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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end Interview] 14년째 바닷길 안내하는 최영식 인천항 도선사
기사입력 2019-08-02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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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항을 나서는 `뉴골든브릿지 7호`에 탑승한 최영식 도선사가 무전기로 항만관제실과 교신하고 있다.

최씨는 "도선사는 조류와 바닷속 지형을 꿰뚫고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승환 기자]

"박지성 선수가 그냥 나왔습니까? 오랜 시간 동안 묵묵히 인내의 시간을 버텨왔기 때문에 지금의 박지성 선수가 있는 것이죠. 도선사라는 직업도 마찬가지입니다.

"
올해로 34년째 바다 위를 누비고 있는 최영식 도선사(63)는 도선사가 되기까지 과정을 질문하자 해풍에 그을린 구릿빛 팔을 허공에 휘저으며 강한 어조로 이렇게 말했다.

도선법상 수로전문안내인을 뜻하는 도선사는 몇 해 전부터 젊은이들 사이에 각광받는 직업으로 떠오르고 있다.

한 공공기관이 설문조사한 결과가 언론에 소개되며 '직업만족도 2위' '직업별 평균 연봉 1위' 등 화려한 수식어도 따라붙었다.


하지만 최 도선사 입을 통해 들은 도선사 세계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밤낮 없이 일주일을 통째로 도선 업무에 할애하면서도 늘 긴장 속에 살아야 한다.

항구로 들어오는 배를 안내할 때 단 1m만 오차가 발생해도 아찔한 사고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최 도선사는 이 직업이 그만큼 '무거운' 직업이라고 말했다.


도선사는 뱃사람들에게 흔히 '해기사의 꽃'이라 불린다.

최 도선사는 그 꽃을 피우기 위해 20년 가까운 세월을 배 위에서 보냈고, 올해로 14년째 인천항 도선사로 일하고 있다.

나른한 오후 인천항 부두에서 뱃고동 소리가 울려퍼질 무렵 '바다 위에 핀 꽃'의 꽃말을 듣기 위해 최영식 도선사를 만났다.


―도선사가 하는 일은 무엇인가.
▷우리나라는 세계 6위 수준 무역대국이고 배를 이용한 물동량(物動量) 규모도 크다.

수출입 선박들을 포함해 국내 항구로 드나드는 배를 안전하게 항구에 정박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일이 도선사 업무다.

어느 나라가 됐든 항내에 선박이 들어올 때는 반드시 도선사를 탑승시킨 뒤 들어오도록 규정하고 있다.


―배에는 선장이 있지 않나.
▷기본적으로 배는 선장이 선원들을 지휘하면서 움직인다.

그러나 각 선장들이 개별 항구의 바다 밑 사정까지 잘 아는 것은 아니다.

선장은 제너럴리스트(Generalist)이지 스페셜리스트(Specialist)는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항내에 수로 사정을 충분히 잘 알고 있는 전문가가 필요한 것이다.

배에 도선사를 태우지 않고 들어오다가 발생한 대표적 사고가 2007년 '태안 기름 유출 사고'다.


―제너럴리스트와 스페셜리스트의 차이를 좀 더 설명해 달라.
▷선장은 선박 운전 같은 기술적인 부분에 더해 여러 행정적인 업무도 함께 해야 한다.

하지만 도선사는 선박 조종과 수로 연구 등 안전한 선박 안내에 관한 부분만 특화해서 훈련한다.

도선사들끼리는 '선장을 20년 해도 몰랐던 기술과 지식을 도선사 6개월 하다 보면 알게 된다'는 우스갯소리도 한다.


―한국 도선사는 국내 모든 항구의 수로에 대해 알고 있어야 하나.
▷그렇지 않다.

도선사들에게는 개별적으로 '도선구(導船區)'가 주어진다.

우리나라에는 인천, 평택, 대산, 군산, 목포, 여수, 마산, 부산, 울산, 동해, 제주, 포항 등 총 12개 도선구가 있다.

예를 들어 나처럼 인천항 도선사라면 인천항에 대해 완벽하게 알고 있으면 된다.

만약 인천항에서 부산항으로 전구(轉區)를 가는 상황도 생길 수 있는데, 그때는 3개월 동안 부산항 항로 사정을 새롭게 익혀야 한다.


