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령 사회 日 릿쿄대 세컨드 스테이지 대학 가보니
50세 이상 학생 100명 선발
인문·비즈니스·인생 설계
3가지 과정으로 나눠 교육
은퇴 이후의 ‘기술’이 아니라
행복하게 잘 사는 지혜 가르쳐
고령자 재교육 모범사례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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릿쿄 세컨드 스테이지 대학의 수업 모습. [도쿄 = 이승훈 특파원] |
일본은 2006년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이는 전체 인구에서 65세 이상 비중이 20%를 넘어서는 것을 의미하는데, 전 세계 최초라 사회 전체가 들끓었다.
많은 사람이 은퇴 후 삶을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과거만 해도 국가 연금과 본인이 모은 저축 등으로 은퇴 후에도 안정적인 생활을 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초고령사회 이후 수명 연장과 연금 개편, 정년 연장 등이 복잡하게 얽히면서 새로운 인생 설계가 필요해졌다.
이의 연장선으로 나온 것이 고령자 재교육 프로그램이다.
여러 단체에서 우후죽순 나오다가 2008년 릿쿄대가 ‘세컨드 스테이지 대학’이라는 이름으로 대학 차원의 프로그램을 선보이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릿쿄대에 이어 와세다대가 ‘라이프 리디자인 칼리지’를 내놓았고, 도쿄도립대는 ‘프리미엄 칼리지’라는 이름으로 고령자의 삶을 응원하고 있다.
3개 대학의 과정 운영과 커리큘럼은 비슷하다.
원조 격인 릿쿄대를 기준으로 설명하면 릿쿄 세컨드 스테이지 대학은 매년 100여 명을 모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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릿쿄 세컨드 스테이지 대학에서 와타나베 신지 명예교수가 강의하고 있다. 수강생들의 희끗희끗한 머리가 인상적이다. [도쿄 = 이승훈 특파원] |
지원 자격은 50세부터이며 연간 수업료는 입학금을 포함해 43만엔(약 410만원)이다.
수업료도 적지 않고 1년간 꼬박꼬박 출석해야 졸업장을 주는데도 2008년 과정을 시작한 이래 지난해까지 1431명이 이곳을 거쳤다.
1년 과정이 기본인데 추가로 수업을 듣고 싶은 사람은 ‘전공과’라는 이름으로 1년 더 다닐 수 있다.
대학 졸업 등 자격이 있는 사람은 릿쿄대 대학원 과정으로 진학할 수도 있다.
구리타 가즈아키 릿쿄 세컨드 스테이지 대학 총괄특명교수는 “수강생 중 절반 정도가 1년을 더 다니는 전공과를 선택한다”며 “대학원에 진학하는 사람도 매년 10명 정도 된다”고 말했다.
이곳이 지향하는 것은 인생 2막을 설계할 수 있는 ‘기술’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보다 근본적으로 인생을 돌아보고 행복하게 살 수 있게 설계하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 목적이다.
이 때문에 기본 강의의 대부분은 인문교양으로 채워져 있다.
과정을 담당하는 가와무라 겐지 릿쿄대 법학부 교수는 “학문의 전체 과정을 돌아보게 하는 ‘학문의 세계’와 같은 과목을 기본으로 편성했다”며 “동서양을 아우르는 고전을 배운 뒤 사회 주체로 참여해 스스로 생각하는 ‘자유로운 시민’을 양성하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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릿쿄 세컨드 스테이지 대학 2024학년도 입학식 모습. 릿쿄대 |
커리큘럼은 교양 과목을 기본으로 하며 비즈니스 과목과 인생 2막 설계 과목이 추가된다.
3개 과정이 옴니버스식으로 묶여 있다.
비즈니스 과목에서는 비영리조직(NPO) 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가이드와 액티브 시니어를 위한 생활 방식 등이 강의된다.
인생 2막 설계 과목에는 삶의 끝까지 나답게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지혜가 담겼다.
구리타 교수는 “모든 학생이 10명 안팎으로 구성된 ‘제미(지도교수와 함께하는 일본판 세미나 활동)’에 소속돼 네트워크를 쌓고 보다 심도 있게 학문적 논의를 하도록 한다”며 “제미를 통해 아프리카 조류를 관찰한 외부 활동 사례도 있다”고 소개했다.
지난해 입학생 기준으로 이곳의 남녀 비율은 여성이 57.4%로 더 많다.
50세부터 입학할 수 있지만 65~69세가 29.4%로 가장 많다.
55~59세와 60~64세는 각각 26.5%로 동일하다.
60대가 절반 정도를 차지하지만 은퇴 전인 50대 비중도 만만치 않다는 얘기다.
수업이 평일 오전이나 오후에 있는데도 직장인 비중이 40%에 육박한다.
회사에 별도 휴가를 내고 참석할 정도로 교육과정에 대한 열의가 남다르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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릿쿄 세컨드 스테이지 대학의 교육이념이 담긴 사진. 릿쿄대 |
릿쿄 세컨드 스테이지 대학의 특징 중 하나는 학부생 강의도 들을 수 있게 한다는 점이다.
1~4학년을 위해 개설된 100여 과목 중에서 본인 관심사를 정해 최대 4과목까지 들을 수 있다.
가와무라 교수는 “세컨드 스테이지 대학 학생은 강의실 제일 앞자리에 앉아 활발하게 질문하고 토의에도 참여한다”며 “30년이 넘는 사회생활 경륜으로 학부생에게 좋은 지혜를 전달해주는 긍정적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수강생들의 인생 2막은 다양하다.
공부를 계속하는 사람도 있고, 배운 지식을 기반으로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는 목소리도 있다.
2021년에 세컨드 스테이지 대학을 졸업한 나시모토 히로시 씨는 “졸업 논문을 준비할 때 불법체류 외국인 3명을 만나 이들의 고민을 들었다”며 “이후 관련 NPO에 입사해 이들을 돕는 스태프로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 국민 중 상당수는 자신이 사회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가를 중요한 척도로 삼는다.
이를 위해 직장에서 일하거나 사회를 변화시키는 비영리 활동에 열심히 참여하는 것이다.
가와무라 교수는 “세컨드 스테이지 대학을 다니면 본인 신분이 노인이 아니라 학생으로 바뀌게 된다”며 “학생은 추후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예비군 성격이라 그런 의미에서 이 과정을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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