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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sumer Journal] 혁신의 역사 써온 마흔살 롯데쇼핑…100년기업 새 걸음 떼는 `유통거인`
기사입력 2019-11-14 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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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시작한 롯데쇼핑이 2019년 11월 15일 창사 40주년을 맞는다.

현재 백화점, 마트, 슈퍼, 롭스, e커머스사업본부 등 총 5개 사업본부로 구성된 롯데쇼핑은 롯데그룹의 한 축이지만 유통업 불황과 함께 지난 3분기 '어닝쇼크' 수준의 실적을 기록하며 충격에 빠진 모습이다.


하지만 롯데쇼핑은 창립 후 지금까지 더 큰 파고를 수없이 넘었다.

격랑을 헤치고 유통업계 1위로 올라선 롯데쇼핑의 40년 역사는 한국 경제·사회의 여러 단면을 그대로 보여준다.

아울러 중국 사드 사태와 한일관계 악화로 손실 약 4조원을 기록했지만 '혁신을 통해 100년 기업으로 재도약하겠다'는 포부를 내놓은 롯데의 근성도 이 기업 역사에서 찾을 수 있다.

롯데쇼핑의 40년을 조망해본다.

롯데백화점의 시작은 한국 역사상 가장 격동의 시기였던 197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서울 경복궁 앞에는 탱크가 상주해 있던 어수선한 시국이었다.

그해 10월 16일 부산에서 시작된 민주항쟁은 경남 마산·창원으로 확대됐고, 이를 진압하기 위해 비상계엄령이 선포된 상황이었다.

경제적으로도 급변기였다.

2차 석유파동으로 국제 경영 환경이 크게 악화됐고 인플레이션, 임금 인상으로 어려움이 가중됐다.

지금은 한국의 대표 백화점으로 자리 잡은 롯데백화점 사업은 한국사의 최고 격변기에 시작됐다.


롯데는 롯데백화점 전신인 '롯데쇼핑센터' 개점에 앞서 1979년 10월 26일 롯데 일번가를 먼저 출범시켰다.

소공동 지하상가에서 을지로 롯데호텔까지 약 120m에 달하는 전문 지하상가인 롯데 일번가에는 147개 국내 유명 전문점이 입주했다.

롯데 일번가 개점 행사에는 '롯데엔젤스 브라스밴드' 연주 행사가 준비돼 있었다.

조심스러운 상황에서 롯데는 정부에 개점 연주의 가부를 물었고, 서울이 평화스러운 상태임을 대내외에 알릴 필요가 있다는 내용과 함께 개점행사 진행을 허가한다는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롯데 일번가 개점 행사가 진행된 당일 오후 7시 40분 서울 종로구 궁정동 중앙정보부 안가에서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이 박정희 대통령에게 총구를 겨눠 한국 역사를 송두리째 뒤흔들었다.

롯데 관계자는 당시를 회상하며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전했다.


롯데 일번가 설립 이후 롯데쇼핑 건립이 이어졌다.

한국 사회는 하루 앞을 예측할 수 없는 긴박한 상황이 계속됐지만 이미 결단을 내린 신격호 명예회장은 롯데쇼핑 설립을 적극 추진했다.

앞서 1973년 호텔롯데를 설립한 신 명예회장은 국내 유통업 근대화를 내세우며 유통업 진출을 선언했다.

하지만 당시에도 경쟁 업체들은 대형 백화점 등장이 재래시장을 잠식한다는 이유로 반대했다.

호텔롯데가 외국인 투자기업이란 점도 걸림돌이었다.

당시 외국인 투자회사의 백화점 사업은 정부 방침으로 규제하고 있었다.


하지만 한국 경제를 좌지우지했던 정부부처인 경제기획원은 별도 내국법인을 설립해 백화점업을 시작하라는 조건부 허가를 내준다.

이에 신 명예회장은 11월 15일 롯데쇼핑주식회사를 창립하고 이를 창립기념일로 삼았다.

그러나 또 다른 장애물이 있었다.

