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미국과 소통 물꼬 텄다”…K기업 美서 살아남으려면 이게 필요하다는데

韓재계, 러트닉 상무장관 회동

트럼프 압박 해소 절박한 韓
워싱턴서 40여분 동안 만나
러트닉“투자기준은 10억弗”

최태원“美 불리한것도 있지만
AI는 미국에 투자하는게 유리”

안덕근도 이르면 이번주 訪美

최태원 SK그룹 회장 겸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지난 2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에서 최종현학술원 주최로 열린 ‘2025 트랜스퍼시픽다이얼로그’에서 연설하고 있다.

[사진제공=SK그룹]

꽉 막혔던 도널드 트럼프 2기 경제팀과 한국 기업들 간 소통의 물꼬가 마침내 트였다.


대한상공회의소 주도로 구성된 기업인 중심의 민간 경제사절단이 그 주인공으로, 지난 21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선봉장’인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을 만난 사실이 매일경제 취재로 확인된 것이다.


주목할 점은 한국 대표 기업인들과 만난 러트닉 장관이 대(對)미 투자의 기준선을 ‘10억달러’로 제시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보편·상호관세를 필두로 트럼프 경제팀이 몰아붙이는 ‘미국 우선주의’ 무역정책 속에서 생존 해법을 모색 중인 한국 기업들에 상당한 자본 지출 압박과 더불어 ‘제조 공급망 이전’이라는 중대 결정을 독촉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한국 기업인들과 러트닉 장관의 만남은 이날 오전 워싱턴DC 모처에서 40여 분간 진행된 것으로 전해졌다.

접견에 참석한 한국 기업인들은 한화오션의 필리조선소 등을 비롯해 한국 기업들의 대미 투자에 대해 언급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한국 기업인들의 이 같은 언급에 러트닉 장관이 10억달러를 말한 것이 어떤 맥락이었는지는 불분명하지만, 전 정부에서의 투자보다는 트럼프 행정부에서의 투자를 더 중시한다는 의중이 반영됐을 가능성이 점쳐진다.


공교롭게도 이날 오후 러트닉 장관의 취임 선서식이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진행됐다.

선서식에는 트럼프 대통령도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곧 상호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말했고, 유럽연합(EU)이 미국산 자동차 등 제품에 대한 관세를 낮추고 싶어한다면서 “그들은 갑자기 우리에게 매우 친절해졌으며 다른 나라들도 그렇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전략 산업에서 동맹의 대미 투자를 장려하는 ‘미국 우선주의 투자정책’ 각서에 서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각서에서 “우리는 해외 동맹들이 그들의 자본으로 미국 일자리와 혁신가들, 경제 성장을 지지하는 것을 더 쉽게 만들겠다”고 밝혔다.


각서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특정 동맹과 파트너가 첨단기술과 기타 중요한 분야의 미국 기업에 더 많이 투자하도록 촉진하기 위해 ‘패스트트랙 절차’를 만든다는 구상이다.

이는 동맹 기업이 투자하는 경우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CFIUS)의 안보 심사를 간소화하거나 신속하게 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다만 각서는 패스트트랙 절차를 이용하려면 미국에 적대적인 국가의 기업들과 파트너 관계를 맺으면 안 되는 등 적절한 보안 요건을 따라야 한다면서 중국 등 적대국과 얼마나 ‘거리와 독립성’을 유지하느냐에 따라 투자 제한이 완화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트럼프 대통령은 10억달러를 넘는 대미 투자에 대한 환경평가를 신속히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또 동맹의 투자는 환영하되 미국에 해로운 중국 등 적대국의 투자는 막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구글·아마존·메타 등 미국 빅테크(거대 기술기업)를 ‘부당하게’ 규제하는 외국 정부에 관세 등으로 대응한다는 내용을 담은 각서에도 서명했다.


경제사절단을 이끌고 방미한 최태원 SK그룹 회장 겸 대한상의 회장도 같은 날 트럼프 2기 정부 출범 이후에 인센티브가 있다면 미국에 대한 추가 투자를 검토할 수 있다고 밝혔다.

최 회장은 워싱턴DC 한 호텔에서 최종현학술원 주최로 열린 ‘2025 트랜스퍼시픽다이얼로그(TPD)’ 행사장에서 취재진과 만나 대미 투자 계획이 있는지를 묻자 “검토는 계속할 것이다.

비즈니스라는 게 필요한 투자를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어느 기업도 ‘트럼프 시기에 얼마를 하겠다’고 생각하며 다가가지 않고, 이게 내 장사에 얼마나 좋냐 나쁘냐를 얘기한다”며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에 생산 시설을 좀 더 원한다고 얘기하지만, 우리는 인센티브가 같이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계속 (미국이) 세금도 내리겠다고 얘기하는데 아직은 뭐가 (구체적으로) 나온 게 없지 않나. 그러니까 좀 더 지켜봐야겠다”며 “그래야 계획을 짜거나 뭘 하는 데 반영시킬 수 있는데, 지금은 아직 나온 게 없다”고 덧붙였다.


최 회장은 미국 측 인센티브와 관련해 “꼭 돈만 갖고 따지는 게 아닐 수 있다.

여러 가지 다른 종류의 인센티브가 있을 수 있다”며 “한국과 미국이 같이 해서 서로 좋은 것을 하는 게 지금 필요하다”고 답했다.


그는 투자처로서 미국의 매력도에 대해 “미국이 좀 불리한 것도 있지만 미국이 유리한 것도 있다.

솔직히 인공지능(AI) 분야 등은 다른 데 투자하는 것보다 미국에 투자하는 게 지금 훨씬 좋을 수 있다.

상대적으로 우리도 유리하고 좋은 곳에 투자하지 않겠나”라고 설명했다.


민간 경제사절단은 백악관 고위 당국자와 의회 주요 의원들을 만나 한국이 미국에 제조업을 중심으로 지난 8년간 1600억달러 이상을 투자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조선, 에너지, 원전, 인공지능(AI)·반도체, 모빌리티, 소재·부품·장비 등 6대 분야를 중심으로 한미 양국 간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방안을 제안했다.

최 회장은 사절단의 방미 성과를 묻는 질문에 “가능하면 그들(미국 측)이 흥미로워할 얘기를 한다는 게 계획이었고, 그런 측면에서 성과가 있었다”고 답했다.


정부에서는 이르면 이번주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미국으로 출격해 트럼프 행정부 고위급 관료들과 접촉한다.

안 장관은 러트닉 장관과 크리스 라이트 에너지부 장관 등을 상대로 면담 일정을 조율 중이다.


안 장관은 미국 측에 상호 관세와 철강·알루미늄 관세 면제를 요청할 전망이다.

인플레이션 감축법(IRA)·반도체법 보조금 등 한국 기업에 대한 지원도 유지해 달라고 당부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당장 다음달 12일부터 자국에 수입되는 철강·알루미늄에 25%의 관세를 매기기로 했다.


이 밖에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비관세 장벽과 관련해서도 한미 간 논의가 오갈 것으로 예상된다.

협상 현안뿐 아니라 조선·원전 등 구체적인 산업별 협력 방안에 대해서도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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