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동맹압박·친러 행보
“6월까지 나토 방위비 인상”
24일 마크롱·27일은 스타머
시간표 제시하며 회담 수락
‘유럽 중심축’ 獨 23일 총선
정치 불안정에 리더십 휘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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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AFP=연합뉴스] |
오는 24일(현지시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3주년을 앞두고 지정학적 변혁을 가져다줄 협상이 이어지고 있다.
미국과 러시아 고위 당국자 간 우크라이나 종전 협상에 이어 유럽을 대표하는 프랑스와 영국의 정상이 대서양을 건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담판에 나선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편에 선 트럼프 대통령에 놀란 유럽은 자신의 안방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에서 소외되지 않기 위한 외교적 노력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이 20일 브리핑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오는 24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27일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와 각각 정상회담을 한다고 밝혔다.
이번 회담에서는 우크라이나 종전 협상과 전후 구상 등이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후 유럽 정상들을 만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기 전 여론몰이에 나섰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날 엑스(X) 계정에서 라이브 방송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푸틴 대통령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여선 안 된다는 메시지를 전할 것이라고 밝혔다.
‘스트롱맨’ 이미지에 집착하는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심리전을 펼치는 셈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러시아에 유화적인 태도를 보인 것과 관련해 “나는 트럼프 대통령을 잘 알고 있다”며 “트럼프는 거래를 하고 합의에 도달하길 원하기 때문에 다른 이들에게 불확실성을 조성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렇기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에게 불확실성을 조성하는 건 그에게 매우 좋은 일”이라면서도 “동전의 이면은 모든 동맹국에도 불확실성을 야기한다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 17일과 19일 엘리제궁에 유럽 각국 정상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동맹국인 캐나다의 쥐스탱 트뤼도 총리를 초청해 우크라이나와 유럽의 안보 보장을 위한 의견을 수렴했다.
내주 워싱턴DC에서 있을 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종전 협상에서 배제될 걱정을 하는 유럽의 의견을 경청할지는 의문이다.
마크롱 총리에 이어 트럼프 대통령과 회담을 앞둔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의 입장은 복잡하다.
유럽 대륙 리더국으로 자리매김하려는 프랑스와 달리 영국은 미국과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유럽과 가교 역할을 한 까닭이다.
스타머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선거를 치르지 않은 독재자’라고 비난한 것에 대해 ‘민주적으로 선출된 지도자’인 젤렌스키 대통령과 통화해 지지를 표명했다면서 “영국이 2차 세계대전 때 그랬듯이 전시에 선거를 연기하는 것은 완전하게 합당하다”고 성명을 통해 밝혔다.
윈스턴 처칠 당시 총리가 2차 대전 종전 이후로 총선을 미뤘던 자국 역사를 거론하며 젤렌스키 대통령을 옹호하면서도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은 삼가는 태도를 보였다.
스타머 총리가 취임 이후 가장 중대한 순간에 어려운 줄타기를 하게 됐다고 폴리티코 유럽판이 전했다.
유럽 최대 경제국인 독일의 올라프 숄츠 총리는 23일 조기 총선에서 패배가 확실시되고 있어 국내 정치적 혼란에 휩싸여 있다.
게다가 트럼프 대통령의 절대적 신임을 받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극우 성향 독일대안당(AfD)에 적극 지원하면서 독일 정부와 갈등을 빚고 있다.
프랑스와 영국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대서양 동맹국 의중을 전달할 준비를 하는 가운데, 미국 정부는 동맹국 압박을 그치지 않았다.
마이크 왈츠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이날 백악관 브리핑에서 나토 회원국 가운데 국내총생산(GDP)의 2%를 방위비로 지출하지 않는 회원국에 대해 오는 6월 나토 정상회의 전까지 이를 이행할 것을 요구했다.
왈츠 보좌관은 “우리는 수십 년 동안 미국과 미국 납세자들이 우크라이나 전쟁 비용뿐 아니라 유럽 방위 비용까지 계속 부담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해왔다”며 “우리는 나토 회원국들을 전적으로 지지하지만, 이제는 유럽의 동맹국들이 나서야 할 때”라고 말했다.
프랑스·영국과의 정상회담을 거론하면서 “우리는 유럽의 더 많은 지원을 환영한다”며 “더 큰 자리를 원한다면 더 많은 것을 갖고 논의 테이블로 오라”고 밝혔다.
왈츠 보좌관은 아울러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맞설 수 있는 사람은 트럼프 대통령밖에 없다”며 “그는 최고의 협상가이며 최고 사령관이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기준으로 32개 나토 회원국 중 방위비가 GDP의 2%에 못 미치는 국가는 스페인(1.28%), 슬로베니아(1.29%), 룩셈부르크(1.29%), 벨기에(1.30%), 캐나다(1.37%), 이탈리아(1.49%), 포르투갈(1.55%), 크로아티아(1.81%) 등 8개국이다.
친푸틴 성향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트럼프 행정부가 다자 외교 무대에서도 러시아를 옹호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전쟁 3주년을 맞아 우크라이나의 영토보전을 지지하고 러시아군 철수를 요구하는 유엔 결의안에 미국이 공동 제안국으로 참여하는 것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주요 7개국(G7)이 발표할 성명에서도 미국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를 침략자라고 부르는 것에 반대하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성향을 간파한 러시아 측은 이를 활용하고 있다.
지난 18일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열린 우크라이나전 종전 협상에서 러시아 대표단이 미국 측에 동유럽의 나토군 철수를 요구했다고 FT가 소식통을 인용해 전했다.
한 소식통은 FT에 러시아와 지리적으로 가까운 동유럽 국가들의 안보 불안이 커지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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