―도선구별 도선사 인원은.
▷대표적으로 부산에 54명, 인천에 41명이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각 도선구 크기와 물동량 규모 등에 따라 인원이 천차만별이다.

국내 전체 도선사 수는 250명 수준이다.


―상당히 적은 인원인 것 같은데, 도선사가 되는 요건이 까다롭나.
▷전문직종이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다.

매년 20명 안팎 도선사를 선발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그전에 일단 6000t급 이상 선박에서 선장으로 3년 이상 일한 경력이 있어야 도선사 시험 응시자격이 생긴다.

과거엔 5년, 7년까지도 요구했지만 지난해 12월 3년으로 요건이 완화됐다.

처음부터 선장을 할 수는 없으니 항해사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최소 10년 이상은 배 위에서 일한 경험이 있어야 한다.

그렇게 응시자격이 주어지고 나면 해사법규, 선박운용술, 영어 등 3과목에 대한 필기시험을 치른다.

여기서 합격한다고 바로 도선사가 되는 것이 아니다.

도선사 수습생 신분으로 6개월간 현장에서 도선 기술을 익혀야 한다.

그런 다음에 최종 도선사 시험을 치르고 비로소 도선사 자격을 얻게 된다.


―면접시험도 있는데, 어떤 질문이 나오나.
▷도선구역과 관련된 로컬날리지(local knowledge)를 '빠삭'하게 알지 못하면 답할 수 없는 것들을 물어본다.

인천을 예로 들면 '팔미도 등대는 몇 초 간격으로 깜박 거리는지' '인천항 인근 특정 해역 수심은 얼마인지' '등대 빛이 도달하는 거리는 얼마인지'와 같은 질문들이다.

배 위에서 일한 경력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부분이라 도선사 수습 기간 동안 철저히 준비하지 않으면 제대로 답하기 어렵다.


―능숙한 영어 실력도 필수적이겠다.


▷물론이다.

한국인보다 외국인 선장·선원들과 일해야 할 때가 훨씬 많다.

과거에 일하던 해운회사에서 영국으로 2년간 연수를 보내준 덕에 영어를 익히는 데 좀 더 수월했다.

물론 외국 연수 2년으로는 원활한 업무 수행을 위한 영어 실력을 갖추기에는 턱없이 모자라다.

지금도 영국 드라마 '셜록(Sherlock)'이나 '오펀 블랙(Orphan Black)'을 보면서 틈틈이 영어공부를 하고 있다.


―시험에 합격하기까지 얼마나 걸렸나.
▷1999년에 처음 선장이 됐고, 만 5년을 채운 후 바로 시험에 응시해 2005년에 합격했으니 단기간에 합격한 편이다.

선장이 되기 위해 항해사로 일한 기간도 있으니 거의 20년 걸려 도선사가 됐다고 보는 게 옳다.


―도선사가 되기로 결정한 계기가 있나.
▷솔직히 특별한 계기는 없다.

원래는 대학 졸업 후 일하던 해운회사 사장이 되는 게 꿈이었다.

하지만 30대와 40대를 거치며 점점 나이를 먹다 보니 내게 주어진 선택지가 그리 많지 않다는 걸 느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도선사에 관심이 생겼다.


―도선사를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직업의 밝은 면만 봐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7~8년 전 인천시에서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직업 강연 요청이 와서 대여섯 번 학생들을 만났던 적이 있다.

도선사가 직업 만족도도 높고 연봉도 높다고 하니까 학생들 관심이 높았다.

그런데 애들 반응이 "도선사는 되고 싶은데 선원은 싫어요"였다.

말이 안 되는 거다.

배 탄 경력이 없으면 시험을 칠 자격도 안 생긴다.

어떻게 배 위에서 고생한 경험 없이 열매만 먹을 수 있겠나. 그래서 그때 학생들에게 강조했다.

박지성 선수는 평발인데 어떻게 세계적인 축구 스타가 됐겠느냐고. 아무도 몰라주던 시기를 피나는 노력으로 버텼기 때문에 지금의 박지성 선수가 있는 것 아니겠냐고. 그랬더니 학생들이 뭐라고 대답은 못하는데 고개는 끄덕끄덕 하더라.(웃음)
―실제 일에 대한 만족도는 어떤가.
▷만족도라는 것이 주관적인 느낌이기 때문에 내가 도선사들을 대표해서 말하기 어렵다고 본다.

