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격 조작해 대규모 정전 가능”...중국산 태양광 우려 유럽서 ‘스멀스멀’

태양광 패널등 부품 넘쳐나는 유럽
최근 스페인·포르투갈 정전으로 우려 증폭
전문가 “인버터로 원격 접근 가능
사이버 공격·공급망 차단땐 피해 막대”

지난달 스페인 전역에서 정전이 발생한 가운데 바르셀로나의 한 슈퍼마켓 안에서 시민들이 휴대전화 불빛에 의지해 식료품을 찾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다음주 대선을 앞두고 한국에서 대선주자간 에너지 논쟁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지구 반대편 유럽에서는 최근 대규모 정전 사태를 계기로 부품 대부분을 중국에 의존중인 문제가 도마위에 오르고 있다.


지난달말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 발생한 정전사태의 원인은 아직도 조사 중이지만, 해당 사태가 사이버 보안의 취약성을 드러냈다는 점은 분명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린 에너지로의 전환과 함께 디지털화가 진행되면서 원격 조작을 통한 공격에 노출될 위험도 커졌기 때문이다.


오슬로 소재 에너지 리서치 회사 ‘리스타드 에너지’의 태양광 부문 마리우스 바케 부사장은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에 “중국산 태양광 부품 공급망이 세계적으로 차질을 빚을 경우, 에너지 안보가 위협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항상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중국산 인버터를 통해 유럽 전력 인프라에 원격 접근이 가능하다면, 사이버 공격 시 유럽 전력망에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인버터는 태양광 패널에서 생산된 전기를 변환해 전력망에 공급하는 장치로, 흔히 태양광 패널의 ‘두뇌’로 불린다.

대부분 원격으로 작동되도록 설계되어 있어 사이버 공격에 특히 취약한 부품이다.


유럽에서는 중국 통신장비 대기업 화웨이 등이 제조한 태양광 패널등 부품이 넘쳐나고 있다.

현재 유럽에서 사용되는 인버터의 약 3분의 1이 화웨이 제품으로 알려져 있다.


바케 부사장은 EU 회원국들도 리투아니아의 사례를 참고해 100kW 이상 발전하는 태양광·풍력 발전소의 인버터에 대한 원격 접속을 제한하는 법률을 제정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리투아니아는 이미 지난해 해당 관련법을 통과시킨 바 있다.


업계 로비 단체인 ‘솔라파워 유럽’ 역시 EU에 인버터 접근 제한을 권고 했으며, 더불어 수입된 태양광 발전 시스템의 보안 강화도 촉구하고 있다.


솔라파워 유럽은 최근 보고서에서 “시뮬레이션 결과 3GW(기가와트) 규모의 인버터가 표적 공격을 당할 경우 유럽 전력망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유럽 내외의 여러 업체들이 이보다 훨씬 큰 규모의 인버터를 운용하고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현재 EU에서는 다수의 화웨이 임원들이 EU의원과의 부패 연루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으며, 일부는 기소된 상태다.

유럽연합(EU)집행위원회는 지난달 28일, 화웨이와 연계된 단체들과의 회의를 제한하겠다고 밝힌 뒤 화웨이를 솔라파워 유럽에서 퇴출시켰다.


닛케이에 따르면 화웨이는 유럽내 역할에 대해 언급하길 거부하고 있다.


한편, 솔라파워 유럽에 따르면 태양광은 현재 유럽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에너지원이다.

2024년 새로 설치된 발전 용량은 다른 모든 에너지 기술을 합친 것보다 많았다.

EU는 2030년까지 600GW의 태양광 발전 용량 확보를 목표로 한다.

미국 에너지부에 따르면 1GW는 LED 전구 1억 개를 밝힐 수 있는 전력이다.


하지만 국제에너지기구(IEA)는 태양광 부품 생산이 아시아, 특히 중국에 과도하게 집중되어 있다는 점을 경고한다.

중국은 전 세계 태양광 시장의 80%를 차지하고 있으며, 일부 부품은 95% 이상을 장악하고 있다.


중국은 원료 채굴·정제부터 웨이퍼, 셀, 모듈 생산까지 전 과정의 공급망을 통제하고 있다.


IEA ‘재생에너지 2024’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은 내수뿐 아니라 해외 수요를 초과하는 공급을 지속하면서 글로벌 태양광 가격 하락을 주도하고 있다.

중국 정부의 막대한 보조금과 산업 투자로 지난 10년간 태양광 패널 가격은 80% 하락했고, 전 세계 태양광 발전이 급성장했다.


유럽 입장에서 중국 의존을 완전히 끊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과제다.

프랑스 싱크탱크 IFRI의 다이애나 게라심 유럽 에너지·기후 정책 국장은 “한 국가에 대한 의존이나 경제적 강요를 피하기 위한 복원력 확보가 목표이지, 자급자족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프랑스 동부에 태양광 셀 및 모듈 기가팩토리를 건설 중인 스타트업 홀로솔리스 뱅상 델포르트 대외협력 총괄은 “유럽 생산을 촉진할 정책적 조치와 시장 규제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경제·정치 측면 외에도 EU는 윤리적 책임 차원에서 강제노동 연루 수입품 금지 법안을 지난해 도입했다.

이는 반도체에도 쓰이는 폴리실리콘이 신장 지역에서 광범위하게 채굴·정제된다는 점에서 태양광 공급망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유럽태양광제조협의회(ESMC) 옌스 홀름 정책국장은 “녹색 전환이 인권을 희생시켜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 의존도를 끊고 생산을 유럽으로 되찾아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며 “EU는 미국의 ‘위구르 강제노동방지법(UFLPA)’처럼 더욱 강력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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