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공식 정상회의서 ‘자강’ 결의
英 “우크라 평화보장연합 추진
다수국가가 이미 참여 뜻밝혀“
유럽發 종전안, 美에 전달예고
獨등 동참여부·러 수용은 변수
안보 별개로 美 관계회복 과제
폰데어라이엔 “방위강화 시급”
6일 EU 회의 재무장 제시할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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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롱 대통령과 스타머 총리, 젤렌스키 대통령 [EPA = 연합뉴스] |
“우리는 역사의 갈림길에 섰다.
”
2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와 유럽의 안보 강화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영국 런던에서 열린 유럽 비공식 정상회의를 주재한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가 유럽이 처한 현실을 이처럼 강조하면서 “논의가 아닌 행동이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지난달 28일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몰아붙이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모습을 보면서 ‘대서양 균열’을 다시 한번 확인한 유럽 각국은 자체 무력 강화에 잰걸음을 걷고 있다.
이번 정상회의에서 여러 국가가 방위비 증액 계획을 내놓았고 영국과 프랑스 주도로 우크라이나와 협력해 구상하려는 전후 안보 계획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했다고 참석 정상들은 전했다.
스타머 총리는 회의 이후 기자회견에서 “정상들이 우크라이나의 협정을 수호하고 평화를 보장할 ‘의지의 연합(Coalition of the willing)’을 강화하기로 의견을 모았다”며 “다수 국가가 우리가 개발 중인 계획에 참여하고 싶다고 했다”고 밝혔다.
그는 그러면서 “영국은 지상군과 공군기로 이를 지지할 준비가 됐다”며 “유럽이 무거운 짐을 져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스타머 총리는 우크라이나가 영국의 수출 금융 16억파운드(약 2조9000억원)를 활용해 방공 미사일 5000기를 구매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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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왼쪽)과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가운데),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2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랭커스터하우스에서 유럽 정상회의를 한 후 밀착한 채 안보 상황에 관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 [EPA = 연합뉴스] |
이날 회의에 앞서 스타머 총리는 BBC와의 인터뷰에서도 “영국은 프랑스, 그리고 아마도 1~2개 다른 국가와 함께 싸움을 멈출 계획에 관해 우크라이나와 협력할 것이며 그 계획을 미국과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회의에서 나온 의지의 연합은 이라크 전쟁 당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자국을 군사적으로 지원한 동맹국들을 지칭한 표현이다.
유럽이 안보 강화를 내세우는 가운데 미국이 군사 지원에서 손을 떼면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한 셈이다.
영국과 함께 유럽 안보 계획을 주도하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이날 일간 르피가로 인터뷰에서 하늘과 바다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을 한 달간 중지하자고 제안했다.
전선이 광범위하기 때문에 지상에서는 휴전 준수를 확인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마크롱 대통령은 영국도 이 같은 휴전 아이디어에 동의한다고 전했다.
또 그는 트럼프 행정부의 대외정책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유럽 각국이 국방비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3~3.5%로 늘려야 한다는 의견도 밝혔다.
유럽에서 GDP 대비 3%가 넘는 국방비를 지출하는 국가는 지난해 기준으로 폴란드와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그리스 등 4개국에 불과하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이날 “유럽은 급히 재무장해야 한다”며 오는 6일 EU 정상회의에서 이를 위한 포괄적인 계획을 제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방위 투자 강화가 매우 중요하다”며 “(EU) 회원국들이 방위 지출을 급증하려면 재정적 공간이 더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마르크 뤼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총장은 “더 많은 유럽 국가가 방위비를 증액할 계획”이라며 “이는 좋은 소식”이라고 말했다.
회의에 앞서 스타머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과 친분이 있는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를 다우닝가 10번지 총리 관저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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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안보 정상 회의 참석한 유럽·캐나다 정상들 [EPA = 연합뉴스] |
멜로니 총리는 이날 정상회의 모두발언에서 “서방이 분열하는 위험을 피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며 “영국과 이탈리아는 가교 구축이라는 중대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스타머 총리는 또 이날 알라르 카리스 에스토니아 대통령, 기타나스 나우세다 리투아니아 대통령, 에비카 실리냐 라트비아 총리와 공동 전화 회의도 열었다.
러시아와 인접한 이들 발트해 국가는 방위 강화를 추진하고 있다.
영국과 프랑스가 주도하는 이번 안보·평화 구상의 전망이 밝지만은 않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독일과 스페인, 폴란드가 의지의 연합에 참여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
또 유럽 입장이 반영된 협상안을 러시아가 수용할지도 미지수다.
이와 관련한 질문에 스타머 총리는 “협상 마지막에는 러시아가 관여할 수밖에 없겠지만, 우리가 협상을 이루기도 전에 러시아가 안보 보장의 조건을 제시한다는 전제로 협상에 접근할 수는 없다”고 답했다.
영국과 프랑스가 유럽 안전 보장을 주도하는 데는 전통적인 유럽 강국이라는 점도 작용하지만, 3년이나 지속되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책임을 지기 위한 측면도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된 지 한 달이 지난 시점인 2022년 3월 튀르키예의 중재로 평화 협상에 임하려던 젤렌스키 대통령은 보리스 존슨 당시 영국 총리를 만난 후 태도를 바꿨다.
젤렌스키 대통령과 같은 당인 국민의 종 소속 지도자인 다비드 아라하미아는 “러시아 대표단이 당시 중립을 조건으로 키이우에 평화를 약속했다”며 “존슨이 젤렌스키에게 계속 싸우자고 설득했다”고 폭로했다.
프랑스는 우크라이나 동부의 무력 분쟁을 끝내기 위해 2015년 체결된 민스크 협정의 중재국으로 참여했다.
하지만 민스크 협정이 이후 제대로 작동되지 않으면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관계가 악화 일로를 걷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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