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총선에서 승리하며 차기 총리 자리를 예약한 프리드리히 메르츠 기독민주당(CDU) 대표(사진)가 유럽의 독자적인 방위 역량을 확보하기 위해 공격적인 행보를 예고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에 더 이상 유럽 안보를 맡길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메르츠 대표는 24일(현지시간) 베를린 당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유럽인들에게 스스로 방위 역량을 강화할 것을 촉구하며 "우리가 미국에서 받는 모든 신호는 유럽에 대한 (미국의) 관심이 점점 줄어들고 있음을 가리키고 있다"며 "'미국 우선'을 넘어 '미국 홀로' 방향으로 가고 있는 세력이 득세한다면 (유럽은) 어려워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미국과 유럽의 안보 관계에 관한 질문에 "좋은 대서양 관계를 계속 유지하는 게 서로 이익에 부합한다고 미국인들을 설득하겠다"면서 "최악의 시나리오에도 대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가능한 한 빨리 유럽을 강화해 단계적으로 미국에서 진정한 독립을 달성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앞서 메르츠 대표는 지난 21일 ZDF방송 인터뷰에서 핵무기를 보유한 영국·프랑스와 핵 공유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며 그동안 미국에 의존해온 안보정책을 유럽 중심으로 바꾸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을 계기로 2차 대전 이래 80년 동안 이어온 미국과 유럽의 관계가 유례없는 시험대에 오른 현실이 메르츠 대표 인식에 반영됐다고 BBC는 전했다.
메르츠 대표의 유럽 내 핵우산 공유론에 프랑스도 응답했다.
이날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한 프랑스 정부 소식통은 "프랑스가 독일에 핵무기를 탑재한 전투기 몇 기를 배치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런 조치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강한 메시지'를 보낼 수 있다"고 밝혔다.
베를린에서 근무하는 외교관들은 이것이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에게도 프랑스와 같은 조치를 취하도록 압박하는 일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메르츠 대표가 구상하는 대로 독일이 프랑스나 영국과 핵 공유를 추진한다면 이는 수십 년간 지속돼온 독일의 전략적 정책을 바꾸는 게 된다.
니콜라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은 2007년 독일과 핵무기 공유 방안을 모색하는 대화를 시작하겠다고 제안했으나 당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미국과의 관계를 의식해 이를 거절했다.
같은 날 메르츠 대표는 올라프 숄츠 현 독일 총리가 이끄는 사회민주당과 최대 2000억유로(약 300조원)에 이르는 특별방위 예산을 긴급 편성하는 방안에 대해 논의를 시작했다고 블룸버그가 보도했다.
한편 다음달 6일 긴급 정상회의를 준비 중인 유럽연합(EU)은 우크라이나를 위한 '자체 지원 패키지' 규모를 협의할 예정이다.
현재 검토 중인 지원안은 200억유로(약 30조원)로 알려져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 대통령이 유럽에 대한 지원과 병력 감축을 언급함에 따라 유럽 지도자들이 대륙 전체의 안보 공백을 메울 방법을 찾으려 애쓰고 있다고 분석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안보 지형 격변을 우려하고 있는 유럽이 공동으로 국방기금을 조성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덕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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