사장) 재직 기간이 22개월, 또 다른 사업 담당 임원(상무)은 12개월에 불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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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임원 스펙 중 일부 발췌 <자료=전자공시시스템> |
SK도 2022년 실리콘 카바이드 전력반도체 기업 한 곳을 인수하는 방식으로 이 분야에서 새 도전을 시작했습니다.
20년을 이 분야 연구에 천착하며 관련 특허를 쏟아낸 산둥대 신반도체연구소와 비교해 한국의 대표 기업들이 효과적으로 이 분야에서 선도적 기술 리더십을 확보할 수 있을지 물음표가 형성됩니다.
산둥대 발표와 SCMP 보도를 우리가 주목해야 할 이유는 이렇듯 한국의 반도체 리더십이 현 주력 분야는 고사하고 미래 분야 마저 동일 출발선에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지난 3월 미국 애플의 팀 쿡 CEO는 저장대를 깜짝 방문하고 60억원을 기부했습니다.
세계 최강 하드웨어 기업인 애플은 지난 10년 간 저장대에 100억원을 지원하며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혁신대회를 운영했습니다.
자사 품질에 대한 절대적 자신감을 가진 미국 최고 기업이 10년 전부터 저장대와 교류를 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어쩌면 ‘하버드·스탠퍼드·MIT·캘텍·카네기멜론·조지아텍’으로 채워진 한국 대표 기업의 임원 스펙이 ‘베이징·칭화·난징·푸단·저장·산둥’으로 바뀔 때 미래 혁신과 생존을 도모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공포마저 듭니다.
대학 인재는 그 나라의 산업 발전 수요에 맞춰 공급의 양과 질이 달라집니다.
어쩌면 미국 아이비리그 출신보다 중국 로컬 공대 석박사들에게 장학금과 입사 제안 메일을 대량 발송하는 S급 인재를 얻는 현명한 선택이 될 수 있습니다.
아이비리그 출신보다 높은 보수와 혹은 백지수표까지 제안할 수 있는 절박함으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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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중국 저장대를 찾아 학생들과 기념 촬영을 하는 팀 쿡 애플 CEO. <이미지 캡처=저장성 매체 차오신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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