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경 명예기자 리포트 ◆

최근 서울의 핵심 업무지구인 도심, 강남, 여의도(CBD, GBD, YBD)를 중심으로 연이어 발표되는 대규모 오피스 개발 계획은 서울 오피스 시장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라는 기대와 동시에 공급 과잉에 대한 우려를 낳고 있다.


팬데믹 이후 비대면 근무 확산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공실률 하락과 임대료 상승이라는 전례 없는 임대인 우위 시장이 지속되면서, 제한적인 공급에 대한 갈증이 존재했던 것은 사실이다.

향후 7년 이내 현재 A급 오피스 총면적의 무려 50%에 달하는 약 535만㎡의 신규 오피스 공급이 승인된 사실은 간과할 수 없는 변화의 흐름이다.


특히 전체 공급 물량의 75%가 전통적인 업무 중심지인 CBD에 집중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공급 완료 시 CBD 오피스 시장 규모는 GBD의 두 배, YBD의 세 배를 넘어서는 압도적인 수준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이러한 대규모 공급 계획이 곧바로 시장의 불안정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단정하는 섣부른 '공급 폭탄'론은 경계해야 한다.

부동산 개발 사업은 복잡하고 예측이 어려운 여정이다.

파이낸싱, 인허가, 시공, 개발 계획 및 일정 변경, 심지어 예상치 못한 문화재 발굴 등 다양한 변수에 직면할 수 있다.

과거 물류 시장에서 공급 과잉이 현실화된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하지만, 오피스 시장은 물류 시장에 비해 개발 기간이 길고 장기적 관점에서 진행되므로 현재 계획된 다수의 프로젝트가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히거나, 사업 속도가 조절되면서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당초 우려했던 것보다 완화된 형태로 나타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실제로 현재 시장에 과공급 가능성, 수요의 미확인, 높은 원가 등으로 다수의 프로젝트파이낸싱(PF)에 제약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일부는 자체 정리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즉, '공급 폭탄'이라는 극단적인 시나리오보다는 다수의 프로젝트가 순연되거나 단계적으로 진행되면서 보다 점진적인 공급이 이뤄질 가능성에 무게를 둘 수 있다.


이러한 미래 오피스 시장의 공급 구조 변화 속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바로 신규 공급되는 오피스 자산의 '규모'와 '질'적 변화, 특히 '프라임급 오피스' 비중의 증가이다.

CBRE는 A급 오피스 시장에서 연면적 3만평 이상 우수한 입지와 품질에 기반한 최고급 오피스 자산을 '프라임 오피스'로 분류하고 있는데, 2024년 말 현재 서울 A급 오피스 시장 내 연면적 기준 약 23%의 비중을 차지한다.

개수로는 20개도 안 된다.



한데 향후 시장에 선보일 예정인 A급 오피스 빌딩의 평균 연면적은 3만평을 넘어선다.

물론 대형 개발이 주를 이루는 강남이나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의 재개발 공급이 예정된 여의도를 감안해야겠지만, 도심의 경우는 그 비중도 상당하다.

자산의 평균 규모만 봤을 때 모두 프라임 오피스라는 소리다.


이러한 대형 오피스 개발의 배경에는 서울시의 고밀도 개발 장려 정책이 중요한 촉매 역할을 하고 있다.

도심 내 녹지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개방형 녹지 조성 의무화 및 용적률 인센티브 제공 등의 정책적 지원이 이뤄지면서 사업성을 극대화하려는 시행사들의 적극적인 개발 움직임이 존재했다.

동시에 단순히 넓은 사무 공간을 넘어 쾌적하고 효율적인 업무 환경을 제공하는 고품질 프라임 오피스에 대한 꾸준한 시장 수요가 맞물린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실제로 글로벌 주요 오피스 시장에서도 프라임 오피스의 압도적인 경쟁력은 이미 입증된 사실이다.

미국의 뉴욕, 영국의 런던, 프랑스의 파리 그리고 아시아의 도쿄, 홍콩, 싱가포르 등 선진 시장에서는 뛰어난 입지 조건, 최첨단 설비, 수준 높은 빌딩 관리 서비스, 풍부한 편의시설 등을 제공하는 프라임 오피스의 수요가 일반적인 A급 오피스에 비해 월등히 높게 나타난다.

예컨대 뉴욕 맨해튼의 금융지구(Financial District)나 미드타운(Midtown)의 프라임 오피스는 높은 임대료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금융기업 및 대기업들의 선호도가 매우 높아 낮은 공실률이 관찰되며, 경기 변동에도 비교적 안정적인 임대료 수준을 유지하는 경향을 보인다.

런던의 웨스트엔드(West End)와 시티 오브 런던(City of London) 역시 마찬가지로, 뛰어난 접근성과 상징성을 바탕으로 국제적인 기업들의 핵심 오피스 입지로 기능하며 안정적인 임대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특히 지리학적으로도 우리나라와 가장 근접한 일본은 안정적인 경제 기반, 높은 수익률 스프레드, 매력적인 헤징 프리미엄 등을 바탕으로 국내 상업용 부동산 시장 대비 앞선 선진 시장으로 평가받고 있다.

도쿄의 경우 도라노몬힐스나 아자부다이힐스 같은 도심 대규모 재개발 프로젝트를 통해 공급된 신규 프라임 오피스를 포함해 2000년 이후 매년 평균 약 18만평의 공급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올해 초 기준 평균 공실률은 모든 등급을 통틀어 3.7% 수준을 기록했다.

A급 오피스의 평균 공실률은 2.9%로 더 좋은 실적을 나타내고 있으며, 마루노우치와 같은 프라임 오피스 권역의 공실률은 0.8%로 이보다 더 낮다.

