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애로 해결서 전향적 움직임
바이든 ‘AI칩 국가등급제’ 없애고
일본제철 ‘US스틸 인수’ 전격 승인
기업들에 ‘탈규제 신호’ 선명 노출
日, 인수가 맞먹는 140억달러 투자
‘美 제조업 부흥’ 트럼프 욕구 충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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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P 연합뉴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임 바이든 행정부에서 막았던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를 전격 승인했습니다.
그는 최근 바이든 행정부의 엔비디아 AI칩 수출 규제도 대폭 완화하는 등 관세 전쟁과 외교 부문에서 막무가내·떼법으로 일관하는 모습과 달리 기업들의 민원 요구에 대해서는 전향적인 탈규제 행보를 보여 눈길을 끕니다.
트럼프는 23일(현지시간)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올린 글에서 “많은 고려와 협상 끝에 US스틸은 미국에 남을 것이며 위대한 피츠버그시에 본사를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는 “이건 US스틸과 일본제철 간에 계획된 파트너십이 될 것이며 일자리 최소 7만개를 창출하고 미국 경제에 140억달러를 추가할 것이다.
이건 펜실베이니아주 역사상 최대 투자”라고 자랑합니다.
오는 30일 피츠버그에 있는 US스틸에서 대규모 유세도 개최할 것임을 예고했습니다.
자신의 인수 승인 결정을 ‘미국 제조업을 위대하게’라는 정책 성과로 한껏 홍보하려는 움직임입니다.
트럼프의 인수 승인 소식이 확인되자 일본 매체들은 일제히 관련 뉴스를 비중 있게 보도하고 있습니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트럼프 대통령의 인수 승인 메시지와 별개로 자체 취재를 통해 익명의 백악관 인사들로부터 인수 절차가 승인됐음을 확인했다고 전했습니다.
그간 일본제철은 US스틸을 인수하려고 했고 기업 간에는 합의가 됐으나 전임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 미국 철강사가 외국에 넘어가면 국가 안보에 위험이 될 수 있다는 이유로 거래를 불허했죠.
작년 11월 미 대선에서 승리한 트럼프 역시 줄곧 인수 불가 입장을 고집했는데 반년 만에 전향적인 승인 입장으로 돌아선 것입니다.
앞서 트럼프 는 바이든 행정부가 지난 1월 발동한 엔비디아 AI칩의 국가별 등급 규제를 최근 전격 폐지해 시선을 끌었습니다.
국가별 등급제는 미국의 핵심 동맹국들에는 엔비디아 칩 공급 물량을 제한하지 않지만 나머지 일반 국가 그룹에 쿼터제 방식의 물량 제한이 가능하도록 설정하고 있습니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이 등급제의 부당함을 호소해왔고 트럼프 대통령은 반도체 수출통제가 대중국 첨단기술 견제를 위한 핵심 메커니즘임에도 이 제도에서 화끈하게 기업 손을 들어준 것이죠.
이는 상호관세를 통한 ‘세수 확대’와 더불어 ‘감세’와 ‘탈규제’로 미국 경제를 부흥하겠다는 트럼프 행정부의 3대 거시 경제 정책 기조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관세전쟁에서 시장에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지만 기업들에 브레이크 없는 탈규제 노선을 확인시켜 투자를 독려하겠다는 게 트럼프 행정부의 전략입니다.
그 선명한 사례로 트럼프 2기 출범 후 엔비디아 칩 수출 통제 완화와 더불어 일본제철과 정부에 ‘미션 임파서블’로 여겨졌던 US스틸 인수 불가 결정을 승인으로 바꿔준 것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마음을 바꾸기 위해 그간 일본제철과 이시바 시게루 정부는 주도면밀한 설득 전략을 펼쳤습니다.
일본제철은 지난해 바이든 정부에서 인수 불허 결정이 나고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 가능성이 커지자 트럼프 1기에서 국무장관으로 활약한 마이크 폼페이오를 영입했습니다.
작년 9월 취임한 이시바 시게루 총리도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가 양국 철강 산업에 모두 이익이 되는 것임을 강조하며 세일즈 외교에 나섰습니다.
일본 정부는 트럼프 행정부를 상대로 한 설득 작업에서 미국의 통점이자 일본의 강점인 ‘조선업 협력’ 이슈를 철강 산업 협력으로 연결해 회유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아울러 일본 매체 보도에 따르면 일본제철은 막판 트럼프 대통령의 인수 승인을 끌어내기 위해 140억 달러(약 20조원)를 투자하겠다고 제안했습니다.
이는 최근 58억 달러가 투자될
현대차그룹의 미국 루이지애나 제철소 프로젝트 대비 2.5배에 이르는 규모입니다.
쇠락하는 미국 제조업의 단면을 보여주는 US스틸은 세계 철강시장에서 27위(조강 생산량 기준)로 떨어진 업체입니다.
이 업체를 인수하기 위해 일본제철은 149억달러를 베팅했습니다.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인수가액과 맞먹는 금액을 대미 투자금액으로 트럼프에게 던진 것이죠.
트럼프는 세계 교역국을 상대로 상호관세를 발표한 뒤 이를 90일간 유예하면서도 2월 발동한 철강·알루미늄 신규 관세 25%는 번복하지 않고 시행 중입니다.
미국 제조업을 다시 살리기 위해 관세를 활용하는 것이라는 트럼프의 주장을 일본제철이 140억 투자로 떠받쳐주며 승인 결정을 끌어낸 것입니다.
트럼프 당선 후 US스틸 최고경영자인 데이빗 버릿은 영리하게 중국을 끌어들여 트럼프를 설득했습니다.
버릿 CEO는 뉴욕타임스(NYT)에 게재한 ‘이 딜이 깨지기를 중국이 원하고 있다’는 게스트 에세이에서 “중국의 경쟁자들이 이 거래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으며, 실패하기를 바라고 있다.
이 거래로 인해 우리 근로자들의 일자리가 더 안전해지고 중국의 글로벌 철강 생산 지배력이 약화될 것”이라고 전향적 결단을 촉구했습니다.
오는 30일 피츠버그에서 트럼프가 참여하는 US스틸 집회 아이디어를 제안한 곳 역시 백악관이 아닌 일본제철일 것입니다.
트럼프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US스틸과 일본제철 경영진, 그리고 일본 정부가 얼마나 전략적으로 움직였는지를 보여주는 장면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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