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세전쟁 ◆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첫 한미정상 통화를 하고 정인교 통상교섭본부장이 미국을 방문하는 등 관세를 둘러싼 양국의 협상이 무르익어가는 가운데 미국 측 협상의 '키 맨'이 누구인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캐럴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8일(현지시간) 브리핑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과 제이미슨 그리어 USTR 대표에게 이 대화(협상)를 주도하도록 지시했다"고 밝혔다.
가장 눈길이 가는 부분은 베선트 장관을 '협상 총괄'로 기용한 것이다.
베선트 장관은 민주당 후원자인 조지 소로스가 운용하는 펀드의 최고투자책임자(CIO)를 거쳐 헤지펀드 '키스퀘어그룹'을 창업한 인물로 진성 '마가(MAGA)'와는 거리가 있는 인물이다.
이에 따라 트럼프 관세정책 수립 과정의 핵심 라인에서 비껴 있다는 평가가 많았다.
블룸버그는 베선트 장관이 상호관세 정책 수립 과정에서 정책을 주도하지 못했고, 그의 역할은 다양한 수준의 관세가 시장·경제에 미치는 잠재적 시나리오를 분석하고 설명하는 정도에 그쳤다고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던 바 있다.
하지만 베선트 장관이 관세정책 최전선에 복귀한 것은 증시폭락과 시장 불안으로 터져나온 월가의 불만을 달래려는 차원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베선트 장관은 관세와 관련한 시장 불안 속에서 협상에 유화적인 메시지를 발신해왔다.
그는 이날 CNBC와 인터뷰에서 "일본, 아마도 한국, 아마도 대만이 제공할 수 있는 알래스카의 대규모 에너지 거래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면서 "이는 미국에 많은 일자리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무역적자를 줄일 수 있기 때문에 (관세 협상에서) 그들이 먼저 제안할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트럼프 행정부가 마냥 시장에 유화적인 제스처만을 던진 것은 아니다.
그리어 대표를 베선트 장관과 함께 관세협상의 투톱으로 세운 것은 트럼프 관세정책의 일관성을 상징한다는 평가가 있다.
그리어 대표는 트럼프 1기 행정부 시절 관세폭탄 설계자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전 USTR 대표의 수제자로 꼽힌다.
라이트하이저의 비서실장 출신인 그는 트럼프 1기 행정부 시절 대중국 고율관세 부과에 관여한 바 있다.
관세와 무역장벽에 있어서는 줄곧 강경한 입장을 고수해 왔다.
인준 청문회 과정에서는 한국 정부가 추진했던 '플랫폼 공정경쟁촉진법(플랫폼법)'을 정면 비판했다.
일각에서는 베선트 장관과 그리어 대표를 관세 협상의 투톱으로 기용해 서로 결이 다른 결과물이 도출되면, 트럼프 대통령 본인이 최종 결정을 내리는 식의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스타일이 반영됐다는 시각도 나온다.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 등 주요 무역 파트너국들은 관세협상 투톱과 트럼프 스타일에 초점을 맞춰 협상 기술력과 역량을 총투입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블룸버그는 트럼프 행정부와 협상에서 각국이 관세율의 무한한 복잡성에 집착하지 말고 무역적자를 끔찍하게 여기는 트럼프 스타일에 맞춰 협상할 필요가 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만족할 협상의 결과는 '내가 승리했다'라는 상징적 헤드라인이므로, 아시아 교역국들이 큰 양보 없이도 어떻게 트럼프 대통령에게 만족스러운 헤드라인을 만들어 줄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긴 호흡을 갖고 상대편과 조율하는 통상의 양자 무역협정과 달리 상호관세 발효에 따라 급등한 관세율을 되돌리기 위해 속전속결로 타협을 이룰 필요가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의 미국 측 주역이었던 웬디 커틀러 전 미국무역대표부(USTR) 부대표는 최근 포린폴리시에 올린 글에서 "트럼프 상호관세를 부과 받은 국가들이 워싱턴과의 협상을 위해 조기 대기열에 합류할지, 아니면 선도국들의 협상 사례를 지켜보며 평가와 준비의 시간을 가질지 전략적 고민을 하게 될 것"이라면서도 "미국과의 담판이 시작되면 협상팀이 민첩성과 유연성을 가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미국 전략 컨설팅회사 카나리그룹의 조너선 그레이디 원장은 최근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 아시아판에 게재한 기고에서 "경제 논리와 디테일로는 협상을 끝낼 수 없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거부하기 힘든 다양한 승리의 헤드라인을 제공하는 협상 방식을 구사하라"고 당부했다.
[워싱턴 최승진 특파원 / 서울 이재철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