다만 도선사 일 자체는 매우 고된 편이다.

인천항 도선사들은 일주일 단위로 도선 업무를 한다.

예를 들어 내가 이번주 월요일부터 다음주 월요일까지 대기조에 편성되면 일주일 동안은 오롯이 도선 업무에만 집중하고 그 다음주에 한 주간 휴식을 취하는 시스템이다.

인천에는 도선사가 41명이 있으니 한 대기조에 21~22명이 편성된다.


최영식 도선사가 해도를 펼쳐 놓고 인천 앞바다 항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근무하는 주에는 아예 여유 시간이 없나.
▷인청항에는 하루에 선박 30~60척이 불규칙하게 들어온다.

시간대도 낮이고 새벽이고 대중없다.

한 선박을 도선하는 데 적게는 2~3시간에서 길게는 7시간까지 걸리는데, 이런 작업을 하루에 3~4건 정도 한다.

또 내게 할당된 선박이 들어올 때를 기다리며 항상 대기하고 있어야 하는데, 그러다 보면 다른 일을 할 엄두를 못 낸다.

사실상 그 주에는 사회생활이나 가장으로서 역할은 포기해야 하는 셈이다.


―'좋은 남편'이나 '좋은 친구' 소리는 못 듣겠다.


▷그렇다.

친구들 모임에 참석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고 경조사를 못 챙기는 때도 허다하다.

집안일도 마찬가지인데, 그래도 쉬는 주에는 가정에 충실하며 점수를 따고 있다.

(웃음)
―도선사 일을 하면서 아찔했던 순간은 없었나.
▷후진 기관이 말을 듣지 않는 배가 있었다.

인천항은 선박을 부두 쪽으로 접안하려면 갑문을 통과해야 하는데, 갑문 폭은 35m가량으로 좁은 편이어서 큰 선박은 1m만 도선에 오차가 생겨도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갑문은 무엇을 말하나.
▷인천은 밀물과 썰물 때 수심이 10m 정도 차이 난다.

썰물 때가 되면 물이 빠져나가 부두 주변 수십 m까지 갯벌로 변하니까 항만을 만들 수가 없다.

갑문은 이런 지역에 물을 인위적으로 가둬놓기 위해 만든 것이다.

보통 폭이 넉넉하지 않아서 갑문을 통과하려면 고도의 선박 조종술이 요구된다.


―갑문을 통과하려는데 갑자기 선박 후진 기관이 고장난 것인가.
▷그렇다.

후진하면서 배 방향을 조정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갑자기 비상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그대로 두었다가는 배가 어디를 어떻게 충돌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머릿속에 하얘졌지만 신속하게 예인선을 붙였다.

예인선으로 배 앞쪽과 뒤쪽을 밀어 방향을 조정함으로써 후진 기능을 대신했다.

다행히 큰 사고 없이 배를 접안했지만 지금도 잊히지 않는 기억 중 하나다.


―고된 일인 만큼 보수도 많이 받지 않나.
▷보통 1억7000만원 수준이니 적지 않은 편이다.

하지만 세간에 도선사가 '고액 연봉 직업군'으로 알려진 데에는 작은 불만이 있다.

도선사는 전문직종인데 대기업 부장이나 임원들과 연봉을 비교한다.

전문직으로서 도선사 연봉 수준을 좀 더 객관적으로 보려면 다른 전문직과 비교해야 한다.

그렇게 보면 그리 높은 수준은 아니다.

이렇게 얘기해서 욕먹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웃음)
―도선사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책임감이다.

내가 맡은 도선구 안전을 책임진다는 의식이 있어야 한다.

또 '이 도선구에서만큼은 내가 최고 전문가'라는 자부심도 있어야 한다.

이런 무거운 부담감이 있어야만 도선 업무를 차질 없이 수행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최영식 도선사는…
1979년 한국해양대 항해학과를 졸업한 최 도선사는 1986년까지 인천 소재 해운회사에서 3등·2등·1등 항해사를 거치며 경력을 쌓았다.

1986년부터 본사에서 근무하다 1998년 2월 해상으로 복귀해 1999년 선장에 임명됐다.

이후 2005년 도선사 시험에 합격했으며 2006년 2월부터 현재까지 인천항 도선사로 근무 중이다.

지난해 4월에는 세계도선사협회(IMPA) 부회장으로 선출됐다.


[김희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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