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유엔 ‘러 규탄 결의안’ 반대
실리·거래 중점 둔 트럼프 2기
평화보다 이익 위한 외교 행보
돈 되는 러시아 앞장서서 비호
우크라엔 광물협상 압박 강화
젤렌스키 독재자라 칭하더니
푸틴엔 유보적 입장 취하기도
민주주의 수호자 사실상 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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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총회에서 도로시 셰이 주유엔 미국대표부 차석대사가 손을 들며 발언권을 신청하고 있다. 미국은 이날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러시아를 규탄하는 결의안에 러시아, 북한과 함께 반대표를 행사해 충격을 안겼다. [AFP = 연합뉴스] |
‘미국, 반대표’.
24일(현지시간) 오전 미국 뉴욕 유엔총회 현장에서 미국의 동맹들은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음을 직감했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를 규탄하는 결의안 표결 현황판에 미국명 옆에 ‘반대’를 의미하는 붉은색의 마이너스(-) 표시가 켜진 것이다.
민주주의 가치 동맹을 중시하며 독재 국가들의 방패막이 역할을 자임한 미국이 기존 노선을 포기하고 결의안에 반대한 러시아와 북한, 이란 등과 같은 편에 서는 충격적 현장이었다.
미국은 우크라이나 결의안에 담긴 ‘러시아의 침략’ 표현에 반대하며 이를 제외한 자체적인 결의안을 내놓았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미국의 결의안은 러시아의 위법 행위를 나열한 우크라이나 결의안보다 짧은 4줄에 불과하며, 북한의 러시아 파병이 “중대한 확전 우려를 제기한다”는 내용도 포함하지 않았다.
미국은 다른 유엔 회원국들에 미국의 결의안을 지지하라고 촉구해 왔으며, 우크라이나에 그들의 결의안을 철회하라고 압박했으나 우크라이나가 이를 거부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의 결의안은 193개국 중 93표의 찬성으로 가결됐다.
반대표를 던진 18개국 가운데는 당사국인 러시아와 북한, 이란 등과 함께 미국이 어깨를 나란히 했다.
여러 사안에서 러시아와 공조를 이어 온 중국조차 기권표를 던진 상태였다.
미국이 내놓은 자체 결의안은 원안이 거부되고, ‘러시아의 침략’ 내용이 담기도록 수정됐다.
이 수정안도 유럽과 아시아 민주주의 국가들의 압도적 찬성으로 통과됐지만 미국은 원안이 수정됐다는 이유로 기권표를 던졌다.
WP에 따르면 이 수정안이 통과되고 총회장에는 참석자들의 박수 갈채가 터져나왔다.
유엔총회에서 체면을 구긴 미국은 같은 날 오후에 열린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에서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다.
15개국으로 구성된 유엔 안보리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책 기조를 반영하는 미국의 결의안이 상정됐다.
결의안에 러시아의 침략은 언급되지 않았다.
안보리에서 미국 결의안에 대해 프랑스, 영국, 덴마크, 슬로베니아 등은 유엔총회에서의 제안과 동일하게 수정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러시아가 거부권을 행사하며 수정은 반영되지 않았다.
결국 미국이 제안한 결의안은 표결에서 찬성 10표, 반대 0표, 기권 5표로 가결 처리됐다.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영국과 프랑스는 기권표를 던졌다.
바실리 네벤지야 주유엔 러시아대사는 미국의 결의안을 두고 ‘상식’이라는 단어를 넣어 “백악관의 새 행정부가 분쟁의 평화적 해결에 기여하고자 하는 의지를 반영하는 상식적 조치”라고 환호했다.
이날 유엔총회와 안보리 현장에서 보인 미국의 행보는 최근 우크라이나 종전협상에서 우크라이나와 유럽을 패싱하는 움직임과 맞물려 글로벌 지정학의 대격변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해석되고 있다.
‘민주주의’를 기초로 한 기존의 동맹 관계보다는 철저하게 실리와 친분 관계를 중심으로 외교안보의 균형추를 옮기고 있는 것이다.
특히 유럽에서는 동맹의 ‘균열’를 ‘실존적 위협’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트럼프가 우크라이나에 대해 가진 유일한 관심사는 약탈인 것 같다”며 “돈이 트럼프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요소 중 하나라는 점을 인식한 러시아는 협상에 임하면서 사업 거래를 제안하는 긴 목록을 준비했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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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워싱턴 DC 백악관 집무실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을 만나고 있다. [AFP = 연합뉴스] |
뉴욕 유엔본부가 아닌 워싱턴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던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들과의 문답에서 ‘독재자’라는 표현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도 쓰겠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나는 그런 단어를 가볍게 쓰지 않는다”며 유보적인 입장을 취했다.
반면 최근 자신이 우크라이나에 요구한 광물협정 체결을 거부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향해서는 ‘독재자’라고 부른 바 있다.
그는 젤렌스키 대통령의 지지율이 4%에 불과하다는 근거 없는 주장을 펼치며 젤렌스키 대통령이 전쟁을 이유로 대통령 선거를 연기하고 있다고도 비난했다.
아울러 이날 푸틴 대통령과 자신이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 논의뿐 아니라 양국 간 경제개발 협력도 논의 중이라고 전했다.
그는 트루스소셜에 “나는 푸틴 대통령과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과 더불어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 이뤄질 주요 경제개발 거래에 대해 심각한 논의를 진행 중”이라고 적으며 “대화는 매우 잘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미·러 간 밀착 대화 상황을 전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메시지에 평화보다 러시아와의 경제 협력, 우크라이나 광물·에너지 확보 이슈가 더 빈번하게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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