2024년 한 해 도쿄에서 1000평 이상의 대규모 이전 활동은 코로나19 팬데믹 이전 수준으로 회복하며 6년래 최고 수준을 기록했으며 이전의 주된 이유는 오피스 '업그레이드'였다.



일본 경제는 성장보다는 장기적인 1%대 저성장 국면에 머물러 왔으며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30%를 차지하는 초고령사회로서 생산가능인구 감소라는 심각한 문제에 직면해 있다.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고민들을 일본은 이미 우리보다 훨씬 먼저 오랜 기간 경험해왔을 터이다.

이러한 암울한 거시환경 속에서도 지속적인 프라임 오피스의 개발과 견고한 수요가 나타나는 것은, 결국 임차 기업의 심층적인 니즈에 대한 깊은 고민과 이해가 바탕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기업은 더 나은 입지와 우수한 스펙을 갖춘 신규 자산으로 이동하려는 '플라이트 투 퀄리티(Flight to Quality)' 현상을 보이며, 특히 우수 인재 유치 및 유지를 위한 핵심 요소로서 프라임 오피스에 대한 수요를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이에 발맞춰 혁신적인 디자인과 다채로운 편의시설을 강점으로 내세운 신규 프라임 오피스들은 시부야의 정보기술(IT) 산업, 마루노우치의 금융 및 전문 서비스 산업 등 전통적인 핵심 산업군의 견고한 수요를 효과적으로 흡수하고 있다.


주목할 점은 인구 증가율이 정체된 상황에서도 도쿄로 유입되는 근로인구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정부의 시니어 및 여성 근로자 참여 확대 정책과 맞물려 지속적인 인구 유입을 견인하며, 결과적으로 도쿄 오피스 시장의 안정적인 공실률 유지에 기여하고 있고, 향후에도 임대인 우위의 시장 환경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더불어 일본의 강력한 임차인 보호 정책 또한 임차인들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용이하게 의사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처럼 프라임 오피스의 높은 수요는 단순히 사무 공간을 확보하는 것을 넘어 기업의 브랜드 이미지 제고, 우수 인재 유치 경쟁에서의 우위 확보, 그리고 직원들의 업무 만족도 향상 등 다각적인 측면에서 기업 가치 창출에 기여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할 수 있다.


우리나라 역시 이러한 글로벌 트렌드에서 예외는 아니다.

최근 몇 년간 서울 주요 업무 권역의 프라임 오피스는 대형 면적과 약 40%의 높은 임대료 프리미엄에도 불구하고 A급 오피스 대비 낮은 공실률을 기록하며 안정적인 임대 실적을 보여주고 있다.


쾌적한 업무 환경을 선호하는 국내외 기업들의 수요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특히 금융, IT, 전문 서비스 업종을 중심으로 프라임 오피스에 대한 선호도가 더욱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으며, 이는 향후 공급될 대형 프라임 오피스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실제로 서울의 가장 큰 프라임 오피스 빌딩인 GFC, IFC 등은 현재 높은 임대율을 유지하며 안정적인 수익을 창출하고 있고, CBD의 센트로폴리스와 그랑서울은 최근 어메니티 및 상업시설 개편 등 추가적인 투자를 통해 오피스 품질 극대화를 모색 중이다.


향후 공급될 주요 오피스 개발 사업지의 입지가 기존 핵심 업무 지역 내에서 점차 외곽으로 확장되는 추세를 고려할 때, 오피스의 '품질'은 임차 수요를 확보하는 데 더욱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것이다.

과거 주요 업무시설은 뛰어난 입지 자체만으로 충분한 경쟁력을 가질 수 있었다면, 새로운 개발 지역은 입지적 약점을 극복하고 수요를 창출하기 위해 차별화된 '상품성'을 갖추는 것이 필수적으로 단순히 넓고 새로운 공간을 제공하는 것만으로는 경쟁력을 갖추기 어렵다.

혁신적인 디자인,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하는 최첨단 설비 시스템, 직원들의 협업과 소통을 장려하는 유연한 공간 구성, 다양한 편의시설(피트니스센터, 라운지, 카페 등) 그리고 최근 기업들의 중요한 가치로 부상하고 있는 ESG 경영(환경·책임·투명경영) 실천을 위한 친환경적인 요소까지 고려한 프라임 오피스로의 질적 차별화가 무엇보다 요구된다.


향후 서울 오피스 시장은 대규모 공급이라는 중요한 변수를 맞이하겠지만, 동시에 고품질 프라임 오피스를 중심으로 외형적 성장을 이루며 전통적 중심 업무 권역으로서 역할과 상징성을 더욱 강화해 새로운 도약의 기회를 맞이할 것으로 전망한다.

결국 미래 서울 오피스 시장의 승패는 '얼마나 많은' 공간을 공급하느냐가 아닌, '얼마나 가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최근 국내외 경제 및 정치적 불확실성의 심화와 장기화된 저성장으로 인해 기업 경기 둔화 가능성이 상존하며, 지난 3년간의 급격한 임대료 상승은 오피스 수요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높아진 국가적 위상을 바탕으로 서울시의 다양한 글로벌 비즈니스 환경 개선 정책을 통한 글로벌 기업 수요 유입 잠재력과 국내 핵심 산업의 성장에 따른 새로운 형태의 오피스 수요 창출, 개인당 오피스 사용 면적 증가 등 긍정적인 부분도 분명 존재한다.

상업용 부동산 시장에 몸담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개인적으로는 향후 다양하고 우수한 품질의 프라임 오피스가 서울에 속속 공급되고, 서울의 스카이라인이 더욱 역동적으로 변화하면서 서울이 명실상부한 동북아시아의 핵심 업무지구로서, 더 나아가 세계적인 주요 업무 도시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경쟁할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기대하고 바라는 바이다.



[임동수 CBRE코리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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