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강력히 추진하는 감세정책으로 재정적자 확대 우려가 확산되자 미국을 대표하는 안전자산인 미국 국채가 추락했다.
신용평가사 무디스가 재정적자 확대를 이유로 미국 국가 신용등급을 강등한 뒤 처음으로 실시된 국채경매는 수요 부진으로 흥행에 실패했다.
시장에서는 당분간 국채금리 상승 압박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21일(현지시간) 미 재무부가 실시한 160억달러 규모 20년 만기 국채경매는 금리 5.047%에 낙찰됐다.
이는 지난 6개월 평균 낙찰 금리인 4.613%보다 무려 0.434%포인트 높고, 2023년 10월 이후로는 가장 고점이다.
이날 국채경매 응찰률은 2.46배로, 직전 6회 평균 응찰률(2.57배)에 못 미쳤다.
그만큼 시장에서 국채경매에 대한 수요가 감소했음을 뜻한다.
20년물은 다른 국채에 비해 상대적으로 시장에서 크게 주목받지는 않지만 이날 경매 결과는 국채시장에 직격탄을 날렸다.
감세발 재정적자 확대 우려에 미국 경제 신뢰도의 척도인 국채금리가 장기물 중심으로 동반 급등한 것이다.
미 30년물 국채금리는 이날 0.125%포인트 급등한 5.094%를 나타냈다.
장중 한때 5.1% 선에 육박하며 2023년 11월 초 이후 1년6개월여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글로벌 채권금리의 벤치마크인 미 10년물 국채금리도 0.112%포인트 뛰어오른 4.598%에 마감했다.
미 국채금리 급등은 미국은 물론 전 세계 금융시장에 큰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
특히 10년물 국채금리는 주택담보대출부터 기업 대출까지 모든 차입비용의 기준이 돼 매우 민감한 지표다.
증시 변동성도 확대된다.
국채금리가 치솟자 투자심리가 위축되면서 이날 뉴욕증시에서 3대 주요 지수가 1%대로 하락 마감했다.
이날 국채경매에서 수요를 끌어내린 요인은 트럼프 대통령이 감세 법안 통과를 위해 공화당 강경파를 압박하고 법안이 가결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재정적자 확대 우려를 키운 게 주효했다는 분석이다.
미 의회 합동조세위원회(KCT)는 메가 법안 초안을 분석한 결과 법안 통과 시 향후 10년간 연방정부 재정적자를 2조5000억달러(약 3440조원) 이상 증가시킬 것이라고 추산했다.
무디스의 경고에도 오히려 트럼프 대통령이 감세정책으로 재정적자를 확대시키려 하자 시장은 철옹성 같은 미국 경제의 지위마저 의심하는 분위기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공격적인 관세정책으로 세계 무역질서를 흔들면서 기축통화인 달러와 안전자산인 미 국채의 신뢰도까지 계속 훼손된다는 관측이다.
6개국 주요 통화 대비 상대적 달러가치를 나타내는 달러 인덱스는 지난 12일 이후 대체적인 하락세를 보인 끝에 이날까지 2.2% 떨어졌다.
시장에서는 부채 문제에 대한 염려가 확인된 만큼 한동안 국채금리가 상승세를 보일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하고 있다.
공화당 주도로 트럼프 대통령의 감세안이 미 의회를 통과하면 재정적자가 악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국채시장 혼란은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영국에서도 최근 장기물 금리가 가파르게 올랐다.
영국 30년물 국채금리는 지난 21일 5.516%를 기록했다.
이는 2022년 리즈 트러스 내각 당시 대규모 감세안을 내세우다 국채시장이 발작했을 때보다 높은 수준이다.
독일도 지난 3월 추진한 경기 부양 정책 여파로 국채 투매세가 촉발되면서 국채금리가 상승하고 있다.
프리야 미스라 JP모건자산운용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채권시장이 정책 결정자들에게 재정건전성 문제를 너무 오랫동안 무시할 수 없음을 경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뉴욕 윤원섭 특파원 / 서울 김덕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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