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일 상호관세 유예 결정 배경 주목
관세전쟁 후폭풍 예상보다 컸던 듯
흔들리는 ‘美국채’서 구조적 위기감
中과 전면전쟁 구도서 ‘동맹’ 인식
WSJ, “불확실성, 7월8일까지만 멈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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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9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행정명령에 서명한 뒤 이를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AP 연합뉴스> |
“리더들은 종종 대중의 지지를 파괴할 수 있는 시장의 힘을 간과한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9일(현지시간) 전 세계와 관세전쟁(중국 제외)을 ‘90일 일시멈춤’ 상태로 선회한 데 대해 월스트리트저널(WSJ) 편집위원회 사설 속 이 한 문장이 많은 것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참모 조직에 직언할 수 있는 ‘어른들의 축’이 사라지고 충성파들이 득세하면서 브레이크 없이 질주하던 트럼프노믹스가 9일 마침내 멈춰 선 것입니다.
뉴욕증시에서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이 2차 세계대전 이래 세 번째로 높은 두 자릿수 상승률을 기록했고 10일 일본과 한국 등 아시아 증시도 극한의 공포에서 벗어나는 흐름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이 불확실성 해소가 아닌 ‘일시멈춤’이고 90일 뒤 트럼프 리더십 스타일처럼 다시 불확실성이 고개를 들어 시장을 괴롭힐 것이라는 점에서 이번 태세 전환 배경을 파악하는 건 향후 불확실성 대응 측면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그 몇 가지 단서가 “시장의 힘을 간과한다”는 WSJ 사설 한 문장에 압축돼 있습니다.
특히 이번 태세 전환에서 안전 자산인 미 국채가 흔들리는 모습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충격을 준 것으로 보입니다.
WSJ은 “최근 달러화에서 자금을 빼고 미국 국채를 매도함으로써 투자자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최측근들이 트럼프에게 말하지 않은 모든 국가와 한꺼번에 무역 전쟁을 시작할 때 초래될 위험을 말해준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특히 10년 만기 국채의 놀라운 매도세에 대해 WSJ은 “이번 매도세는 미 정부가 부채를 상환할 수 있다는 시장 신뢰가 떨어지고 있다는 것을 반영했다”고 정면 경고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무모한 관세 도박이 가뜩이나 막대한 부채 리스크로 지속가능성에 의문이 커진 미국 경제를 한방에 무너뜨릴 수 있음을 이번 자본시장 동요가 보여준 것이죠.
관련해서 미국 언론들은 자본시장의 변동성이 겉잡을 수 없이 커지자 트럼프 대통령의 앞날에 ‘리즈 트러스 모멘트’가 다가오는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지난 2020년 10월 사임하면서 영국 역사 상 가장 짧은 재임 기간(44일)을 기록한 리즈 트러스 전 영국 총리의 그림자가 보인다는 것이죠.
트러스 전 총리는 2022년 9월 취임과 함께 마거릿 대처 전 총리와 같은 리더십을 꿈꿨지만 72조원 규모의 감세안이 포함된 예산을 시장과 사전 교감 없이 발표하면서 순식간에 영국 경제를 공포와 충격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재정 건전성 악화에 대한 시장 불안이 확산하면서 파운드화가 달러 대비 역대 최저로 추락하고 국채 금리가 급등했습니다.
작금의 트럼프 관세 전쟁 상황과 일치합니다.
결국 그가 총리직에서 물러나면서 시장 동요가 진정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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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9월 취임과 함께 잘못된 감세 정책에 대한 시그널로 영국 경제를 혼돈에 몰아넣고 44일만에 자리에서 물러난 리즈 트러스 전 영국 총리. <사진=AFP 연합뉴스> |
시장의 힘을 간과한 요인과 더불어 트럼프 대통령이 브레이크 페달을 밟은 두 번째 요인은 ‘동맹의 중요성’을 뒤늦게 깨달은 탓으로 보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을 제외하고 다른 나라들에 10%의 베이스라인 관세를 제외한 상호 관세를 동결했습니다.
역으로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산 수입품 관세율을 125%로 더 끌어올렸습니다.
WSJ은 이에 대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경제 대국과 맞서기 위해 미국은 대체 가능하고 신뢰할 수 있는 공급망이 필요하다”라며 “그럼에도 트럼프 행정부 관리들은 중국과 맞서기 위해 어리석게도 일본, 한국, 대만과 같은 전통적인 파트너들과 거래를 중단할 수도 있다고 믿었던 것 같다”고 꼬집었습니다.
빨리 가려면 혼자,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격언처럼 중국의 반격이 만만치 않자 관세 전쟁의 작전 범위를 ‘전 세계’에서 ‘중국’으로 좁히고 동맹국들을 달래기 시작한 것이죠.
트럼프 대통령은 참모들에게 일본, 한국 등 동맹들에게 우선 협상권을 주라고 발언한 바 있는데 이는 중국이 강대강 대치를 보이자 우군 확보의 필요성을 느낀 것으로 보입니다.
한편 WSJ은 트럼프 대통령의 이 같은 태세 전환에도 불구하고 투자자들에게 “90일간의 중단은 오는 7월 8일까지만 지속될 것이며, 그 동안 중국과의 무역 전쟁은 계속 격화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지금의 멈춤으로 불확실성이 소멸된 것이 아니며, 90일 뒤 트럼프 대통령이 세계 경제에 또다시 후폭풍을 몰고 올 가능성이 크다는 경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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