당시 서울 사대문 안에서는 백화점 신설이 억제돼 있었다.

이 때문에 신 명예회장은 결국 '백화점'을 포기하고 대신 '쇼핑센터'라는 이름을 사용하기로 했다.

롯데쇼핑센터는 원래 호텔롯데 부속건물로 25층으로 설계됐지만 중동 건설 붐 때문에 국내 건설업체의 해외 진출이 활발했고 오히려 국내 건설현장은 인력난과 자재난으로 어려움이 많았다.


1979년 개점한 서울 명동 롯데쇼핑센터.
결국 착공 3년8개월 만인 1979년 12월 공사를 완료했다.

연면적 2만7438㎡에 지하 1층~지상 7층 규모로 당초 계획보다는 작았지만 기존 백화점에 비해 2~3배나 컸다.

이어 12월 17일 롯데쇼핑센터가 정식으로 개점한다.


개점 당일에만 30만명이 방문하는 바람에 소공동 일대가 인산인해를 이뤘다.

밀려드는 손님으로 셔터를 세 차례나 내렸다 올리는 상황이 벌어졌고, 백화점을 구경하러 나온 사람들이 몰려 에스컬레이터 앞에 긴 줄이 서는 등 연일 북새통을 이뤘다.


롯데쇼핑센터는 지하 1층 식품, 지상 1층 잡화, 2층 신사의류, 3층 숙녀의류, 4층 아동의류, 5층 문화용품·화랑, 6층 가정용품, 7층 가구용품 매장과 행사장, 8층 면세점, 9~10층은 식당가로 구성됐다.

최상층부 전 층에 식당가를 구성한 것은 국내 최초였다.

롯데쇼핑센터는 개점 첫해인 1980년 매출 454억원(시장점유율 38%)을 기록하며 동종업계 1위에 올랐다.


롯데 일번가를 조성할 당시 신격호 명예회장은 주위 우려에도 불구하고 일번가 바닥에 값비싼 이탈리아산 타일을 사용했다.

신 명예회장은 "비싸다고 비경제적인 것은 아니다.

10년, 20년 더 사용할 수 있어 경제적이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롯데백화점은 우리나라 위상을 재는 바로미터다.

선진국 수준으로 품격 있는 백화점을 조성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롯데백화점은 1983년에는 누적 방문 고객이 1억명을 넘어서며 유통업계에 또 다른 마일스톤을 기록했고 1985년 10월 '86아시안게임' '88서울올림픽' 공식 백화점으로 지정됐다.

서울올림픽이 개최된 해인 1988년 11월 12일에는 잠실점이 개점하고 롯데쇼핑 명칭을 롯데백화점으로 변경했다.

롯데쇼핑은 법인명으로 유지했다.


1988년 문을 연 잠실 롯데를 지을 때도 임직원들은 허허벌판에 막대한 자금을 투자하며 대규모 사업을 전개하는 데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신 명예회장은 "개점하고 1년이 지나면 교통체증이 생길 정도로 상권이 발달할 것"이라고 확신했고 그 예상은 적중했다.


2019년 현재 서울 명동 롯데 본점.
롯데백화점은 매출 1조원 달성(1992년)과 함께 2006년 6월 런던 증권시장, 한국증권거래소에 상장했다.

이어 러시아 모스크바 진출(2007년), 중국 베이징 진출(2008년) 등 해외 진출에도 박차를 가한다.

소비 트렌드에 맞춰 다양한 형태 점포 역시 선보였다.

2005년 해외패션 전문관인 '에비뉴엘'을 개점했으며 2008년에는 도심형 아웃렛인 롯데아울렛 광주월드컵점을 선보였다.

롯데백화점은 사업 다각화에도 힘써 1998년 4월 롯데쇼핑 할인 1호점인 마그넷(현 롯데마트) 강변점을, 2001년에는 롯데레몬(현 롯데슈퍼) 1호 전농점을 오픈하며 슈퍼마켓 사업에 진출했다.

현재 대형마트와 슈퍼는 롯데쇼핑 산하 사업본부 체제로 독립 운영 중이다.


