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삽이나 뜨겠지'라고 생각하고 갔더니 이미 건물을 다 올리고 가동까지 하고 있더라. 정말 깜짝 놀랐다.

일본이 정말 반도체에 진심이구나 싶었다.

"
한국을 반도체 강국으로 발돋움시킨 1세대 반도체 전문가인 '미스터 반도체' 진대제 스카이레이크인베스트먼트 회장. 그는 최근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대만 반도체 회사 TSMC가 일본 구마모토현에 짓고 있는 반도체 공장을 직접 다녀와보고 작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며 이같이 말했다.


365일 24시간 공사로 애초 '5년은 걸릴 것'이라고 했던 공장을 22개월 만에 완성시킨 일본의 '반도체 재건 속도전'은 일생 동안 반도체 공장을 보아온 자신에게도 경이로운 일이었다고 진 회장은 밝혔다.

그는 "2013년 이후 일본에서는 메모리반도체 생산이 완전히 중단됐다"며 "10년여의 공백을 뛰어넘어 반도체 공장을 짓는다는 것도 대단하지만, 아직도 문서에 실제 도장을 찍는 일이 수두룩한 아날로그 사회에서 2년여 만에 최신 공장을 완공하고 가동까지 하는 것은 충격적"이라고 말했다.


진 회장은 "현장에서 TSMC라는 단어는 찾기 힘들다.

전부 JASM(Japan Advanced Semiconductor Manufacturing)이라고 적혀 있다.

현지에서는 미국 실리콘밸리를 따서 '실리콘 아일랜드'라고 부른다더라"며 "한국인은 출입도 막았다.

다시 반도체 산업을 부활시키자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일본이) 제대로 마음먹었다"고 했다.


일본 반도체의 부활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진 회장은 "일본이 앞으로 잘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보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쉽지는 않아 보인다"면서도 "당장 엔비디아 칩 같은 건 꿈도 못 꾸겠지만, 반도체 주변 산업이 잘 구성돼 있고 이참에 미국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부활시키겠다는 확고한 의지가 있으니 중장기적으로는 걱정이 된다"고 답했다.


반도체 분야에서 민간(삼성전자 사장)과 정부(정보통신부 장관) 사령탑을 두루 지내본 진 회장은 양측 모두에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이대로 있다가는 반도체 강국의 지위를 빼앗길지 모른다는 위기감의 발로다.


진 회장은 정부를 향해 "우리나라는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매번 선언적으로 통 크게 몇백조 원씩 지원하겠다고 하지만 말로만 그치는 것이 아쉽다"고 꼬집었다.

그럴싸한 발표만 하고 보조금이나 인프라스트럭처 같은 실질적인 지원에는 인색하다는 점을 비판한 것이다.

미국의 경우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장을 짓고 있는 삼성전자에 60억달러의 보조금을 지급할 예정이다.


대학 반도체학과 신설·증설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진 회장은 "반도체는 복잡하다.

기계, 물리, 화학, 전자공학 등이 종합선물세트처럼 묶여 있다"며 "반도체학과를 만들어서 뭘 하자는 것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대학에 최첨단 기계를 넣어주고 때마다 교체해줄 형편이 되나? 반도체는 그렇게 해서는 못 배운다.

회사 현장에서 직접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차라리 공대 붐을 일으켜야 한다.

재능 있는 인재들이 공과대학에 몰릴 수 있는 방안이 뭔가를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기본에 충실한 공학도와 기술자를 양성하는 제도를 만들고 그들이 불필요한 낭비 없이 기초체력을 기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핵심이라는 지적이다.


진 회장은 친정인 삼성전자에 대해서도 좀 더 모험심과 도전의식을 갖고 신시장 개척에 적극적으로 나서줄 것을 당부했다.

그런 측면에서 최근 삼성전자가 내년까지 업계 최초로 3차원(3D) D램을 공개하겠다고 밝힌 부분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3D D램은 데이터 저장 공간인 셀을 지금처럼 수평으로 배치하는 게 아니라 수직으로 쌓아 단위면적당 용량을 세 배 키운 제품으로 인공지능(AI) 시대 게임체인저로 불린다.


진 회장은 "삼성이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에서 다소 뒤진 측면이 있지만 3D D램을 통해 AI 반도체 분야에서 돌파구를 찾고 있어 다행으로 생각한다"며 "앞으로 다소 리스크가 있더라도 창의적이고 탐색적인 것을 추구하면서 도전의식을 갖고 시장 혁신을 주도해나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과거 삼성전자 재직 당시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과의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45세의 나이로 삼성전자 대표이사 자리에 올랐을 때 '알파칩'이라 불리는 생소한 반도체 회사를 인수하려던 이야기다.

당시로서는 생소한 것에 통 큰 투자를 하려던 젊은 대표이사를 주변에서 탐탁지 않아 했고, 결국 이 회장에게까지 우려가 전해졌다.

하지만 이 회장은 "진 박사가 그런 걸 한다고 해? 그럼 좀 까먹어도 해보라고 해"라고 했다고 한다.

진 회장은 "삼성은 그런 모험심이 있던 회사였다"고 강조했다.


진 회장은 2차전지 소재인 동박을 만드는 솔루스첨단소재 대표직도 맡고 있다.

반도체로 일가를 이룬 그가 보는 K배터리 산업은 어떨까. 진 회장은 "세계 경제 불황과 미국의 자국 기업 우선주의에 따른 보조금 삭감 등으로 몸살을 앓는 중"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모든 회사가 바닥을 향해 가고 있는데, 살아남겠다고 우리끼리 치킨게임을 벌이고 있다"고 걱정했다.

우리 기업끼리 과도한 경쟁을 벌이지 않도록 정부가 조정에 나서야 할 시기라는 뉘앙스다.


진 회장은 "시장은 항상 변화한다.

배터리 시장도 다시 좋아질 것"이라며 "나중에 반등할 때를 대비해서라도 약간의 가이드라인이 필요해 보인다"고 덧붙였다.

솔루스첨단소재는 SKC의 동박 자회사인 SK넥실리스와 서로 자사 특허를 침해했다는 내용의 소송을 벌이는 중이다.

소송에 진 기업은 특허 로열티를 물어줘야 하고 향후 수주에도 차질이 우려된다.



진대제 스카이레이크인베스트먼트 회장 △1952년 경남 의령 출생 △경기고 △서울대 전자공학 학사 △MIT 전자공학 석사 △스탠퍼드대 전자공학 박사 △1981년 휴렛팩커드 IC LAB 연구원 △1983년 IBM 왓슨연구소 연구원 △1997년 삼성전자 시스템 LSI 사업부장 대표이사 △2000년 삼성전자 디지털미디어총괄 대표이사 △2003년 제9대 정보통신부 장관 △2013년 스카이레이크인베스트먼트 회장 △2020년 솔루스첨단소재 대표이사
[전형민 기자 / 사진 이승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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