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동해안 일대 화력발전
송전선로 지연에 8기 멈춰
산업정책 이념화하는 정치
인프라 투자 막는 행동주의
K-밸류업 너머 ‘진짜 공포’
2017년 기자는 한국과 일본 화력발전소의 대조적 상황을 보도했다.
1967년 터빈이 돌기 시작한 요코하마 이소고 화력발전소는 2000년대 들어 대대적으로 업그레이드돼 지역 전력 사용량의 30%를 책임지고 있었다.
주민과 시민단체 반발 없이 기업은 친환경 발전 기술을 고도화했다.
그해 한국 포스코에너지가 삼척에 짓던 화력발전소는 이소고보다 탁월한 친환경 기술과 설계가 적용됐다.
그런데 새로 들어선 정부의 에너지 정책 전환으로 사업이 좌초될 위기에 몰렸고 우여곡절 끝에 인허가를 얻어 2024년 1월 상업 가동이 시작됐다.
시련은 이어졌다.
생산한 전력을 수도권에 보내 수익을 내야 하는데 필수 시설인 송전선로를 한전이 제때 구축하지 못했다.
천신만고 끝에 돌았던 터빈은 다시 멈췄다.
작년 상반기 강릉에코파워, 삼척블루파워 등 동해안 일대 여러 화력발전소에서 총 8기가 이렇게 정지됐다.
8기의 발전 총량은
삼성전자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전력 수요를 댈 수 있는 막대한 규모다.
2019년까지 송전선로를 세운다던 한전의 약속은 하세월이다.
투자자 입장에선 한국보다 70여 년을 무탈하게 커온 이소고 발전 주식을 사는 게 합리적이다.
업력이 10년 안팎에 불과한데 온갖 외풍에 시달린 한국 동해안 일대 발전사들의 주식을 사는 건 수익률을 넘어 심신 건강에 해롭다.
각종 돌발 악재에 지친 기투자자는 뒤도 안 볼 것이다.
지난달에는 충남 태안화력발전소 전기를 아산·탕정 산업단지로 보내는 44.6㎞ 송전선로가 완성됐다.
2003년 첫 삽을 뜨고 완공까지 걸린 시간이 22년이다.
동해안 송전선로가 이 암울한 전철을 밟고 있다.
60여 년 전 한국 경제가 428㎞의 경부고속도로를 놓는 데 들인 시간은 2년5개월이었다.
국장 투자가 걱정되는 이유는 밸류업 너머에 진짜 공포가 보이기 때문이다.
송전선로 하나 짓는 데 22년이 걸리는 나라에서 기업은 정상 순환할 수 없다.
산업 정책을 이념화하는 정치와 사회기반시설을 무조건 반대하는 시민단체 행동주의 환경에서 자본과 기술, 노동력을 투입해 부가가치를 키우는 건 불가능하다.
지금 한국 경제가 이렇다.
[이재철 글로벌경제부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