롯데백화점은 디지털 변화에 맞춰 온·오프라인을 아우르는 옴니형 매장을 개발하고 롯데ON, 프리미엄 쇼핑몰 등 온라인 커머스를 올해 새롭게 출시해 온라인 사업을 강화하는 한편 저효율 점포에 대한 체질 개선으로 수익성 중심 경영을 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강희태 롯데백화점 사장은 사람들이 롯데백화점을 떠올렸을 때 느낄 수 있는 편안하고 친근함을 '롯데다움'이라는 키워드로 표현하며 롯데만이 지닌 콘텐츠와 롯데백화점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상품을 적극적으로 고객에게 선보일 것을 강조했다.


이에 따라 롯데는 자사 브랜드(PB·Private Brand)와 롯데 온리(Only)에 집중하며 롯데에서만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상품과 콘텐츠를 개발했다.


롯데백화점은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에서는 공식 파트너로서 평창 올림픽의 기념품 제작을 도맡았다.

롯데백화점은 '평창라이선싱팀'을 만들고 2017년부터 1년 동안 기념품 제작을 준비했다.

기념품 중 하나로 제작한 평창 롱패딩이 전 국민적인 관심을 받으며 준비한 3만장의 물량이 출시 한 달 만에 품절 사태가 일어나는 평창 롱패딩 대란이 빚어졌다.


이뿐만이 아니다.

롯데백화점은 업계 최초로 2018년 12월에 오픈한 프리미엄 아울렛 기흥점에 '실내 서핑장'을 만들었다.

또 사진 관련 전문 매장인 '291 포토그랩스'를 잠실 에비뉴엘 월드타워점에, VR(가상현실) 게임 전문관인 '몬스터 VR'를 600평 규모로 건대점에 유치했고 김포공항점 1층에는 '쥬라기 전시회 특별전'을 유치했다.


올해는 창립 40주년을 맞이해 롯데에서만 구매 가능한 특별한 가격의 롯데백화점 단독 상품들도 출시했다.

겨울철 고급 의류 소재인 캐시미어 100% 소재의 여성용 니트를 8만8000원에, 남성용 니트를 9만8000원에 선보였고 더불어 양면 착용이 가능한 '리버시블(Reversible) 무스탕'도 출시했다.

40주년을 기념한 와인도 출시해 순항하고 있다.

롯데백화점 창립 40주년을 맞아 출시하는 기념 와인은 '트리벤토 골든 리저브 하모니 에디션 레드와인'과 '배비치 블랙 샬롯 에디션 화이트와인'이다.


15일 롯데백화점 40주년 창립기념일에는 강희태 롯데백화점 대표의 역작인 영국 프리미엄 리빙 편집숍 '더콘란샵' 강남점이 문을 연다.

더콘란샵 강남점은 2개층, 약 1000평 규모로 그동안 국내에서 보지 못했던 다양한 프리미엄 리빙 상품을 한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다.


'사랑·자유·삶' 꿈꾼 신격호…기업보국 믿음으로 모국투자
재계 "韓유통산업 이끌어 사면복권 명예회복 됐으면"
롯데쇼핑의 40년 역사는 걸출한 기업인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의 인생과 궤를 같이한다.


1946년 일본에서 '껌' 사업에 성공한 신 명예회장은 1948년 일본에서 (주)롯데를 출범시킨다.

회사명은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여주인공 '샤롯데' 이름을 차용했다.

(주)롯데, 롯데부동산 주식회사, 롯데상사 주식회사 등 3개 회사로 분리하며 롯데그룹으로 첫발을 내디딘 게 1959년이다.

신 명예회장의 모국 투자는 한국을 떠나올 때부터 마음속에 품었던 원대한 목표였다.

1967년 한일 간 국교가 정상화되며 그해 롯데제과를 설립하고 모국 투자를 본격화한다.

기업을 일으켜 국가에 보답한다는 '기업보국'의 믿음이 있었다.


