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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술의 장수들도 흠모한 손책의 '큰 그릇'
기사입력 2021-06-25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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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견이 전사한 후 손책은 고향을 떠나 어머니를 모시고 정착지를 찾아다녔다.

다만 아버지를 잃은 불우한 소년이 갈 곳이 없어 구걸하듯 떠돌아다닌 것은 아니다.

손책의 어머니 오씨 부인 집안은 강동 지방에서 이름을 날리는 명문가였다.

그 위세는 손견이 죽은 후에도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손책은 자신이 재기할 지역과 자신을 후원할 사람을 찾아다녔다.

당시 손책의 후견인이었던 원술의 무관심이 문제였다.

아버지 손견의 위상, 외가였던 오씨 집안 명망을 고려하면 손책은 충분히 키워볼 만한 인재였다.

그러나 원술은 그를 방치했다.

손책은 강동 지방을 떠나 원술의 남양 땅도 넘어서 도겸이 다스리던 서주로 북상했다.


보통 손책 같은 상황이 되면 일반인은 다음의 두 가지 중 하나를 택한다.

첫째는 아버지와 외가 영향력이 살아 있는 고향에서 보호를 받으면서 재기를 도모하는 것이다.

둘째는 후견인인 원술에게 가서 작은 직책이라도 맡으면서 기회를 보는 것이다.

비범한 인물이었던 손책은 이 두 가지 길을 모두 거부하고 스스로 길을 찾아 나섰다.

비유하자면 아버지 회사를 물려받지도 않고, 후원자가 운영하는 대기업에 취직하는 것도 마다한 채 창업을 위해 낯선 영역으로 뛰어든 셈이다.


그러나 당시 서주자사였던 도겸은 손책을 반기지 않았다.

오히려 손책을 거부했다.

서주를 호시탐탐 노리던 원술과의 관계를 의심한 탓이다.

도겸은 큰 그릇을 가진 인물이 아니었다.

조조에게 위협당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단지 ‘의심’ 때문에 훌륭한 인재였던 손책을 외면했다.

기회의 땅이라 생각했던 서주에서 뾰족한 수를 찾지 못한 손책은 다른 길을 찾아야만 했다.


손책이 방황하던 무렵 낭보가 들려왔다.

원술이 손책의 외삼촌인 오경을 단양태수로 임명한 것. 소식을 듣자마자 손책은 어머니를 모시고 단양으로 내려왔다.

외삼촌에게 의탁하면서 힘을 키웠다.

세상의 냉혹함을 배운 손책은 조용히 ‘창업’을 위한 힘을 비축하기 시작했다.



▶원술 밑에서 힘 기른 손책
▷강동 지방 제패를 향해 나아가다
194년 원술은 단양에 있던 손책을 불러 손견의 옛 부대를 맡겼다.

지휘관이 되자 손책은 당장 남다른 모습을 보였다.

원술이 “내 아들이 저래야 하는데”라고 감탄했을 정도다.

나이 많은 원술 휘하 장수들도 손책에게 존경심을 내비쳤다고 전해진다.


원술 밑에서 손책은 서서히 힘을 길러나가고 있었다.

조용히 칼을 갈고 있던 손책에게 마침내 기회가 찾아왔다.

정부 명으로 양주자사로 파견된 유요가 단양태수였던 외삼촌 오경을 쫓아냈다.

유요의 심상찮은 움직임에 원술은 손책을 본격적으로 투입했다.

거병 명분을 찾던 손책에게 더없는 찬스였다.

손책은 원술에게 추가 병력을 요청했다.

원술은 이를 허락했지만, 내려준 병사는 겨우 1000명 남짓이었다.


여기서 원술의 한계가 드러난다.

리더가 능력의 한계를 넘어서면 뚜렷하게 드러나는 징조가 있다.

시간·자산·사람 등 자원을 적시 적소에 활용하지 못한다.

기습을 감행하는데 머뭇거려 시간을 낭비한다거나 과감한 투자를 해야 할 시점에 자금은 쥐똥만큼 주고 먼저 테스트를 해보라고
한다.


원술의 대장들이 청년 손책을 흠모했다는 것도 원술의 이런 면을 간파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손책이 원소를 이을 미래의 후계자라고 내다봤다.

