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개명 신청에 대한 법원의 허가는 매우 인색한 편이었다.

이름은 특정한 개인을 다른 사람으로부터 식별하는 표지가 되고 이를 기초로 사회적 관계와 신뢰가 형성되는 등 고도의 사회성을 가지는 것이어서 함부로 바꿔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던 것 같다.

또한 표면상의 이유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이른바 성명철학을 이유로 개명을 신청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이를 여과 없이 받아줄 경우 법원이 미신을 조장한다는 비난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도 개명 허가를 주저케 하는 요인으로 작용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다 보니 허가를 쉽게 해준다고 소문난 법원 관내로 주소지를 옮겨 개명을 신청하는 편법도 많았다고 한다.


그런데 2005년 대법원은 이정표적인 결정을 통해 개명 허가의 구체적 기준을 제시했다(대법원 2005. 11. 16.자 2005스26 결정). 개명을 허가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인정되고, 범죄를 기도 또는 은폐하거나 법령에 따른 각종 제한을 회피하려는 불순한 의도나 목적이 개입되어 있는 등 개명신청권의 남용으로 볼 수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원칙적으로 개명을 허가하는 것이 맞는다는 것이다.


이름이란 통상 부모에 의해 일방적으로 결정되고 그 과정에서 본인의 의사가 개입될 여지가 없어 본인이 그 이름에 대하여 불만을 가지거나 심각한 고통을 받는 경우도 있을 수 있는데, 그런 경우에도 평생 부모가 지어준 이름을 가지고 살아갈 것을 강요하는 것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이름이 바뀐다고 해도 주민등록번호는 변경되지 않고 종전 그대로 유지되므로 개인에 대한 혼동으로 인해 초래되는 법률관계의 불안정은 생각만큼 크지 않다.

대규모 기업과 같은 상사 법인의 경우도 자유롭게 상호를 변경할 수 있는데 개인에 대해서만 엄격하게 개명을 제한하는 것은 균형이 맞지 않다.

개명으로 인해 사회적 폐단이나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만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개명을 엄격하게 제한할 경우 헌법상 개인의 인격권과 행복추구권을 침해하는 결과가 될 수도 있다.

적어도 한 번은 자신이 원하고 불리고 싶은 이름으로 바꿀 수 있는 권리와 기회를 인정하는 것이 옳다.


위 대법원 결정 이후 개명 신청 건수와 법원의 허가율 모두 비약적으로 상승한 것으로 보인다.

필자는 서울 중구 등 6개 관할 구(개명은 주소지를 관할하는 법원에 신청해야 한다)의 개명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데, 한 달에만 500건이 넘는 많은 사건이 접수되고 있다.

개명신청서에서 성명철학에 관한 사유를 거리낌 없이 내세우고 철학관이나 작명소에서 받아온 사주풀이까지 소명자료로 제출하는 것을 보면서 시대의 변화를 피부로 느끼곤 한다.


그러나 모든 권리행사에는 내재적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이름이 갖는 사회적 의미와 공공적 측면도 결코 무시돼서는 안 된다.

개명 신청은 반드시 진지한 고민과 심사숙고를 거친 이후에 해야만 한다.

법원의 허가를 받아 이름을 바꾼 지 채 1년도 지나지 않아 다시 개명을 신청하거나 세 번, 네 번 계속 개명을 신청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시험에 떨어질 때마다, 사업에 실패할 때마다, 혹시나 하는 기대로 요행을 바라며 매번 이름을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예전에 '내 이름은 김삼순'이란 드라마가 있었다.

극중 주인공인 김삼순은 촌스러운 이름이 싫어 법원으로부터 어렵게 개명 허가를 받지만, 고민 끝에 마지막 순간 신고를 포기하고(법원의 허가를 받은 날부터 1개월 이내에 신고를 하지 않으면 허가는 실효된다) 원래 이름으로 살아가기로 결심한다.

이름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본인의 의지와 노력이 아닐까 싶다.

모두가 자신의 이름에 자긍심을 갖고 살아가기를 바란다.


[김인겸 서울가정법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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