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수많은 기업이 실패하고 있다.
정부도 이런 시장 실패 위험을 껴안고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
그래서 기술 조건은 까다롭게, 하지만 한번 지원을 하게 되면 과감하게 해야 한다.
"
이스라엘의 '사이버 구루'로 불리는 라미 에프라티 전 국가사이버국(INCD) 민간 담당 책임자(사진)가 매일경제와 만나 한국 정부에 이같이 조언했다.
강력한 기술 잠재력을 지니고 있는 한국이 사이버 보안 강국으로 도약하려면 정부부터 기업처럼 생각하고 움직이며 새로운 시장을 만들라는 것이다.
에프라티 전 책임자는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사이버테크 콘퍼런스' 개막을 하루 앞둔 지난달 23일 기자와 만나 '사이버 네이션'으로 불리는 이스라엘의 보안 능력 기저에 이러한 시장 중심 사고와 민관의 강력한 에코 시스템이 자리 잡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사이버 보안 영역은 시장에 형성된 적정 가격이 없다.
그래서 아주 구체적인 맞춤형 요구 사항을 기업에 요구하고 그 답을 찾는 과정에서 대단히 많은 비용이 수반된다"며 "정부의 역할은 이 비용 부담을 기꺼이 껴안으며 혁신 스타트업이 굶지 않고 최고의 답을 도출할 수 있도록 독려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의 사이버 보안 관련 혁신 스타트업이 자국을 넘어 미국 실리콘밸리 등 세계에서 활동하며 최고의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스라엘 출신의 클라우드 보안 기업인 '위즈'가 최근 46조원이라는 천문학적 금액으로 구글에 매각됐다.
이는 이스라엘 보안 기업의 해외 인수·합병 사례 중 최대 규모에 해당한다.
한국은 이스라엘처럼 군 의무 복무 관점에서도 사이버 인재 양성의 탁월한 인적 토대를 갖추고 있다는 게 그의 평가다.
이스라엘은 18세 이상 남성의 경우 3년, 여성은 2년간 의무 복무를 해야 한다.
에프라티 전 책임자는 "이스라엘 군대는 모든 사람이 복무하고 일을 해야 하는 국가적 인큐베이터"라며 "이 인큐베이터 속에서 젊은이들은 갑자기 더 많은 사람을 만나야 하고, 책임감을 가져야 하며, 자기 생존을 넘어 리더가 돼야 한다"고 전했다.
이어 "이 인큐베이터는 리더십과 함께 젊은이들에게 틀에서 벗어난 사고를 가르치는데, 사이버 보안 분야에 대한 새로운 관심과 기회를 제공하는 것도 국가 인큐베이터로서 군이 전문가를 키워내는 중요한 출발점"이라고 강조했다.
에프라티 전 책임자는 사이버 보안 인재들이 제대 후 창업해 패배를 경험하더라도 해외로 나가지 않고 이스라엘에서 다시 도전할 수 있도록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주는 게 정부의 중요한 역할임을 역설했다.
"이스라엘은 총 4개의 선택지를 사이버 인재들에게 제공합니다.
산업계 진출과 군대, 대학, 그리고 국립연구소입니다.
비록 급여는 미국 기업보다 적을 수 있지만 이 역내 생태계에서 젊은이들이 실패의 아픔을 딛고 자신의 꿈에 도전할 수 있도록 기회를 보장합니다.
"
28년이 넘는 기간 동안 이스라엘군(IDF)에서 정보 분야의 중요 작전과 기술 직책을 이끌었던 그는 이 경험을 바탕으로 2012년 INCD 창립 멤버로 활동했다.
INCD는 총리실 직속 기관으로, 이스라엘의 사이버 보안 정책을 총괄한다.
사이버 보안 관련 민관 조직이 모두 INCD의 통제하에 있다.
INCD에서 민간 담당 책임자로 활동했던 에프라티는 이스라엘 혁신 기업 육성과 투자는 물론 해외 기업들이 이스라엘의 사이버 인재들을 믿고 현지에 연구개발(R&D)센터를 짓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텔아비브 이재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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