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의 1조3000억원대 이혼 소송 2심 판결 이후 기관투자자들이 SK 주식을 매집하고 있는데 '제2의 한진칼 사태'가 올 수도 있어요."
지난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증권사 '리서치 미팅'에 참석한 한 애널리스트는 "지난달 30일 이혼 판결 이후 SK가 단기 수익률 게임장이 됐다"며 "한진칼처럼 단기에 주가가 4배 오를지, LG처럼 주가가 곧바로 하락할지는 사모펀드 참여 여부가 관건이 될 것인데 이를 일반 투자자는 알 수 없으니 추격 매수는 위험하다"고 강조했다.

여의도는 법원이 최태원 SK 회장이 소유한 주식이 분할 대상 자산이라고 판단했고, 위자료를 포함해 1조3828억원을 현금으로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에게 지급하라고 판결한 점에 주목했다.


재계와 증권가는 당장 동원할 현금이 2000억원대로 추정되는 최 회장이 SK 등 보유 주식이나 금융사 대출을 통해 재원을 마련할 것이란 관측을 내놓고 있다.

이 과정에서 경영권이나 주주환원을 놓고 사모펀드 등 외부 세력이 끼어들어 지배구조 정점에 있는 지주사 SK의 지분 보유 가치가 올라갈 수밖에 없다는 의견이 주를 이룬다.


일부 공격적 투자자들은 2019년 한진그룹의 한진칼 사태처럼 경영권 분쟁에 불이 붙으면 단기간에 막대한 수익을 거둘 수 있다는 '희망회로'를 돌리고 있다.

당시 한진칼 주가는 6개월 만에 4배 올랐다.


특히 최 회장의 지분율(17.73%)이 지금도 10%대로 낮은 가운데 재산 분할로 노 관장이 SK 지분을 대거 확보하면 본격적인 '군웅할거'가 된다.

5% 이상 주요 주주가 최 회장과 노 관장, 최 회장 여동생 최기원 SK행복나눔재단 이사장, 국민연금까지 4등분돼 이해득실에 따른 합종연횡이 예상된다는 시나리오다.


그러나 SK의 자사주 비율이 25%로 높아 최 회장이 이를 활용해 경영권 분쟁 가능성 자체를 차단할 것이란 시나리오도 존재한다.


최 회장이 2심 판결과 금액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 대법원에 상고하겠다는 입장이라는 점도 변수다.

한 증권가 관계자는 "대법원 선고까지 최소 2년을 더 기다려야 하는데 그때까지 노 관장 지분율이 올라갈 가능성은 거의 없다"며 "사모펀드가 지분을 늘리는 것을 확인하고 투자해도 늦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급등한 주가에 투자를 시작한 개인투자자들은 장기간 고생할 수도 있다는 의견이다.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이혼 소송과 경영권 분쟁 시나리오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다.

최 회장과 노 관장의 SK 지분율 현재 스코어(지난 3월 말 기준)는 17.73% 대 0.01%다.

노 관장 입장에선 '계란으로 바위 치기' 격이다.

그러나 첫 반전은 2심 판결이었고 이대로 대법원에서 확정되면 최 회장은 현금 1조3828억원을 노 관장에게 줘야 한다.




증권가에선 최 회장의 재산을 크게 네 가지로 구분한다.

SK 주식 1297만여 주, SK실트론 주식 1970만여 주, 다른 계열사 주식 일부, 2200억원 규모의 배당금과 퇴직금 등 현금이다.

최 회장이 보유한 현금만으로는 2심 판결을 맞출 수 없어 보유 주식 매각이 현실적인 대안으로 거론된다.


경영권을 지키면서 현금을 마련하기 위한 것으로 SK실트론 매각 '카드'가 있다.

2017년 지주사 SK와 최 회장은 당시 LG실트론 지분을 각각 70.6%, 29.4% 인수해 회사 이름을 SK실트론으로 바꿨다.

문제는 최 회장이 증권사 등 금융권에 SK 주식을 담보로 당시 LG실트론 지분을 인수했다는 것. 현금이 부족한 상황에서 총수익스왑(TRS) 형태로 지분을 확보했는데 TRS 만기가 2027년 8월로, 이때까지 소유권은 해당 금융사에 있다.


증권가 관계자는 "SK실트론은 요즘 핫한 반도체 소재기업으로 최 회장 입장에선 비상장사 상태에서 지분을 팔기보다는 상장(IPO)시켜 자연스럽게 현금화하는 게 낫다"며 "TRS 상황에서 일부 지분은 소유권 자체가 없고 팔더라도 양도세 중과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방법으로는 주식담보대출이 있다.

그러나 이미 많은 SK 주식을 담보로 대출받은 상태다.

최 회장이 가진 SK 주식 중 담보가 없는 지분은 7.49%에 그친다.


가능성은 떨어지지만 최 회장이 환금성이 좋은 SK 지분을 팔아 노 관장에게 현금으로 지급하고 노 관장은 이 돈으로 SK 주식을 사들이는 시나리오도 있다.

