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중관계 새 국면 ◆

지난해 8월 중국 정부가 한국 단체관광 비자를 허용했다.

코로나19로 뚝 끊겼던 한중 간 여행객 급증이 기대됐지만, 실상은 기대 이하다.

경기 침체로 직격탄을 맞은 중국이 내수와 소비를 살리는 데 집중하고 있어서다.

관광업계 관계자는 "중국 정부가 내부적으로는 여전히 자국 여행을 독려하고 있기 때문에 단체관광 비자 허용 효과를 전혀 체감할 수 없다"고 전했다.


한국과 중국 간 인적 교류가 중단되다시피 한 가장 큰 요인은 여행 수요 급감이다.

특히 중국 여행의 대명사인 만리장성과 자금성이 위치한 수도 베이징을 찾는 방문객 수는 코로나19 팬데믹 전인 2019년과 비교해 절반가량에 그치고 있다.


21일 매일경제가 항공정보포털시스템을 분석한 결과, 올해 1분기 인천과 베이징을 오가는 항공편을 이용한 전체 여객 수는 14만9165명으로 집계됐다.

팬데믹 전인 2019년 1분기(27만1568명)와 비교해 45.1% 줄어든 수치다.

이러한 현상은 베이징뿐만 아니라 상하이·광저우·선전 등 1선 도시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났다.


중국 정부는 내수 부양을 위해 자국 여행 촉진에 발 벗고 나섰다.

지역 축제 육성도 그 일환인데, 대표적인 곳이 중국 동포가 많이 거주하는 지린성 옌지다.

이 지역은 한국 여행 수요를 대체할 지역으로 꼽힌다.

특히 한글 간판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는 옌볜대 앞 '대학성' 건물은 중국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핫플레이스'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중국 현지에서 활동하는 국내 관광업계 관계자는 "사드 사태 이전에는 중국 정부 산하 기관이나 공기업에서 '마이스(MICE)' 산업과 관련해 방한하는 사례가 많았지만, 최근 중국 정부가 내수 진작에 나서면서 한국 단체관광 수요는 거의 없는 편"이라고 전했다.


중국인의 소비 형태가 달라진 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과거에는 '다이궁(중국 보따리상)'이 한국 면세점과 명동 상권의 큰손이었지만, 사드 사태와 팬데믹을 거치면서 다이궁의 방문이 줄었고 한국산 제품을 온라인으로 구입하거나 현지 제품으로 대체하기 시작한 것이다.


환율과 비자 문제는 중국을 찾으려는 한국인의 발목을 잡는다.

최근 1년 새 일본 엔화 가치가 크게 떨어진 반면, 중국 위안화 가치는 여전히 높은 편이다.

게다가 중국 여행을 하려면 시간과 비용을 들여 비자를 받아야 한다.

30일짜리 관광비자를 셀프로 신청하면 약 4만5000원이 들고 발급까지 4~5일이 소요된다.


반간첩법(방첩법) 강화 등에 따른 중국 기피 현상도 한몫한다.

중국 당국이 규정할 수 있는 잣대가 자의적일 수 있다 보니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식 단속이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국내 기업인들 사이에선 중국 출장을 기피하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고, 중국 출장 땐 '대체폰'을 가져가는 사례도 등장했다.


한국 기업의 '탈(脫)중국' 현상도 한중 간 인적 교류가 줄어든 원인 중 하나다.

미·중 패권 경쟁 심화와 중국 경기 악화 등의 여파로 중국 사업을 축소하거나 중국 내 생산시설을 베트남 등으로 이전하는 기업이 늘면서 중국 출장 수요가 빠르게 줄고 있다.

한국수출입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현지 신설 한국 법인 수는 205개에 불과했다.

10년 전인 2013년 834개와 비교하면 4분의 1 수준이다.


문제는 이 같은 인적 교류 단절이 양국 관계에 결코 좋지 않다는 점이다.

박승찬 중국경영연구소장은 "정치 레벨에서 경색되면 민간에까지 악영향이 가기 마련인데, 특히 중국과 같은 (국가가 민간 영역을 전적으로 좌우하는) 체제의 국가는 더 그렇다"고 말했다.

다만 다음달로 예정된 한·중·일 정상회의가 한중 관계 회복의 새로운 동력이 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박 소장은 "(한·중·일 정상회의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대신 리창 국무원 총리가 참석한다고는 하지만, 이번 회의가 5년 만에 열리는 만큼 우호적인 분위기가 조성된다면 한중 관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강준영 한국외대 교수도 "원래 한·중·일 정상회의는 무거운 주제보다 주로 경제·사회·인문적 교류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리이니 돌파구로서 좋은 계기"라고 덧붙였다.


[베이징 송광섭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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