후계자가 손책이라면 리더 자질이 없는 원술 밑이라도 괜찮다고도 생각했다.

다들 손책이 뒤를 이을 것이라는 한 가닥 희망에 기대를 걸었지만, 원술은 그 기대마저 부응하지 못했다.


손책은 겨우 1000명의 병력을 받고도 망설임 없이 출발했다.

손책이 일어서자 강동 지방 백성들이 손책 밑으로 모여들었다.

당장 수백 명의 장정이 자원해 손책을 따라나섰다.

손견의 옛 부하들 정보, 황개, 한당 등도 다시 돌아와 손책 밑으로 들어왔다.

손책이 소년 시절 한집에서 형제처럼 지냈던 주유도 합류했다.


이들의 합류는 단순히 1명만 들어왔다는 뜻이 아니다.

당시는 봉건 사회와 유사한 구조였다.

유명한 장수들은 사병을 거느리던 시대였다.

손책에 합류한 장수들은 모두 사조직과 사병을 거느리고 참여했다.

다단계처럼 병력이 빠르게 불었다.


손책은 병력을 둘로 나눠 한 부대는 주유에게 맡겼다.

동갑내기 두 친구는 길을 나눠 진군, 유요를 격파하고 단양을 점령했다.

이 전쟁에서 손책은 ‘전사’로서의 능력을 마음껏 과시했다.

유요의 부하 태사자와 일대일 격투를 벌인 일이 대표적인 예다.

손책과 태사자 둘은 격렬하게 싸우다 나중에는 서로 붙잡고 레슬링까지 벌였다.

손책은 태사자의 투구를 빼앗았고, 태사자는 손책의 단극(짧은 창)을 빼앗았다.


이 일화로 알 수 있듯이 손책은 무예도 뛰어났다.

전술적으로 거침없이 대담하고, 성격도 호방하고 시원시원했다.

경호원도 없이 말을 타고 돌아다녔고, 무장에게 인기가 좋은 의리남이자 쾌남이었다.


유요를 격파하고 나서 손책의 명성은 강동 지방 전체로 퍼져나갔다.

명망 높은 손책 밑으로 인재가 모여들기 시작했다.

병력은 순식간에 수만 명으로 불었다.

병력이 늘어난 손책은 자신감을 얻었다.

이윽고 강동 전체를 손에 넣기 위한 준비에 본격적으로 돌입했다.


▶손책 발목 잡은 것은 ‘스펙’
▷때로는 ‘흙수저’가 훨씬 유리하다
손책의 사례를 살펴보면 ‘좋은 배경’이 반드시 긍정적으로 작용하지 않는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명문가 자제, 손견의 아들이라는 ‘스펙’은 오히려 손책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다.

유비와 비교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손책을 외면했던 도겸이 유비는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자기 병력까지 줘가면서 소패성을 할양해줬다.

유비는 원소나 손책처럼 든든한 집안 배경이나 관계 인맥이 없었다.

이 때문에 억울한 일도 많이 당하지만, 반대로 무명이었던 덕도 많이 봤다.

서주에서 행운을 잡아 도겸의 후계자가 되는 것도, 조조에게 갔을 때 예리한 조조의 판단력을 한 끗 차이로 피할 수 있었던 점도 모두 유비가 철저히 무명이고, 낮은 곳에서 성장해온 덕이었다.


우리는 배경이 든든한 사람 혹은 많은 것을 갖고 태어난 사람을 심하게 부러워한다.

그 부러움이 지나쳐 때로는 화를 불러오기도 한다.

세상이 힘없는 사람에게는 꽉 막혀 있다고 좌절하는 이유는 가진 사람의 길은 잘 닦여 있어 선명하게 잘 보이고, 유비처럼 덤불을 헤치고 올라가야 하는 사람의 길은 안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세상이 공정하고 공평하다는 말은 아니다.

세상은 언제나 불공정하고 기울어져 있다.

없는 사람이 성장하는 것은 더 고되고, 더 특별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유비의 사례처럼 길이 전혀 없지는 않다.


[임용한 한국역사고전연구소장 / 일러스트 : 정윤정]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14호 (2021.06.16~2021.06.2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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