뽕나무로 화투 카드 만들던 닌텐도
‘고객 기쁨’ 우선해 자기파괴 반복
‘제로클릭’ AI 검색 도전하는 구글
‘탈(脫) 스마트폰’ 고민하는 삼성 등
자기파괴 운명 기업에 닌텐도 교훈
“소니와 마이크로소프트가 가장 강력한 콘솔을 만드는 데 집중하는 동안 닌텐도는 충성도 높은 팬들을 즐겁게 하고 새로운 팬을 끌어들이기 위해 새 길을 선택해왔다.
”
올해 초 프랑스 소재 기업자문 회사인 ‘스팀(stim)’은 닌텐도의 혁신 노력을 이렇게 극찬했습니다.
혁신의 목적을 ‘팬에게 진짜 즐거움을 주는 것’으로 설정하면서 기업이 가장 두려워하는 ‘자기파괴’적 혁신에 성공해왔다는 것입니다.
최근 쏟아지는 닌텐도 ‘스위치2’ 관련 뉴스를 보면 스팀의 평가는 과장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스위치2’는 닌텐도가 다음 달 5일 정식 출시하는 차세대 콘솔인데 업계 1위인 소니를 긴장시키고 있습니다.
일본 내 정가가 4만9980엔(약 48만원)인데 출시 전부터 일본 온라인 쇼핑몰에서는 10만엔(96만원)이 넘는 고가에 거래되고 있습니다.
출시 전 추첨 방식으로 판매된 당첨권이 중고 시장에서 높은 프리미엄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죠.
한국에서는 스위치2에 들어가는 메인 칩을
삼성전자 파운드리 공정으로 제작한다는 외신 보도가 나오면서 닌텐도라는 이름이 덩달아 화제를 모았습니다.
스팀은 태평양 건너편에 있는 일본 닌텐도를 미국의 애플 이상의 파괴적 혁신 기업으로 평가합니다.
1889년 교토에서 설립된 닌텐도는 뽕나무 껍질에 수작업으로 그림을 그려 만든 게임 카드가 사업 시초였습니다.
바로 ‘화투(花鬪·일본명 하나후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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닌텐도 사업의 시초인 화투 이미지. 뽕나무 껍질에 수작업으로 그림을 입히는 방식으로 제작됐다. <이미지=닌텐도> |
최초 수작업을 대량생산 공정으로 바꿔 급성장했지만 1970년대 접어들어 닌텐도 경영진은 새로운 먹거리를 발굴해야 한다고 각성했습니다.
그 돌파구가 전자 게임이었습니다.
수많은 도전과 실패 속 1981년 미‘동키콩’이 게임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초대형 히트작이 됐습니다.
4년 뒤에는 또 다른 히트작 ‘슈퍼마리오’가 완성됐습니다.
닌텐도의 혁신은 소프트웨어(콘텐츠)와 하드웨어 양면에서 균형을 이뤘습니다.
기존의 조이스틱을 대체하는 납작한 십자형 방향의 물리 버튼을 적용하면서 주머니 속에 게임기가 쏙 들어가는 시대를 열었습니다.
스팀은 “처음에는 사소해 보일 수 있는 디자인이었지만 곧 많은 컨트롤러의 업계 표준이 됐다”고 당시 혁신성을 평가합니다.
시장 경쟁 심화로 질 낮은 제품에 소비자 관심이 떨어졌을 때 업계를 구한 것도 닌텐도였습니다.
1985년 닌텐도 8비트 게임기인 패밀리컴퓨터(미국명 NES)와 여기에 탑재된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가 폭발적으로 인기를 끌었고, 이는 미국 아타리로 대표되던 세계 비디오 게임 시장의 패권이 일본으로 넘어오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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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게임시장의 판도를 미국에서 일본으로 뒤바꾼 1985년 닌텐도의 패밀리컴퓨터 |
스팀은 “터치스크린과 와이파이(Wi-Fi) 연결 기능을 갖춘 닌텐도 DS, 그리고 Wii와 모션 컨트롤러는 모든 연령대의 사람들, 심지어 노인과 같이 과거에 비디오 게임을 즐기지 않았던 사람들도 비디오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세상으로 안내했다”고 닌텐도의 끊임없는 혁신 노력을 평가합니다.
미국의 애플과 일본의 닌텐도는 모두 뛰어난 품질과 즐거움으로 가득 찬 요소를 제품에 녹여 소비자에게 제공하고 심지어 아름다운 디자인까지 갖췄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런데 닌텐도는 애플도 따라가지 못하는 차별적 우위를 가지고 있다고 스팀은 강조합니다.
늘 기존의 틀에 도전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이를 적극 지원하는 강력한 기업문화가 작동한다는 것이죠.
스팀은 “소니와 마이크로소프트가 가장 강력한 콘솔을 만드는 데 집중하는 동안 닌텐도는 충성도 높은 팬들을 즐겁게 하고 새로운 팬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다시 한번 새 길을 선택하고 있다”며 “대담하고 기발한 콘셉트로 완전히 실패하거나 혹은 성공할 수 있는 획기적인 게임을 내놓는 기업이 바로 닌텐도”라고 분석합니다.
시장 경쟁 환경에서 철옹성 같은 독점력을 가졌던 기업들이 최근 들어 무장해제되고 있습니다.
그만큼 경쟁 기업의 혁신 속도가 빠르고 소셜미디어를 통해 소비자는 더 나은 제품과 서비스 정보를 검색하며 선택지를 바꿉니다.
2006년 ‘인터넷을 검색하다’라는 신조어인 ‘구글’(google)을 유명 영어사전에 등재시킨 구글은 스스로 웹 검색시장 지배력을 해체하고 ‘제로 클릭’으로 불리는 AI 검색시장에서 다시 리더십을 쌓아야 하는 자기파괴적 여정에 올라 있습니다.
저무는 스마트폰 황금기 속 한국의
삼성전자 역시 핵심 사업인 스마트폰을 어떤 디바이스로 대신해야 할지 자기파괴적 운명에 몸부림치고 있습니다.
새로운 대안 없이 혁신 경쟁에서 밀리는 수동적 파괴로 소멸할지, 아니면 자기주도적 파괴로 의외의 혁신을 거둘지, 혹은 과거 그랬던 것처럼 혁신 개척자의 성공을 죽기 살기로 모방하고 베끼는 현상유지형 추격을 답습할지 두려워하는 기업들에 100여년 전 뽕나무 껍질에 그림을 그려넣던 일본 교토의 한 회사가 분명한 생존 지침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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닌텐도 슈퍼마리오 캐릭터. <이미지=닌텐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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