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틀어막기에 청약 당첨자 전전긍긍…“분양 받고 날릴 판” “묻지마 청약이 문제”

전세자금대출 금지 대상에
로또분양 단지들 대거 포함

메이플자이·잠실래미안 등
올해 입주앞둔 아파트에선
잔금 못낼 집주인들 수두룩

30일부터 입주를 시작하는 서울 서초구 잠원동 ‘메이플자이’ 아파트 등 신규 단지 계약자들에게 비상이 걸렸다.

정부가 소유권 이전 조건부 전세대출 금지 대상에 기존 분양단지도 포함했기 때문이다.

사진은 서초구 잠원동 메이플 자이 입구에 입주자에게 입주를 환영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이승환 기자]

정부가 ‘소유권 이전 조건부 전세대출’ 금지 대상에 기존 분양단지를 포함하는 초강수를 둔 이유는 청약 시장을 실수요자 위주로 재편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특히 자금력이 부족한 사람들이 청약 시장에 들어와 ‘제3자의 레버리지’로 차익 내는 행위를 막겠다는 목적이다.


29일 금융당국 관계자도 “돈이 부족해 세입자 보증금으로 잔금을 내는데 이걸로도 부족해 전세대출까지 활용하는 건 문제가 있다”며 “계약금만 들고 이익을 내기 위해 청약 시장에 뛰어드는 악순환의 고리를 이젠 끊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주택 공급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계약금은 전체 주택 가격의 20%, 중도금은 60% 내에서 사업시행자가 정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계약금 10%, 중도금 60%, 잔금 30%’ 비율로 나눠 내는 경우가 많다.


30일부터 입주를 시작하는 서울 서초구 잠원동 ‘메이플자이’ 아파트 등 신규 단지 계약자들에게 비상이 걸렸다.

정부가 소유권 이전 조건부 전세대출 금지 대상에 기존 분양단지도 포함했기 때문이다.

사진은 이날 서울 서초구 메이플자이 아파트 앞으로 철조망 모습. [이승환 기자]

실제로 일부 청약 대기자 가운데 계약금과 중도금 일부만 가지고 분양 시장에 뛰어드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어 서울 서초구 잠원동 ‘메이플자이’ 아파트의 전용면적 84㎡ 분양가격은 약 24억원이다.

분양 당시 같은 평형 전세 시세는 16억원 선이었다.

자기 자본이 8억원가량(계약금+중도금 일부)만 있으면 청약에 도전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이러한 구조를 활용해 당시 기준으로 20억원에 달한다는 시세 차익을 내기 위해 청약 대기자들이 엄청나게 몰렸다.


수분양자들 대부분 청약 당첨과 계약금 납입 후 자금조달 계획서를 작성한다.

계약자 중 일부는 계획서를 작성하며 세입자 보증금으로 잔금을 치르겠다는 계획을 낸다.

하지만 정부의 ‘기습 대출 규제’에 1~2년 전 세웠던 자금조달 계획은 무용지물이 됐다.


올해 서울 대단지 아파트 입주를 앞둔 한 수분양자는 “2년 전 분양 시점엔 정부가 소유권 이전 전세대출을 금지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도 못 했다”며 “이번 대출 규제로 분양 잔금을 내지 못하면 정부가 책임져줄 것도 아니지 않느냐”며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올 하반기엔 메이플자이 외에도 강남 3구(서초·강남·송파구)와 용산 일대에 ‘로또 분양’이 다수 예정돼 있다.

우선 서초구 잠원동에서는 신반포21차 재건축인 ‘반포오티에르’가 분양할 예정이다.

서초동 신동아 아파트 재건축(‘아크로 드 서초’)도 일정을 잡고 있다.


송파구에서는 미성·크로바를 재건축한 ‘잠실르엘’이 대기 중이다.

용산구에서는 용산 ‘아세아아파트’ 재건축이 일반분양 일정을 저울질하고 있다.

방배 13구역을 재건축한 ‘방배포레스트자이’, 반포동 반포 3주구 재건축(‘래미안 트리니원’) 등도 연말부터 내년 초 사이 분양할 전망이다.


하지만 앞으로 대출 한도가 6억원으로 제한되고 세입자의 전세대출이 막히며 보증금으로 잔금을 치르기도 쉽지 않아 ‘로또 분양’은 현금 부자들에게만 유리한 게임이 될 것으로 보인다.

자금이 부족한 신혼부부나 청년층에겐 수억원의 시세 차익이 기대되는 로또 분양은 ‘그림의 떡’이 되는 셈이다.


분양을 앞둔 단지들도 정부의 강력한 대출 규제 탓에 흥행에 ‘빨간 불’이 켜질 수 있어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청약 대기자 입장에서는 여러모로 자금 부담 위험이 커져 몸을 사릴 가능성이 커졌다는 뜻이다.


이미 규제 시행 전부터 수요가 충분하다고 평가받는 서울조차 고분양가에 미분양이 발생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서울 은평구 ‘힐스테이트 메디알레’는 지난 5월 483가구를 모집하는 본청약에서 1순위 평균 경쟁률 11대 1을 기록했지만 109가구가 미계약됐다.

이 단지 전용 74㎡ 최고 분양가는 13억7000만원에 달했다.


만약 앞으로 청약 시장에서 비슷한 분양가에 공급되는 주택을 분양받으려면 최소 7억원 이상 현금을 보유해야만 한다.

주택 공급자 입장에서는 분양가를 지나치게 높이면 미분양이 우려되고 분양가를 낮추면 높아진 공사비에 사업성이 떨어지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매경DB]
권대중 서강대 일반대학원 부동산학과 교수는 “정부가 예상보다 강력한 대출 규제를 꺼내 예상치 못한 피해자가 발생할 위험이 있다”며 “갈수록 논란이 더 커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다만 정부는 대출 규제가 시행된 지난 28일 이전 입주자 모집공고를 낸 분양 단지는 6억원 이상 잔금 대출을 허용하기로 했다.

중도금 대출이 잔금 대출로 전환될 때 6억원 제한이 적용되지만 ‘예외 규정’을 둔 셈이다.

직접 입주를 결정한 메이플자이·청담르엘 등 수분양자들은 한숨을 돌리게 됐다.

금융당국은 또 대출 규제 대상에 중도금 대출은 완전히 제외할 방침이다.


이번 가계부채 관리 방안엔 수도권과 규제지역 전세대출 보증 비율을 하향하는 내용도 담겼다.


지난 5월부터 전세대출 보증 비율은 100%에서 90%로 한 차례 낮아졌는데 불과 두 달도 안 돼 이 비율을 수도권의 경우 80%로 낮추기로 한 것이다.


전세대출 보증 비율이 낮아지면 그만큼 금융사들의 전세대출에 대한 리스크가 높아져 여신 심사가 더 깐깐해지게 된다.

세입자들이 전세대출을 받기가 더 어려워지는 셈이다.


특히 빌라 같은 다세대주택의 경우 전세사기 여파로 전세 수요가 크게 줄어든 가운데 전세대출마저 한도가 줄어 역전세 우려가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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