지난 3일 SK 종가 기준으로 최 회장의 지분율은 기존 17.73%에서 7.16%로 떨어지는 반면 노 관장은 0.01%에서 10.9%로 늘게 된다.


최종 판결이 남아 있는 가운데 이 같은 시나리오에 따라 주가가 급등락하는 리스크는 이어질 전망이다.

지난 1일 노 관장 측 법률대리인은 "SK 지배구조가 흔들리길 원치 않는다.

계속 우호 지분으로 남길 원한다"고 밝혔다가 그 다음날인 2일 "대리인 중 변호사 한 개인의 의견이다.

정해진 바 없다"고 정정했다.


여기에 심상치 않은 사모펀드 등 기관투자자의 움직임도 주가 급등을 거들었다는 평가다.

2019년 남매간 경영권 분쟁이 본격화됐던 한진그룹 사태에서도 행동주의 사모펀드 KCGI가 지주사 한진칼 지분을 늘리며 주가 상승을 부채질했다.


2019년 9월 말 2만7000원이었던 한진칼 주가는 2020년 4월 10만9000원을 기록하며 6개월여 만에 4배 급등하기도 했다.


SK 이혼 소송 2심 판결이 난 지난 5월 30일부터 기관은 SK에 대해 순매수로 돌아섰다.

이날 이후 지난 3일까지 3거래일 동안 순매수 932억원을 기록했다.


또 다른 애널리스트는 "사모펀드는 기관투자자에 속하는데 이들은 경영권 분쟁으로 증권가 관심을 일으켜 배당 등 주주환원을 요구하게 된다"며 "KCGI도 주가가 급등하자 한진칼에서 대거 차익실현을 했고, 이런 사례는 SK 등 경영권 분쟁 관련 주식에서 재연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이는 3거래일(5월 30일~6월 3일)간 SK 주가가 22%나 급등하는 '재료'로 작용했다.


그러나 증권가에서 최 회장이 자사주 등 다양한 현금화 방안이 있고 SK 지분을 가급적 팔지 않으려 한다는 얘기가 나온 4일에는 주가가 급락하기도 했다.


최 회장은 2003년 외국계 사모펀드 '소버린'에 경영권을 뺏길 뻔한 쓰라린 경험 때문에 그동안 SK의 자사주 비율(25%)을 높여왔다.

지난 3일 기준으로 시장 가치는 3조2720억원이다.

국내 오너 그룹들은 자사주가 의결권이 없는데도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삼아왔다.


2022년 당시 최윤범 고려아연 부회장 일가가 장형진 영풍 회장의 경영권 개입에 대한 맞대응으로 자사주를 활용하기도 했다.

이때 고려아연LG화학, 한화와 자사주를 맞교환해 현금 지출 없이 우호 지분을 확보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 다른 증권가 관계자는 "고려아연은 6%의 자사주를 활용했는데 SK는 25%에 달하니 SK의 경영권 분쟁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더 낮다"며 "다만 상장사가 여러 사업에 투자해야 할 돈으로 자사주를 보유하고 있는 것 자체가 사모펀드의 공격 대상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SK가 사모펀드의 공격 대상이 되는 또 다른 이유는 인공지능(AI) 반도체 관련주 SK하이닉스와 고배당주 SK텔레콤을 지배하고 있어서다.

투자자 입장에선 그룹 두 핵심 '캐시카우(현금창출원)'가 최대주주 SK에 배당하고 브랜드 사용료를 내면 이 돈으로 SK가 배당을 늘리는 구조다.

SK는 SK이노베이션(지분율 34.5%)과 SK텔레콤(30.01%)을 직접 지배하고 있고, SK하이닉스의 경우 SK스퀘어(30.55%)를 통해 간접 지배 중이다.


탄탄한 배당 재원 덕에 SK 배당금은 올라갈 것으로 보인다.

2022년과 2023년 각각 연간 보통주 기준 주당 5000원으로 고정됐던 배당금은 올해 5255원, 2025년 5620원으로 상향 조정될 것으로 추정된다.

올해 예상 배당금을 지난 3일 기준 주가로 나눈 배당수익률은 3%다.

SK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은 0.58배다.

경영권 안정과 일반 주주의 지지를 얻기 위해 배당 확대는 물론 '화끈한 자사주 소각'이 나올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특히 이런 주주환원 정책이 나오면 주가가 급등해 행동주의를 노리고 들어오는 외부 세력의 지분 확보 부담을 높이게 된다.


다만 한 자산운용사 대표는 "SK는 경영권 분쟁과 저평가, 주주환원 강화 등 3대 주가 호재가 있다"며 "사모펀드가 들어오면 막대한 투자가 필수적인 SK하이닉스에는 불확실성이란 악재가 존재하며, SK텔레콤의 경우 노 관장에게 이동통신 사업 기여도를 인정한 판결 후폭풍 때문에 과감한 주주환원을 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문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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