이어 롯데칠성음료(1974년) 롯데삼강(1978년) 롯데햄·우유(1978년) 롯데리아(1979년) 롯데냉동(1980년)을 인수 또는 설립해 국내 최대 식품기업으로 발전시킨다.


또 호텔롯데(1973년) 롯데쇼핑(1979년)을 설립해 유통관광산업 현대화를 이뤘다.

이외에 롯데기공(1973년) 롯데파이오니아(1973년) 롯데상사(1974년) 호남석유화학(1979년) 롯데건설(1978년) 등도 인수 또는 설립했다.


롯데 로고에는 원 속에 'L'자 3개가 있었다.

사랑(Love) 자유(Liberty) 삶(Life)을 의미한다.

신 명예회장 철학이 그 로고에 담겨 있다.

그의 사랑을 담은 롯데월드타워에는 개장 후 한 달 뒤인 2017년 5월 3일 전망대에 오른다.

음력 10월 4일 출생한 신 회장은 지난 10월 31일 백수(白壽·99세)를 맞았다.

신 명예회장은 주민등록상으로는 1922년생이지만 실제로는 1921년에 태어나 올해가 백수다.

기업인으로서 여러 공과가 있지만 재계에서는 창업 1세 중 최고령으로 꼽히는 신 명예회장의 삶에 대해 자유와 명예를 회복시켜 주자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원로 경영인은 "신 명예회장은 유통업에 대한 통찰,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과 앞선 사고로 한국 유통산업 선진화를 이끌어냈다"면서 "건강 상태와 고령인 점을 감안해 사면복권을 통해 명예가 회복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국 백화점 역사
韓 최초 백화점은 '미쓰코시'…1980년대 신세계·미도파·롯데 '3강'
한국 최초의 백화점은 1906년 명동 사보이호텔 자리에 들어선 미쓰코시 오복점이다.

일본 미쓰코시가 설치한 출장소 형태다.

이후 1930년 미쓰코시 경성지점이 세운 건물이 지상 4층 규모의 신세계백화점 명동 본점 건물이다.

순수 국내 자본으로 세워진 국내 최초의 백화점은 종로2가 보신각 맞은편에 위치한 '화신백화점'으로 1931년 세워졌다.

1955년 당시 화신, 미도파, 동화, 평화, 천일, 자유, 신신 등 서울에만 7개, 지방에 20여 개의 중소 백화점이 성업하며 백화점 춘추전국시대가 열리기도 했다.


삼성그룹은 1963년 동방생명을 인수하며 당시 동방생명 소유였던 동화백화점(옛 미쓰코시 경성지점)을 흡수한다.

이어 그해 11월 상호명을 동화에서 신세계로 바꾼다.

대농그룹이 미도파를 인수하고 1973년 시내 백화점 경영권을 인수한 데 이어 롯데가 1979년 유통업에 뛰어들면서 대형 백화점 시대가 본격화됐다.


1980년 중반 한국 경제는 유가, 금리, 달러가치 하락이라는 '3저(低)시대'를 경험하고 1986년 아시안게임, 1988년 서울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로 성장 가도를 달린다.

롯데, 신세계, 미도파의 도심 3강 체제 속에 한양쇼핑(1979년), 현대백화점(1985년), 뉴코아신관(1985년), 그랜드백화점(1986년) 등이 속속 등장하며 건설업계의 백화점 진출이 두드러진다.

또 영동백화점(1983년), 여의도백화점(1983년), 유니버스백화점(1984년), 크리스탈백화점(1984년), 파레스백화점(1985년) 등 부동산 업체의 백화점 진출도 활발했다.

롯데쇼핑은 1988년 국내 최대 규모의 백화점(롯데 본점)을 완성하고 잠실점을 호텔, 테마파크와 함께 개점했다.

이어 영등포점(1991년), 청량리점(1994년), 부산본점(1995년)을 개점하며 다점포 시대를 주도했다.

하지만 외환위기와 함께 1996년 4개, 1997년 13개, 1998년 8개의 백 화점이 도산한다.


[김기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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